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서열화 주범 ‘외고·자사고’ 수술대 올랐다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7.06.22 16:13
  • 호수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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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핵심 공약…국민 정서 따라 폐지 잇따를 듯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고 했다. 100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은 정권에 따라 수시로 바뀌었다.

 

박근혜 정부의 대선 교육 공약은 ‘대입 간소화’로 집약됐다. 대학 전형의 종류가 3000여 가지나 되고, 수능·학생부·논술 등 평가 요소를 반영하는 비율이 제각각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입 전형을 담당하는 교사가 아니면 교사들조차 입시 상담에 애를 먹었다. 이런 입시 전형을 단순화하겠다는 게 박근혜 정부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소리만 요란했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존 수능 제도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사교육을 부추겼다고 지적받아온 수시 전형에서 수능 최저 학력 기준 허용, 대학별 고사(논술·구술·적성고사) 유지, 공인 어학 인증시험과 외부 수상 실적 등 스펙 쌓기 특기자 전형을 그대로 유지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6월15일 서울 여의도 교육시설공제회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서울시·경기도 구체적 방침 정해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속도전 교육정책인 ‘입학사정관제’는 대입에서 공정성과 신뢰성을 훼손시켜왔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이에 대한 개선안도 담기지 않았다. 사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스펙을 많이 쌓을수록 대학 진학이 쉬워지는 형태였다. 사교육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 이명박 정부가 도입한 수준별 수능을 폐지하기로 했고, 국가영어능력시험(NEAT)을 수능 영어로 대체하려던 구상도 백지화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춤을 췄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교육정책의 대수술이 예고돼 있다. 물론 방향이 잘못되거나 시대착오적인 것은 과감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대신 앞으로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을 미래를 내다본 교육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개혁 중 하나는 ‘외국어고(외고)’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의 폐지다. ‘특수목적고(특목고)’에 대한 대폭적인 수술도 불가피해졌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3월22일 교육 공약을 발표하며 “공평한 교육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고교 서열화를 완전히 해소하겠다.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 입시 명문고가 된 외고와 국제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외고와 자사고는 그동안 입시 서열화를 부추기고 교육형평성을 헤친다는 이유 등으로 폐지론이 대두됐었다. 제도 도입취지와는 반대로 ‘입시 학원화’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문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서 외고와 자사고의 폐지는 예견됐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지명한 것도 이런 의지의 반영이다. 김 후보자 역시 외고와 자사고 폐지론자 중 한 명이다. 정부 인수위원회에 해당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이를 구체화해서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담은 국정운영 5개년 이행 계획서에 외고와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이에 발맞춰 외고와 자사고의 폐지 방침을 속속 밝히고 있다.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은 관내에 있는 외고와 자사고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이를 구체화하기로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6월28일 폐지 시기와 방법 등 구체적 방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경기도교육청은 2019년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13~14곳을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이끌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외고와 자사고 폐지에 대해 찬성 입장에 있다. 때문에 외고와 자사고의 폐지는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전국에는 외고 31개교와 자사고 46개교가 있다. 이 중 서울시에 외고 6개교와 자사고 23개교 등 전국의 38%가 밀집해 있다. 경기도 관내에 있는 10곳을 포함하면 서울과 경기도에 전국 외고의 45%, 자사고의 54%가 몰려 있다.

 

다른 지자체들도 고심할 수밖에 없다. 강원도교육청의 경우 외고와 자사고의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현재 강원도에는 외고 1곳(강원외고)과 자사고 1곳(민족사관고)이 있다. 강원외고의 경우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방자치단체가 전액 투자해 설립한 공립형 사립학교다. 현재 양구에 위치해 있는데 지역 특성상 일반고로 전환되면 학생 수 급감이 불을 보듯 뻔하다. 자칫 학교가 존폐위기에 내몰리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강원도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강원외고를 공립으로 전환해 존치하는 것과 아예 폐지하는 것을 놓고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해당 지자체인 양구군의 반대가 예상된다. 외고 유치를 통한 지역발전을 도모했는데 만약 일반고로 전환되거나 폐지된다면 이런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횡성에 있는 민족사관고도 일반고로 전환될 경우 학생 수 감소 등 운영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6월13일 서울 용산구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무실에서 열린 ‘2021학년도 수능 절대평가 도입 4개 단체 공동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크게 4가지 방향으로 가닥

 

