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침몰 사건 파장이 한반도 급변 사태로 치달으면
  • 박승준 / 인천대 초빙교수 ()
  • 승인 2010.04.1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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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중국 등 주변국, 핵 문제에 얽혀 무력 충돌 원치 않아…동북아에 긴장 국면은 지속될 듯

 

▲ 2006년 1월 중국을 비공식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숙소를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천안함 침몰 사건을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4월7일 국내 언론은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해 북한이 전군에 고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도록 지시했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발로 일제히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4월6일 “천안함 침몰 사고 원인이 밝혀지면 그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만약 천안함 침몰이 북한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명될 경우 주변국들은 어떤 행동을 취하게 될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연기될 것이라는 전언과 함께 동북아 정세가 순식간에 위기감에 휩싸이는 양상이다. 

만약 천안함 침몰이 명백히 북한에 의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이 사태는 이른바 한반도의 ‘컨틴전시(Contingency·급변 사태)에 해당하게 된다. 한국전쟁 종전 이후 한반도에서는 적지 않은 컨틴전시가 발생해왔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컨틴전시는 지난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에 발생한 북한 핵실험이다. 1994년의 김일성 사망도 급변 사태였다. 한국에서는 1979년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와 12·12 사태, 1980년의 광주 민주화운동(광주사태)같은 급변 사태가 발생했다. 앞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과 북한 내부의 정권 또는 정체(政體) 붕괴가 있을 경우 그것은 또 다른 급변 사태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남북한의 직접적인 무력 충돌, 또는 충돌 위기에 해당하는 급변 사태로는 1968년 북한 124군 특수부대의 청와대 공격과 1971년 8월23일 서울 대방동에서 벌어진 실미도 특수군 자폭 사건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른바 ‘실미도 사건’은 1968년의 북한 124군 특수부대의 청와대 공격이 원인이 되어 빚어진 사건으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보복을 위해 실미도 특수부대를 조직하고 훈련하게 함으로써 발생한 사건이다. 실미도 특수부대의 훈련과 자폭 사건은 영화 <실미도>에 잘 그려져 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에 벌어진 실미도 사건의 배경 과정을 잘 되짚어보면, 오늘날 천안함 침몰 사건 파장에 따른 남북한의 전에 없는 팽팽한 군사적 긴장 상태가 계속될 경우에 주변 국가들, 특히 미국과 중국이 어떤 행동을 보여줄 것인가를 유추해볼 수 있다.

침몰 원인, 영원히 서해 바닷속에 ‘수장’될 수도

당시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이 평양 공격에 나서지 못한 것은 영화에서 그려진 것처럼 한국의 중앙정보부가 관련되어 빚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치적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에 빚어진 결과였다. 당시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이 서울 대방동에서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한 8월23일보다 한 달 보름 전에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는 헨리 키신저 미국 대통령 안보보좌관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전세계의 눈을 따돌린 가운데 양국 데탕트(화해)를 전제로 한 비밀 회담을 가졌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극이 서로 맞서고 있던 냉전을 기본으로 한 국제 정치 환경에 중국과 미국의 화해라는 새로운 요소가 만들어진 것이었고, 그런 변화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양극화 냉전을 기본 전제로 해서 끌어가던 한반도의 국제 정치 환경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1971년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친 키신저-저우언라이 회담에서 저우언라이는 키신저에게 “남조선이 북조선을 공격하는 일이 빚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력히 주문했고, 키신저는 닉슨 미국 대통령과의 협의를 거쳐 저우언라이의 그런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런 대화 내용은 닉슨 대통령의 통치 사료가 30년간의 비밀 보존 연한이 풀린 2001년에 공개됨으로써 알려졌다.

닉슨 대통령 통치 사료에 따르면, 당시 키신저와 닉슨,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 간의 회담을 통해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배타적으로(exclusively) 이익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키신저와 저우언라이가 합의한 틀은 39년이 흐른 지금도 미국과 중국 사이 한반도 다루기의 기본 틀로 작용하고 있으며,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은 그 중요한 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기본 정책을 그렇게 정리해볼 경우, 천안함 침몰 사건이 명백히 북한과 연관된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그런 상황이 남북한 간에 군사적 충돌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위안화 환율 문제를 비롯해서 경제적으로는 갈등을 빚고 있지만, 국제 정치와 안보 문제에서는 협력 관계가 잘 유지되고 있고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4월5일 방한한 중국 외교부부장, 한국 정부에 ‘입장’ 전달한 듯

