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되려면 지금이 기회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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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 종합평가 대비해 증권 열풍



 국내 사립 대학의 신임 교수 채용 양상이 바뀌고 있다. 교수 인력난 문제가 나올 때마다 재정난을 들먹이며 문제 해결에 난색을 보였던 대학 당국이, 최근 들어 저마다 더 많은 교수를 뽑겠다며 발벗고 나섰다. 교수 공채 때마다 일곤 했던 공정성 시비도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각 대학은 나름대로 이중, 삼중의 엄정한 심사과정과 기준을 마련하는 등 공채 과정에서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에 없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달라진 모습은 먼저 각 대학이 공채 횟수를 앞 다투어 늘리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제까지 일반인에게 대학 교수 공채는 연말에나 한번씩 치르는 연례 행사 정도로만 여겨져 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 대학만 해도, 성신여대ㆍ인하대ㆍ숙명여대ㆍ세종대 등이 이미 지난해 연말 새로 교수를 충원하고도 2학기에 또 한번 교수를 뽑기로 계획했다.

 숙명여대 오수현 교무처장은 “지난해 교수 10명을 새로 뽑았지만 형편을 봐서 올 가을에 공채 공고를 또 한번 낼 계획이다. 채용 인원은 20명 안팎이 될 것이다”라고 밝힌다.

 공채 공고 횟수가 잦아진 만큼 각 대학이 뽑겠다고 하는 인원 규모도 눈에 띄게 커졌다. 한번 뽑을 때마다 기껏해야 10명 안팎이던 채용 규모가 최근 몇 년 사이 2배 이상 확대됐다. 특히 지난해 본교 교수로만 51명을 신규 채용한 연세대의 내년 계획은 보통 때와 차원을 달리한다. 이 대학은 최근 95학년도 신임 교수 채용 규모를 2백명 선으로 확정했다. 바야흐로 ‘교수 채용 세자리 수 시대’의 막이 오르는 것이다.

 연세대의 설명에 따르면, 95학년도 신임교수 채용 규모는 결코 무리하게 잡은 것이 아니다. 현재 연세대의 교수 채용 계획에서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의과대학(채용 예정 인원 본교 85명)을 빼면, 공과대학 교수 채용인원이 24명으로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 이과대 14명, 상경대 10명, 교육과학대와 생활과학대 각 4명이다.

연ㆍ고대, 첨단 과학 분야 채용에 힘써
 교수 채용 분야에서 공과대학과 이과 계통의 비중이 높은 것은 첨단 과학 분야를 크게 육성하려는 뜻이 담겨 잇다. 연세대 김수일 교무처장은 “우리 목표는 첨단 공학 분야에서 세계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내년에 공대 교수 24명을 새로 뽑더라도 필요로 하는 인력 수준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라고 말한다.

 연세대의 맞수인 고려대도 이에 뒤질세라 교수 증원 작업이 한창이다 고려대는 신규 교수로 92학년도 35명, 93학년도에 60명을 충원한 데 이어, 94학년도에는 79명으로 채용 규모를 대폭 늘려왔다. 고려대는 94학년도 계획을 차질 없이 우리기 위해 지난해 연말 교수 57명을 새로 뽑았으며 나머지 6명은 올 가을 충원할 예정이다.

 고려대의 경우도,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있다. ‘과학 고대’를 기치로 내건 고려대는 중점 육성 분야를 첨단 과학 쪽으로 잡아 대대적인 충원 작업을 벌일 생각이기 때문이다. 고려대는 이를 위해 한국 산ㆍ학ㆍ연 종합 연구단지 (이른바 테크노콤플렉스) 설립계획을 수립해 올해 1단계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고려대 김학렬 교무처장은 “이 계획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도 인력 증원은 불가피하다. 의대를 빼고서도 각 단과 대학에서 요구한 인력 수가 1백50명에 이른다. 아직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각 학과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특히 이공계는 우선 순위다”라고 말한다.