문재인 정부가 외고와 자사고 등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 여기에 명시돼 있는 외고와 자사고의 설립 근거 조항을 삭제하고, 고교 유형에 따른 선발 시기를 규정한 것을 없애는 것이다. 이는 국회 통과 없이 대통령령으로 고칠 수 있기 때문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현재 외고와 자사고의 폐지 방향으로는 크게 4가지가 거론된다. 첫째는 ‘지정 취소’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주요 골자는 외고와 자사고 지정을 취소할 때 교육부 장관의 ‘협의’를 거치도록 한 것을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바꿨다. 만약 시·도교육감이 외고나 자사고 지정 취소를 강하게 밀어붙인다고 해도 교육부 장관이 ‘NO’ 하면 성사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데다 새 교육부 장관도 여기에 발맞출 것이 뻔해 시·도교육감의 지정 취소 의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둘째, 단계적 지정 취소다. 현재 외고와 자사고, 특목고는 5년마다 학교 운영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감이 재지정 여부를 결정한다. 학교 재정운영, 운영성과 평가 등 지자체가 정한 기준에 미달하면 지정 취소가 가능하게 돼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2015년 운영성과 평가에서 자사고 3곳(경문고, 세화여고, 장훈고)과 특목고(서울외고), 특성화중(영훈국제중) 등 5개 학교가 기준 점수에 미달해 ‘2년 후 재평가’ 결정이 내려졌다. 12개 부분의 점수를 매겨 60점 미만이면 지정 취소가 가능해지고, 교육부가 동의하면 일반고로 전환된다. 이번에 이들 학교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반영하면 ‘지정 취소’로 갈 확률이 높다. 지방의 경우 대전의 자사고 1곳이 재지정 대상이며, 내년에는 세종의 세종국제고와 충남 삼성고가 재지정 대상이다.

 

셋째, 선발 시기를 늦추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금의 외고와 자사고의 선발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현행 방식은 외고와 자사고는 일반고에 앞서 학생을 뽑는다. 때문에 학생들은 외고와 자사고에 지원한 후 불합격할 경우 일반고에 진학할 수 있다. 만약 외고와 자사고의 지원시기를 일반고와 동일하게 맞춘다면 자연스럽게 지원자가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넷째, 외고와 자사고의 학생을 추첨제로 뽑아 학교의 선발권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일반고와 큰 변별력이 생기지 않아 이전의 폐단을 획기적으로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

 

대통령과 교육감이 폐지하겠다고 해서 곧바로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 교육청 학교 운영성과 평가를 통과한 학교는 25개교(자사고)다. 2015년에는 53개교(외고 31개교, 자사고 16개고, 국제고 6개교)다. 현행법상 이들 학교는 각각 2019년, 2020년까지 현재의 학교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받은 상태다. 정부가 강제적으로 지정 취소나 폐지를 강행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올해 재지정이 예정된 학교는 지정에서 배제하고, 향후 재지정 대상이 되면 그때 정부 방침대로 시행할 수 있다. 현재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여러 상황을 놓고 방법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떤 방식을 선택하든 외고와 자사고에 재학 중인 학생과 학부모, 학교 동문들의 반발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외고와 자사고 진학을 위해 내신관리 등을 해 온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도 적잖은 동요가 예상된다. 앞서 서울시의 재평가 대상이 된 학교의 경우 폐지를 위한 점수 매기기가 이뤄지면 그 기준을 놓고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래저래 한바탕 홍역은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2018학년도 대학 입시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와 학생들 ⓒ 사진=연합뉴스

 

내년 교육감 선거가 변수

 

물론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년 6월에 시행되는 교육감 선거다. 이때 외고와 자사고 폐지는 선거의 뜨거운 감자로 부각할 것이 뻔하다. 대다수 국민 정서는 외고와 자사고의 폐지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입시 위주의 교육에 치중하면서 학교 서열화를 부추겼다고 보는 것이다. 때문에 교육감 선거 때도 각 후보자들의 주요 공약으로 ‘외고와 자사고 폐지’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외고와 자사고 폐지 반대’를 내세운 교육감이 당선됐을 때는 정부 방침에 차질이 생길 수가 있다. 해당 교육청과 정부의 상당한 갈등과 진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의 우동기 대구교육감은 “지역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외고나 자사고를 폐지하는 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이에 반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나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단체들은 “외고나 자사고는 입시교육에만 치중해 학생들 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등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도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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