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화려한 선택 “초라한 일류는 싫다”
  • 박성준 기자 ()
  • 승인 1995.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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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세계 20위권 진입 목표 … 총리 관할 특수법인으로 /입학제도 개선·예산 집행권 확대 등 운영 자율화에 초점

명년 사이 대학 내부 구성원들에게서조차 ‘수재를 뽑아다가 둔재를 만들어 내보내는 대학’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을 들어온 국립 서울대는, 최근 원대한 포부를 담은 1백50쪽 분량의 장기 발전 계획서를 내고 재도약을 위한 시동을 힘차게 걸었다. 보고서 이름은 <서울대학교 2000년대 미래상>이다. 서울대측은 2월16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보직 교수 4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연 학사협의회를 통해 이 보고서를 앞으로 추진할 발전 계획의 기본안으로 공식 채택했다.

 보고서 제5장에 실린 ‘2020년 서울대학교 지표’의 몇 항목을 살펴보면 이 대학이 겨냥하는 미래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도표 참조). 서울대가 목표로 잡은 학생 1인당 장서 수는 2020년에 1백50권이다. 94년 현재 서울대의 학생 1인당 장서 수인 51.7권에 비해 약 3배로 늘어난다. 대학 교육의 질을 평가할 때 자주 쓰이는 잣대인 ‘교수 1인당 학생 수’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겠다는 서울대의 의지는 결연하다. 교수 1인당 학생 수를 94년 21.2명에서 2020년에는 10명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이는 선진국의 내로라 하는 일류 대학 수준과 맞먹는다. 일본 동경 대학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9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내 대학 전체의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35명 정도이다. 목표대로라면 2020년 서울대의 학문 경쟁력은 세계 백위권 바깥에서 20위권으로 훌쩍 뛰어오른다.

 서울대가 장기발전 계획안을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대는 60년대에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이라는 10년짜리 발전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여기 저기 흩어진 단과대를 한 캠퍼스 안에 묶는 이 계획은, 79년 12월 서울대학이 새 요람으로 터를 닦은 관악 캠퍼스로 공대를 이전함으로써 완료되었다. 그밖에 79년과 83년에도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굵직굵직한 자체 발전 계획을 다듬어 구체화한 예가 있다.

 

법학·의학 분야 대학원 과정으로 전환

 서울대의 2000년대 발전계획안은 그간 이 대학이 거의 10년마다 한번 꼴로 입안해온 대학 발전 계획의 ‘90년대판’인 셈이다. 계기는 물론 세계화 추진 ? 교육시장 개방 등 변화하는 추세와 맞물려 논의되고 있는 교육 개혁에 있다. 연세대?고려대 등 일부 사립대가 앞다투어 발전안을 세우거나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자극이 된 것이 틀림없다. 지난해 11월 서울대는 장기발전 계획을 위한 공청회 자리에서 이같은 사실을 직접 시인한 바 있다. 서울대측은 “국내 대학들 가운데 개혁을 시도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선도적인 역할을 자임해온 서울대로서도 체계적인 개혁 노력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국내 처음으로 실시된 대학종합평가인정제(종합평가제)였다. 종합평가제란 전국 대학을 영역 별로 평가하여 성적이 우수한 대학에 ‘인정’판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각 대학에 대한 지원도 차등화하여 대학 교육의 질적 발전을 꾀하려는 제도다. 서울대는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실시한 종합 평가제에 전남대 · 전북대 · 충남대 · 경북대 · 부산대 · 포항공대와 나란히 신청서를 내 교육 · 연구 · 사회봉사 · 교수 · 시설 등 7개 영역에 걸쳐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종합평가를 위한 1차 자료를 대교협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서울대가 실시한 ‘자체 평가’의 내용에 있었다. 여기서 나온 각종 수치는 서울대가 대부분의 영역에서 여전히 국내 최고 수준임을 입증하는 것이었지만, 대학측이 스스로 그럴 것이라고 믿어왔던 세계적 수준과는 한참 거리가 있음이 드러났다. 예컨대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일본 동경 대학의 2.4배였다. 교육의 질적 수준과 직결되는 시설 영역에서, 실험실습 설비 확보율은 전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서울대의 학생 1인당 장서 수는 51.7권으로 미국 하버드 대학생(6백59권)의 10분의 1에도 못미쳤다. 서울대측은 이같은 평가 내용을 반성의 계기로 삼아 위기를 정면 돌파할 장기 발전 계획을 세우는 데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바로 ‘2020년 세계20위권 대학’을 목표로 하는 <서울대 2000년대 미래상> 보고서이다. 하지만 서울대의 발전 계획안에서 정작 중요한 대목은 이 대학이 내세운 목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채택한 방안에 있다. 이른바 10대 전략으로 부르는 서울대 발전 전략의 주요 골자는 △서울대 특수법인화 △독자적인 입학제도 운영 △예산 집행의 재량권 확대 등 주로 대학 운영의 자율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사회적 파급력과 관련하여 특히 주목되는 것은 법대·의대·치과대·사범대 등 몇몇 전문 직업 분야의 학부 과정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다. 서울대는 광범위한 기초 이론가 높은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법학·의학 분야는 학부 과정을 폐지하고 대학원 과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정했다. 약학대학은 학부 과정을 그대로 두되 현행 4년제에서 6년제로 늘릴 계획이다.

