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 제도, 확대보다는 정착이 더 우선이다
  • 조효완 (서울진학지도협의회 회장·은광여고 교사) ()
  • 승인 2009.08.0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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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의 본질과 달리 또 다른 특기자 선발로 전락할 우려 커…전문성 키우고 계약직 신분도 정규직으로 바꿔야

▲ 조효완 (서울진학지도협의회 회장·은광여고 교사)

2010년 입시의 화두는 ‘입학사정관’ 전형이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대학이 고등학교 교육 과정과 대학의 학생 선발 방법 등에 대한 전문가인 입학사정관을 채용하고, 입학사정관을 활용해 학생의 성적·개인 환경·잠재력 및 소질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신입생을 선발하는 제도’를 말한다. 입시철이 되자 각 대학은 언론 매체를 통해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한 자료를 쏟아 내고 있다. 여기에 지난 7월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말쯤이면 입학사정관제로 100% 학생들을 뽑게 될 것이다”라고 밝히는 등 성급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는 2010학년도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과 학부모, 그리고 진학을 담당하는 교사들을 매우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수시를 불과 100여 일 앞둔 상황에서 ‘준비되지 않은’ 정부의 강력한 드라이브는 미처 예상치 못하게 수험생들의 판단을 흐리게 할 수도 있다. 또한, 현재 중·고교 재학생들 모두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전형으로 착각해 입학사정관 전형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또 하나의 특기자 전형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지금 전국적으로 학생과 학부모, 일선 교사들은 이 제도의 정체성이 과연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고, 진학 지도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7월24일 충북 괴산고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과 하트 모양을 그리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생·학부모·교사, 제도의 정체성에 혼란

지금까지 대학 입시는 자격고사(1962), 예비고사(1969), 학력고사(1982), 대학수학능력시험(1994) 등 여러 변화를 거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86년부터 논술·면접·내신 등의 대학별 고사가 실시되었고, 고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학교생활기록부가 전형의 한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점차적으로 대학 입시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부담을 증가시켜 온 셈이다. 이렇게 거듭된 변화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대학의 서열화는 깨지지 않고, 고교등급제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으며, 대입 전형이 다양화될수록 사교육은 활개를 치고 있다. 입학사정관 제도의 도입 배경은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2008학년도 이후 대학 입학 제도 개선안(2004.10.28)’에서 찾을 수 있다. 점수 위주의 선발인 대학 입시의 불합리성을 개선함으로써 대학의 서열화를 깨뜨리고, 고교와 대학의 특성화를 구축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학업에 대한 지나친 과열 경쟁을 완화시켜 사교육비 부담을 감소시키고, 고교는 다양한 프로그램 제공으로 학생의 적성과 능력을 계발해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를 선발 육성하도록 힘쓴다는 취지도 있다. 한편으로는 대학 자율화의 성공 여부도 이 제도에 달려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2년의 실험 기간을 거친 입학사정관 제도는 2010년 대학 입시에서 전면적으로 확대 실시될 계획이다.

정부는 이 제도를 단시일에 확대 실시하기 위해 2007년 20억원, 2008년 1백57억원, 2009년 2백36억원 등으로 계속 지원금을 늘려왔다. 지원금을 계속해서 증액한 이유는 입학사정관 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입학사정관 제도의 관련 주체들에 대한 문제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부 대학들, 학업 우수자 전형으로 취지 흔들어

첫째, 일부 대학 전형에서는 무늬만 입학사정관제 전형일 뿐, 실제 내용은 또다시 점수의 서열화를 부추기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특기와 잠재력 위주로 선발하겠다고는 하나, 교과 성적 반영 비율이 큰 탓에 얼굴 가린 학업 우수자 전형의 또 다른 형태를 띠기도 한다. 대학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쫓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입학사정관 제도의 원래 취지에 걸맞은 대학 입시 전형으로 고쳐야 한다.

둘째, 각 대학 입학사정관들의 전문성 결여이다. 입학사정관의 임무 중 하나는 해당 학생의 고교 교육 과정과 그 내용을 면밀히 관찰하고, 입학 후에도 그 학생의 대학 생활까지 관찰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런 만큼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데 아직까지는 비전문가 입장에 서 있다. 따라서 고교와 대학 간의 연계 확립과 지속적인 연수를 통해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입학사정관은 계약직이라는 점이다. 대학에서 다른 행정 조직으로부터 독립된, 즉 입학과 관련된 업무만을 수행하는 전문가이지만 자리에 대한 불안감으로 입학사정관으로서의 임무에 충실하기 힘들다. 사교육 기관으로 자리를 옮길 수도 있어 자칫 공교육의 정상화에 역행할 수도 있다. 입학사정관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넷째, 각 대학은 선발하고자 하는 인재상의 개념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대학이 인재상의 정의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에 따른 선발을 한다면 고등학교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토론식 수업, 다양한 학습의 형태를 갖출 수 있어 학생과 학부모, 교사를 비롯한 교육의 질적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선발 과정에서 대학이 학교 내의 교육 활동에서 이루어진 것만 심사하여 평가한다면 사교육이 끼어들 자리가 없을 것이며, 또 다른 사교육비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없어질 것이다.

여러 문제점이 돌출되고 있지만, 그래도 일선의 학교와 교사, 학생, 학부모들은 입학사정관 전형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 우선 학교측은 조기에 진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다양한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하는 교육 과정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또한, 생활기록부는 학생의 고교 3년의 활동 기록물이므로 학생의 3년간의 활동을 좀더 구체적이고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 학생의 특성을 잘 드러내도록 충실하게 기록해야 한다. 학교 소개 자료(School Profile) 또한 학교생활, 학습 활동, 동아리 활동, 방과 후 활동, 심화 교육 활동 등을 중심으로 작성해 각 학교의 특색 있는 교육 활동을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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