 교수 채용에서 두드러지는 변화는 양적인 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연ㆍ학연ㆍ인맥에 따라 좌우되기 십상이던 교수 채용 과정을 객관적으로 공장하게 진행해 ‘교수의 질’을 높이려는 작업도 병행된다. 홍익대는 그중 모범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홍익대 학교 교수 5명 미만인 학과, 교수 1인당 강의 시간이 지나치게 많은 학교(주 12시간 기준에 교수를 우선 충원한다는 원칙을 명문화했다. 또 심사 기준을 자세히 명시했다. 예컨대 학력을 심사할 때는 출신 대학의 학과별 지명도와 순위는 물론 출신 고교 성적까지 심사한다. 모집 정원의 3배수 이상으로 뽑힌 면접 대상자 가운데서 최종 합격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객관성을 잃지 않기 위해 학교 교수의 의견을 수렴하고 면접을 세차례 한다.

 홍익대는 이같은 심사 원칙ㆍ기본을 이미 6년 전부터 마련해 시행해 왔다. 그 결과 홍익대는 쪼들리는 살림이면서도, 해외 명문 대학에서 공부한 최고급 두뇌를 교수로 끌어모으는데 성공했다. 이 대학 김영환 교무부처장은 “얼마 전 연세대에서 자체적을으로 장기 발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다. 그중에서 90~92년 각 대학이 채용한 미국 상위 10개 대학 출신 신임 교수 비율이 나와 있다. 거기서 우리 학교는 서울(68.8%)에 이어 2위(62.5%)를 차지했다”라고 자랑한다.

 재정난으로 아우성인 사립 대학이 최근 너나 없이 ‘우수 교원 더 많이 뽑기’ 경쟁에 나선 까닭은 분명하다. 첫째, 교수 인원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의 대학은 교수 확보 면에서 부진함을 면치 못하고 있다(<표1> 참조). 특히 사립대의 교원 확보율은 교육법에 명시된 법정 정원에 훨씬 못미치는 실정이다(<표2> 참조). 이같은 현실에서 재정난이라는 핑계만을 대다가는 ‘내일’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사립 대학 사이에 퍼지는 것이다.

“약점 감추려는 숫자 불리기일 뿐”
 둘째, 내년부터 대학종합평가제가 확대 실시되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대학을 교육ㆍ연구ㆍ사회봉사ㆍ교수ㆍ시설설비ㆍ재정경영 6개 영역으로 나눠 질적 수준을 가늠하고, 그 결과 사회에 알려 사회적 인정을 받게하는 제도이다. 시행 첫 해인 올해 각 대학이 받을 부담을 감안해 서울대 등 6개 국ㆍ공립대와 포항공대만을 대상으로 국한했지만, 내년에는 다른 사립 대학으로 확대한다.

 이 종합평가에서 한번 인정받지 못한 대학은 7년 동안 ‘좋지 않은 대학’으로 낙인 찍힌 채 재심사를 기다려야 한다. 대학의 모습이 달라진 까닭이 여기에 잇다. 홍익대 김영환 교무부처장은 “대학 평가에서 시설장비 따위 영역을 배면 교수 영역과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렇나 사정 때문에 각 대학은 부족한 교수를 충원하기 위해 발버둥칠 것이다”라고 말한다.

 교수 공채 양상의 변화는 교육 외적인 데서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다. 공정하게 교수를 뽑기 때문에 임용을 둘러싼 잡음이 사라진다. 또 박사 학위를 따고서도 교수 자리가 부족해 고급 인력을 썩히는 사회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된다.

 그러나 사회 한켠에서는 최근 변화를 일과성으로 보려는 시각도 없지 않다. 대학 평가를 대비해 취약점을 가리려는 숫자 불리기 경쟁이므로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전국강사노조협의회 대의원 한면희씨(성균관대 박사)는 “대학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재원 조달이다. 안정적인 재원 조달 방안 없이 교수 수만 늘리는 것은 임시방편에 그칠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대학간 경쟁은 이제 대세가 되었다. 교육 당국은 그와 같은 경쟁을 더 강화하라고 재촉하고 있는 실정이다. 빚을 얻어서라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것이 오늘날 대학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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