▲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9년 6월16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가진 공동 기자회견 도중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은 4월12일과 13일 이틀로 회의 일정이 잡힌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Global Nuclear Summit)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간의 회담을 통해 천안함 침몰 사태와 그로 인해 예상되는 파장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논의의 방향은 너무나 명백하다. 미·중 두 정상이 해결해야 할 큰 문제는 북한과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해야 한다는 안건인 만큼, 천안함 침몰 문제에 대해서는 그 여파를 최소한 축소하는 방향으로 미국과 중국이 영향력을 발휘하자는 이외의 논의 방향은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바마와 후진타오의 회동과 관련해 추이톈카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4월7일 베이징에서 설명회를 열어 “중국은 핵보유국으로서 북한과 이란 등 핵 개발을 시도하는 국가에 대해 반대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핵문제에 대해 제재보다는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서울을 방문한 최고위 외교관인 왕광야 중국 외교부 부부장도 4월5일 방문을 통해 한국 외교 당국에 충돌을 바라지 않는다는 중국의 의사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전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많은 신문과 방송이 주목하고 있는 점은 천안함 침몰이 김정일의 중국 방문설이 나도는 가운데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 대해서 중국 외교부 장위 대변인은 지난 4월6일 외교부 정례 뉴스브리핑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중국과 북한은 정상적인 국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두 나라의 우호 협력 관계가 부단히 심화되기를 바란다. 나는 중국 공산당과 조선 노동당 사이의 고위층 간 교감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양국 사이의 고위층 방문은 주관 부서가 따로 있으며, 기자 여러분들은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과 북한 사이의 협상을 통해 확정될 방문 절차에 대한 여러분들의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이날 브리핑에서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부정하지 않은 것이다. 천안함 침몰 사태에도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라는 중국측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중국이 평양이든 서해안이든 한반도에서 급변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중국 외교 정책의 기본에 따른 것이다. 과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제1 세대 지도자 마오쩌둥의 외교 전략은 ‘언제든 미국이나 유럽과 한바탕의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 마오쩌둥의 외교 전략에 대해 후임자 덩샤오핑은 ‘평화와 발전’이라는 말로 근본적인 수정을 가했다. 경제 발전을 위해 “언제든 한바탕의 전쟁을 치른다”라는 마오쩌둥의 대외 전략을 바꿔버린 것이다. 더구나 한반도의 급변 사태는 중국의 경제에 변화의 흐름을 가져올 중대 문제이므로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천안함 침몰이 설사 북한과 연관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런 가능성 자체를 애써 무시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양 강대국의 이같은 이해관계로 볼 때, 자칫 천안함 침몰 사고의 진실마저 영원히 서해 바닷속에 수장될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은, 미·중은 지금의 사태가 동북아 전체의 위기로 확대되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한반도에서의 긴장 상태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 방위 조약’ 대 ‘조·중 협력 조약’

천안함 침몰이 만약 북한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질 경우 전개될지도 모를 한반도의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북한과 중국 간의 ‘조·중 우호 협력 조약’과 한국과 미국 간의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의 적용 여부가 커다란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두 조약 모두 한반도 유사시 중국과 미국이 개입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측이 ‘중·조 우호합작호조조약(中朝友好合作互助條約)’이라고 부르는 조·중 우호 협력 조약은 그 제2조에 ‘자동 개입 조항’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이 조약을 체결한 쌍방은 어느 일방이 어떤 국가로부터의 침략도 방지하기 위한 일체의 조치를 취한다. 일단 어느 일방이 특정 국가 또는 몇 개 국가가 연합한 곳으로부터 무장 침공을 받을 경우, 이로 인한 전쟁 상태에 처할 경우, 다른 일방은 즉시 전력을 다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조약은 1961년 7월11일 베이징에서 당시 북한 내각수상 김일성과 중국 국무원 총리 저우언라이의 서명으로 체결되었고, 그해 9월10일 발효되었다. 이 조약의 유효 기간은 20년이며, 파기를 희망할 경우 6개월 전에 통보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통보가 없을 경우 20년간 자동 연장하도록 되어 있다. 북한과 중국은 1981년과 2001년에 두 차례 자동 연장했고, 현재 조약의 유효 기간은 2021년까지이다. 북한과 중국은 해마다 7월11일 평양과 베이징에서 조약 체결 기념식을 성대하게 거행해왔다. 

조·중 우호 협력 조약보다 5년 앞선 1953년 10월1일 워싱턴에서 변영태 당시 외무장관과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 사이에 체결된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은 자동 개입 조항은 없으나 희망할 경우 개입할 수 있는 조항을 갖추고 있다. 이 조약도 제2조에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정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침공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라고 규정하고,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자조와 상호 원조에 의하여 무력 공격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하여 강화시킬 것이며, 본 조약을 실행하고 그 목적을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하에 취할 것이다’라고 정해놓았다. 이 조약의 제6조는 ‘이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며, 1년 전 통보로 정지시킬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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