 대학 교육 전문가들은 이처럼 법학·의학 교육을 대학원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서울대의 방침을 획기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이다. 학부에서의 법학·의학 교육이 파행으로 치달은 데 대해 교육 전문가들 대부분이 공감해 왔기 때문이다. 대교협 부설 고등교육연구소 이현청 소장은 “법대를 예로 든다면,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대학원 중심으로 법학을 연구하는 체제가 정착되어 있다. 사범대의 경우도, 미국은 사범대 개혁안이 나온 80년대 중반부터 ‘교양은 학부 과정에서, 교직 과목은 대학원에서’라는 공식이 일반화했다”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서울대의 학제 개편안은 선진국 추세로 보나 전문 직업 교육에 내실을 기한다는 필요성으로 보나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학제 개편안이 모두에게 환영 받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사범대 재학생들은 학사협의회가 <서울대 2000년대 미래상>을 공식 채택하던 날, 회의장으로 몰려가 학제 개편에 반대하는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 대학 사범대 부학생장 김동원군(수학교육과 4학년)은 “학부제 유지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로 보인다. 분명한 것은 대학원 체제를 도입하더라도 교직난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대학원 중심 교육을 통해 내실을 기하려는 대학측의 노력은 학생들에게 부담만 더해줄 뿐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일부 국립대, 이기주의라며 비난

 서울대 장기 발전 계획의 10대 전략 가운데 또 하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이는 사항은 특수법인화 문제다. 서울대를 특수법인체로 만들어 대학 운영의 재량권을 확보하려는 이같은 전략은 정부 통제가 지나치게 엄격해 오히려 서울대를 하향 평준화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다. 서울대는 특수법인화를 위해 별도의 입법 조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즉 ‘서울대에 대한 관할권을 교육부장관에서 국무총리로 변경하고, 교육 예산의 일정 비율을 서울대에 할애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국립서울대학교 법(가칭)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계획은 다른 대학들로부터 ‘서울대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들을지도 모른다. 특히 지금까지 서울대와 동등하게 대접받았던 서울대 이외의 다른 국립 대학은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부산대 정동현 기획실장은 “특수 법인화 계획은 국립 대학의 자율성을 신장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법안의 핵심은 서울대만 특별 대우를 받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 필요성이 절실하다해도 이같은 발상에는 찬동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46년 국내에서 가장 먼저 국립 대학으로 개교한 이래 서울대는 줄곧 국가와 민족 사회의 발전에 견인차 노릇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000년대를 눈 앞에 둔 지금 서울대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과연 서울대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은 국민의 선택에 의해 판가름 날듯하다.

朴晟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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