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기의 잉여Talk] 논어에서 배우는 ‘헬조선 탈출’ 설명서
  • 신동기 인문경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1.3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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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어겼던 이들이 그 사실들을 실토하는 것을 ‘배신·복수·저격’으로 규정짓는 게 옳을까

 

공자의 제자 자로는 성격이 급했다. 그래서 공자는 자로를 두고 일찍이 ‘제대로 된 죽음을 맞지 못할 것이다’(不得其死)라고 했다. 자로는 공자의 예언대로 난(亂) 중에 죽었다. 그런데 그 죽음은 사실 피할 수가 있었다. 자로는 자신이 모시는 주군인 첩(輒)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했다. ‘(첩으로부터) 녹을 받아먹었으니 그 난을 피해서는 안 된다’(食焉 不避其難)는 의리였다. 

 

논어에서 호인이라는 이는 이 사건에 대해 “‘첩의 녹을 먹었으니 첩을 위해 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만 알았지, 첩의 녹을 먹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徒知食焉不避其難之爲義 而不知食輒之食 爲非義也)고 자로를 평가한다. 

 

자로가 죽게 된 자초지종은 이랬다. 자로의 주군인 위(衛)나라의 제후 첩에게는 아버지 괴외(蒯聵)가 있었다. 괴외는 일찍이 자신의 어머니였던 남자(南子)의 음란 행위를 문제 삼아 남자를 죽이려다 미수에 그쳐 진(晉)나라로 망명을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들인 첩이 할아버지로부터 직접 제후의 자리를 물려받자, 자신의 조카이자 첩의 사촌인 집정대신 공회(孔悝)를 협박해 제후인 아들 첩의 자리를 노리고 난을 일으켰다. 이 때 제후 첩을 모시던 자로가 첩에게 의리를 지키느라 죽음을 감수한 것이다.

 

그런데 난이 벌어지기 전에 공자는 제자인 자로에게 이 문제에 대해 이미 해법을 제시했었다. 바로 제후 자리에 있는 첩이나 첩의 아버지 괴외 둘 다 옳지 못하니, 제후 자리를 첩의 작은 아버지이자 괴외의 동생인 공자 영에게 물려주고, 두 사람 모두 물러나도록 하라는 해법이었다. 아버지와 제후 자리를 다투는 것도 옳지 않았고, 아무리 음란하다 할지라도 어머니를 죽이려는 것 역시 인륜지사에 반하는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자로가 이 해법을 천자에게 진언하지 못해 결국 난을 초래하고 자신도 죽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호인은 ‘난을 피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만 알았지, 첩의 녹을 먹는 것 자체가 옳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1월13일 김희중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이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범법자들 간의 충성과 시혜가 옳은 일일 수 없어

 

언론의 규정짓기가 가관이다. 법을 어겼던 이들이 법을 어겼던 사실들을 실토하는 것을 배신·복수·저격으로 규정짓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 배경에 ‘주군과 가신’ 간의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러브스토리를 깔고 있다. 

 

옳은 것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깡패끼리의 의리가 옳은 의리일 수 없고, 도둑끼리의 신뢰가 옳은 신뢰일 수 없고, 범법자들 간의 충성과 시혜가 옳은 일일 수 없다. 두 ‘옳음’이 있을 때 어느 쪽이 어느 쪽을 포함하느냐에 따라 ‘큰 옳음’과 ‘작은 옳음’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작은 옳음’은 ‘큰 옳음’이 전제될 때만 ‘참 옳음’이 된다. 조직의 윗사람에게 충실한 것은 옳음이다. 그러나 그 윗사람이, 그 조직이 마약을 거래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 충실은 옳음이 아니다. 그것은 마약을 더 많이, 더 잘 거래할 수 있도록 돕는 잘못된 일이다. 범법자들 간의 의리는, 특히 공직에 있어서의 권한이 큰 범법자들 간의 의리는 상호간의 또는 그들끼리의 이익을 지키는 데는 옳겠지만, 국가와 국민들에게는 악이다. 그것도 거악이다.

 

또 하나, 걸핏하면 등장하는 ‘주군과 가신’ 간의 ‘맹목적 충성’과 ‘펫 길들이기 시혜’의 러브스토리에 대해서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나 장관에는 그 옛날의 왕이나 정승의 그림자가 아직도 강하게 어른거린다. 주체적으로 역사에서 왕정을 청산하지 못했던 탓일까. 인류 역사에 민주주의와 공화정이 시작된 지 200여년이 지났는데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왕정시대를 살고 있다. 

 

헌법 1조2항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주군과 가신 프레임이 전혀 이상하지 않는 곳이 있긴 하다. 바로 깡패조직과 같은 불법조직들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아직 주군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대통령이 아닌 국민일 뿐이다. 가신에게 월급을 주는 이가 국민이고, 그 가신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 역시 대통령이나 국정원장이 아닌 국민이기 때문이다.

 

헬조선의 헬은 ‘작은 옳음’이 ‘큰 옳음’을 비웃는 데서 시작된다. 질서를 어지럽히니 사회는 불공정해질 수밖에 없다. 조선(朝鮮)은 글자 그대로 왕조시대의 ‘주군과 가신’ 프레임이다. 민주주의 아닌 권위주의이다. 권위주의는 도처에 부조리를 낳는다. 불공정과 부조리가 횡행하는 세상에서는 제 정신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그래서 헬조선이다.

 

깡패들끼리의 의리를 칭송해서는 안 된다. 그 ‘묻지마’ 의리가 내 가족과 이웃을 헤칠 수 있다. 범법공직자들의 의리를 미화해서는 안 된다. 그 끈적끈적한 의리가 당신의 나라와 자식 세대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한다. 이젠 상식을 좀 챙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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