‘어색한 동거’ 길어지다보니 잡음 커지는 공공기관
  • 박혁진 기자 (phj@sisajournal.com)
  • 승인 2018.03.06 15:22
  • 호수 1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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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 산하 기관 인사 난맥상…전·현 정부 인사 간 충돌로 ‘밥그릇 싸움’ 가중

 

국토교통부 산하 법정단체인 건설공제조합에서 최근 내부 인사 문제를 둘러싼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건설공제조합의 경우 조합 내부 출신 전무이사 임기가 지난해 10월말 종료됐지만, 5개월째 공석으로 남아 있다. 현재 후임자를 놓고 회사 측과 노조는 내부 출신 A상무를 앉혀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토교통부(국토부)는 여기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조합 임원 인사에 외압을 행사하려는 국토부에 맞서 회사 측과 노조가 전선을 구축해 싸우는 모양새다.

 

하지만 조합 임원 자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힘겨루기는 문재인 정부 공기업 인사가 늦어지면서 일어나는 난맥상(亂脈相)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공공기관장 인사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 즉 지난 정권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이나 산하 기관장을 굳이 무리수를 써서 쫓아내지 않는다는 의미다. 공공기관장은 아니지만 사실상 정부 입김에 의해 임명되는 포스코 회장 자리를 권오준 회장이 지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이나 임원들이 막판까지 자기 사람 챙기기를 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다.

 

안개에 싸인 정부세종청사 모습처럼 최근 정부부처 산하 기관의 인사가 지연되면서 잡음이 일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정권 임명 기관장 막판까지 자리 챙기기

 

건설공제조합 박승준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됐다. 1963년 설립된 건설공제조합은 조합원(건설업체) 수만 1만 개에 이르고, 자본금이 5조2000억원인 ‘공룡 조합’이다. 설립 초기에는 정권의 입김에 따라 이사장 자리가 바뀌었으나, 1990년대 김영삼 정부 이후로는 국토부 고위 관료 출신들이 이사장직을 독차지해 왔다. 건설업계에서 건설공제조합이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15년 10월 현 박승준 이사장이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에 취임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새 이사장 후보로 국토부 1급 출신이 최종 후보에 올라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까지 통과했다. 하지만 5개월 가까이 선임이 지연되더니 박 이사장이 임명됐다. 박 이사장은 건설금융 업무와는 무관한 경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박 이사장은 전북 익산 웅포골프장 대표 등을 거쳤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 차남 전재용씨가 최대주주인 비엘에셋에서도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3년 웅포골프장의 법정관리 신청 당시에는 대표이사인 그의 횡령 의혹 등을 제기한 직원들의 탄원에 따라 전주지방법원이 다른 법정관리인을 선임하기도 했다. 때문에 건설공제조합 노조도 박 이사장 선임 당시 전문성을 이유로 임명을 강하게 반대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취임한 박 이사장의 임기는 올해 10월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사장을 굳이 교체하려 하지 않다 보니 박 이사장도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박 이사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과 가깝다고 내부에서 분류되는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려 하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10월 이후로 공석인 전무이사를 둘러싼 논란이다. 현재 조합 측은 박 이사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A씨를 이 자리에 선임하려 하고 있으나,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국토부가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정부 방침에 대놓고 반대하기 어려운 사측을 대신해 국토부와 맞서고 있는 것은 노조다. 노조 측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정부는 민간법인인 건설공제조합의 인사와 경영에 개입할 수 없고 재무건전성에 대한 지도와 감독만 가능하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노조는 후임으로 거론되는 A씨 승진에 대해서도 ‘내부 승진’이란 이유를 들어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국토부에서는 건설공제조합 사측이 노조를 앞세워 인사 전횡을 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토부 관계자는 “노조가 내부 승진이란 명목으로 A씨를 밀고 있지만, 지난해 10월 그만둔 전무도 내부 출신인 데다 가만히 있으면 자연스럽게 연임이 가능한데 무슨 이유 때문에 저러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권 교체기에 일어나는 일들인데, 대통령이 무리해서 기관장 인사를 하지 않다 보니, 논란이 커지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 공공기관 인사 무리하게 안 해

 

비단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건설공제조합뿐만이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나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공공기관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대통령이 무리하게 인사를 밀어붙이지 않다 보니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기관장들과 어색한 동거가 계속되고, 동거가 길어지다 보니 잡음이 계속 불거지는 모양새다. 물론 지난 정권 인사로 분류되는 기관장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산하 기관에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려는 정부 부처의 오랜 관습도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내부 승진이 예정돼 있던 공공기관 임원들이 부처 간섭으로 인해 승진에서 탈락한 일도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공공기관장 인사가 늦어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첫째로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별 공공기관 인사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그러다 보니 밑에서도 무리하게 인사를 밀어붙일 이유가 없다. 둘째로 참모급 사이에서 벌어지는 힘겨루기다. 청와대는 ‘논공행상’ 따지기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 원칙적 입장이지만, 이를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일했던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정권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10년 동안 밀려 있는 인사를 하고 있는 셈”이라며 “전문성과 개혁성만 본다 해도 정권 창출의 ‘공신’들을 멀리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도 여의도에선 공공기관장이나 감사 등을 놓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당분간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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