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빈(內外賓)’은 틀렸다. ‘내빈(來賓)’이 맞다
  • 신동기 인문경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2.06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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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기의 잉여Talk] 잘못된 단어를 버젓이 사용하는 無사려

 

지금 생각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운 기억이다. 필자가 대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동아리 친구가 사람 키 정도의 높이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친구를 부축해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의사 선생님이 ‘낙상’이라고 했다. 검사 결과 특별한 문제는 없어 외부 상처만 치료받고 곧장 퇴원했다. 퇴원하고 난 뒤 친구들 간에 토론이 벌어졌다. 

 

친구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으니 ‘낙하(落下)’라고 해야지 왜 의사선생님이 ‘낙상’이라고 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한 친구가 위에서 떨어졌으니 ‘낙상(落上)’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일단 그런 의미의 ‘낙상’이라는 말이 좀 어색하긴 했지만 말은 됐다. 그럼 낙상이나 낙하나 둘 다 같은 의미일까?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낙상’이라고 했던 것일까?

 

 

위에서 떨어져 다친 사고를 ‘낙상’이라고? 낙하(落下)가 아니고?

 

세리모니의 계절이 찾아왔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졸업식 그리고 입학식이 한동안 전국적으로 진행된다. 학교 세리모니 시즌이 끝나면 이번에는 기업 세리모니가 시작된다. 바로 주총이다. 더불어 결혼 예식도 많아진다. 사랑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계절은 역시 봄이니까. 

 

졸업식이나 입학식 또는 결혼식에 갔을 때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 ‘이 자리에 참석해주신 내외빈 여러분’이라는 멘트다. 내외빈 여러분? ‘내외빈 여러분’이라는 것은 ‘내빈(內賓)’과 ‘외빈(外賓)’, 즉 ‘내부 손님’과 ‘외부 손님’을 한꺼번에 묶어서 부르려는 의도일 것이다. 세리모니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전형적인 멘트를 사용하던 1980~90년대에는 ‘내외빈’이 아닌 ‘내빈’이라는 말만 사용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때 내빈은 ‘내부 손님’이라는 의미의 ‘내빈’이 아닌, 멀리서 이 자리를 ‘찾아오신 손님’이라는 의미의 ‘내빈(來賓)’이었다. 

 

© 사진=Pixabay

 

그렇다면 지금의 ‘내외빈’이라는 말의 ‘내빈(內賓)’과 20여 년 전 전형적인 용어였던 ‘내빈(來賓)’은 어떤 관계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內賓’은 틀렸고 ‘來賓’은 맞다. ‘내부 손님’이라는 의미의 ‘內賓’이라는 말은 단어 자체에 어폐가 있다. 단어로써 성립이 안된다. ‘빈(賓)’의 의미는 ‘손님’이다. 그리고 그 상대어는 ‘주인(主)’이다. 행사를 할 때는 주인과 손님이 있을 뿐이다. 주인 이외에는 모두 손님이다. 즉 ‘이 자리를 찾아주신 손님’, 즉 ‘來賓’이다. 

 

그리고 예법에 따라 상대방을 높이고 감사를 드릴 경우에도 그 대상은 ‘찾아오신 손님’인 ‘來賓’이지, ‘내부 손님’이라는 의미의 ‘內賓’이 될 수 없다. ‘내부 손님’은 그냥 ‘손님’ 아닌 주최 측 자신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주최 측 여러 사람들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것에 대해 주최 측 대표로 감사를 드릴 의도라면 그것은 내부 사람들에게만 해야 마땅하다. ‘내외빈’은 결국 어법에도 맞지 않고 예법에도 맞지 않다. ‘주인’을 ‘손님’이라 부르고, 행사의 주인이 주인 자신에게 참석에 대한 감사 표시를 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런 의미를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내외빈 여러분’하는 멘트를 듣게 되면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을 수 없다. 한자말인데도 불구하고 한자 의미를 따져보지 않은 데서 발생한 사고다.

 

 

낙상(落傷)을 낙상(落上)으로 잘못 안 데서 오는 무지

 

 ‘낙상(落傷)’은 ‘떨어지거나 넘어져서 다침’이고, ‘낙하(落下)’는 ‘떨어져 내림’이라는 의미다. 앞의, ‘낙상’은 ‘落上’이 아닌 ‘落傷’일진데, ‘落下’와 대비해 ‘落上’으로만 생각한데서 발생한 무지이다. 이 정도 한자말 사고는 그래도 애교다. 좀 다른 유이긴 하지만 대형사고도 있다. 바로 6·25전쟁의 ‘남침(南侵)’이라는 표현과 같은 경우다. 별도 역사지식 없이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이 이 말을 처음 접하게 되면 그것이 ‘남쪽을 침략했다’는 것인지, ‘남쪽이 (북쪽을) 침략했다’는 것인지 종잡기 힘들다. 

 

‘서풍(西風)’이라는 말과 비교해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서풍’은 바로 서쪽‘으로부터(From)’ 불어오는 바람을 말한다. 그에 반해 남침은 바로 남쪽‘을 향해서(To)’ 침략해 온 전쟁이다. 한쪽은 ‘∼으로부터’, 즉 ‘From’이고, 다른 한 쪽은 ‘∼을 향해’, 즉 ‘To’이다. 이런 말들은 그 조어의 목적 및 의미에 있어 가리키는 방향이 절대적인데, 그 방향이 완전히 반대로 해석될 여지를 갖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런 낱말들은 만들어진 의미가 전혀 없다. 현상을 정확하게 나타내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로 받아들일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을 더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어린 학생들의 양식을 탓하기 전에 그 말을 만든 어른들의 무(無)사려가 먼저 반성되어야 한다.

 

1980~90년대는 낱말 뜻을 찾으려면 국어사전이 있어야했고, 한자 의미를 알아보려면 옥편이 필요했다. 국어사전은 주머니 아닌 집에 있었고, 옥편은 곁에 있어봤자 사실 무용지물이었다. 한자 찾기가 너무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 앓느니 죽는다고 한자 찾기를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던 기억이 많다. 그때 무지는 핑계 댈 데라도 있었다. 100% 내 탓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세계 최대·최고의 사전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바로 손 안의 스마트폰 속에. 스마트폰에 들이는 시간 중 100분의 1만 들여도 ‘낙상(落傷)’과 ‘낙상(落上)’을 구분 못해 무지를 드러내는 어설픈 20대의 사이비 지성인을 면할 수 있다. 또 자기 식구를 손님이라 부르고 또 스스로를 높이는 우스꽝스런 일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더불어 잘못 만들어진 낱말에 대해서는 그 잘못된 점을 공론화 해 기성세대가 자신들의 잘못을 후세대에 덤터기 씌우는 그런 억울한 일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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