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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할 수 없는 딸 대신 ‘타임즈 업’ 하는 《쓰리 빌보드》

[영화를 통해 보는 세상] 2016년 이후 잊혀지던 ‘포함 조항’, 다시 뜨겁게 부활

서영수 영화감독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9(Mon) 16: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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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4일 미국 로스앤젤레스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0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마틴 맥도나 감독이 각본을 쓰고 직접 연출한 《쓰리 빌보드(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는 여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탔다.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남편 조엘 코엔이 감독한 영화《파고(Fargo)》로 69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후 21년 만에 《쓰리 빌보드》에서 ‘밀드레드’ 역할로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이날 시상식에선 지난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케이시 애플렉 대신 조디 포스터와 제니퍼 로렌스가 시상자로 나섰다. 전년도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여우주연상 수상발표를 하는 전통에도 불구하고 애플렉이 나서지 못한 것은 성범죄자 논란이 일고 있는 그의 시상식 참여를 아카데미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파문으로 촉발된 ‘미투’ 운동은 아카데미 시상식 현장에서도 현재진행형이었다.

 

《쓰리 빌보드》에서 경찰서장 ‘윌러비’역을 완숙하게 소화한 우디 헤럴슨과 마마보이 경찰관 ‘딕슨’역을 대체 불가한 신들린 캐릭터로 만든 샘 록웰은 남우조연상을 놓고 경쟁했다. 두 명의 남우조연상 후보가 한 작품에서 나오면 둘 다 탈락했던 징크스를 깨고, 이번엔 록웰이 남우조연상을 생애 처음 수상했다. 《쓰리 빌보드》를 만든 마틴 맥도나 감독은 조지아를 여행하다가 고속도로에 설치 된 빌보드(옥외게시판)에 미해결 범죄촉구를 위한 광고를 발견하고 영감을 얻어 《쓰리 빌보드》를 구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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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으로 비참하게 죽은 딸로 인한 공권력에 대한 분노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인적이 끊긴 한적한 도로에 방치된 세 개의 빌보드를 응시하던 밀드레드가 헤어진 남편이 두고 간 트랙터를 팔아치운 돈으로 옥외광고를 하면서 미주리주의 한적한 마을 에빙은 지방TV의 주목을 받는 핫스팟이 된다. 주민들로부터 존경받는 경찰서장 윌러비를 무능하고 무책임한 공무원으로 몰아붙인 광고 내용은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마을사람 대부분을 밀드레드의 적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밀드레드의 아들 로비는 엄마의 분노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상식을 넘어서는 엄마의 도발적 행위에는 동조하지 않는 조숙한 10대 학생이다.  

 

강간당하고 불에 태워진 시신으로 발견된 딸을 살해한 범인을 7개월 동안 잡지 못하고 수사 경과도 제대로 듣지 못한 밀드레드는 ‘미투’ 할 수없는 딸을 위해 빌보드 광고로 ‘타임즈 업(Time's up)’ 한다. 비참하게 죽은 딸이 마지막 외출하던 저녁에 폭언을 퍼부은 자신이 품은 회한과 무능한 공권력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어 표출된 행동이었다. ‘성폭력은 이제 그만!’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타임즈 업’은 ‘미투’ 운동에 공감하고 동조하는 ‘위드유(With you)’보다 더 적극적인 의사표현이다. 

 

‘타임즈 업’은 올 1월1일 미국 연예계 종사자 여성 300여 명이 의기투합해 결성한, 모든 여성근로자를 위한 법률 지원 펀드 프로젝트의 이름이기도 하다. 메릴 스트립과 엠마 왓슨, 나탈리 포트만, 엠마 스톤, 리즈 위더스푼처럼 유명 연기자들과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한 인기 방송인, 그리고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도 동참한 ‘타임즈 업’은 1300만 달러의 기금조성을 목표로 성폭력과 성차별 받는 여성을 위해 실질적 대안제시와 다양한 캠페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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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과 인종 차별 없이 균등한 기회 보장을 외치는 ‘포함 조항’

 

책임자라는 이유 하나로 지역사회에서 매도당한 경찰서장 윌러비는 밀드레드를 찾아가 수사의 어려움과 암투병중임을 토로하지만, 밀드레드는 빌보드 광고를 내릴 생각이 추호도 없다. 췌장암 말기증상으로 피를 토해내는 경찰서장 윌러비는 시한부 인생으로 구차하게 사느니 아내와 어린 두 딸에게 추억을 남기고 스스로의 죽음을 택한다. 아내에게 남긴 유서 외에도 윌러비는 자살하기 전 분노로 가득 찬 밀드레드와 마마보이 경찰관인 딕슨에게도 편지를 남긴다.

 

윌러비의 죽음이 TV로 보도되면서 밀드레드는 공공의 적이 된다. TV를 보고 찾아온 낯선 사내로부터 위협받던 밀드레드는 고인이 된 윌러비의 아내가 찾아온 덕에 위기를 모면한다. 남편의 유서를 전해주러 온 윌러비의 아내는 밀드레드의 애도 표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망자가 보낸 편지에서 동질성을 회복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밀드레드는 다음 달 광고비를 내준 익명의 후원자가 윌러비였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빌보드 광고는 ‘신의 한수’였다고 칭찬하며 자신도 자극받아 ‘위드 유’”하며 “자살과 광고내용은 전혀 무관하다”고 윌러비는 서면으로 밝힌다. 

 

윌러비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추종하던 후배 경찰관 딕슨은 광고업자를 찾아가 엽기적 폭행을 가한다. 신임 경찰서장에게 해고당한 딕슨은 빌보드 때문에 윌러비가 죽었다고 오해하고 빌보드에 불을 지른다. 아들 로비와의 귀갓길에서 불타는 세 개의 빌보드를 목격한 밀드레드는 불길을 잡으려 길길이 날뛴다. 소방관도 새로 부임한 경찰서장도 믿지 못하고 적으로 간주한 밀드레드는 ‘이에는 이’로 화답하듯 화염병을 투척해 경찰서를 불태운다. 불바다가 된 경찰서 유리창을 뚫고 뛰쳐나와 뒹구는 딕슨을 보고 놀라는 밀드레드. 딕슨은 모두가 퇴근해 텅 빈 경찰서에 몰래 들어가 윌러비가 보낸 유서를 읽고 있다가 온몸에 화상을 입는 봉변을 당한 것이다. 

 

윌러비가 남긴 유서 마지막 줄은 “딕슨 넌 운이 좀 없어 보여. 하지만 앞으론 좋아질 거야”였다. 불에는 불로 맞선 밀드레드와 딕슨은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는다’는 명언을 체감하며 자기가 아닌 상대편 입장에서 서로를 보기 시작한다. 딸을 죽인 범인은 아니지만 유사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분명해 보이는 남자를 찾아가는 밀드레드의 차에 동반자로 동승하는 딕슨은 커다란 산탄총을 가져간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어 새로운 분노의 표적을 찾아 나선다. 구성이 탄탄한 한편의 연극을 본 듯한 《쓰리 빌보드》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백인 주류사회 구현’ 정책을 비판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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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수상소감을 발표하면서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을 빛낸 최고의 순간이 시작됐다. 출연계약서에 추가조항을 요구할 수 있는 A급 연기자들이 ‘포함 조항(Inclusion rider, 성차별과 인종 차별 없이 균등한 기회 보장)’을 적극 활용해 차별 없는 시대를 만들어 가는데 일조하기를 원하는 맥도맨드는 수상소감 말미에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모든 여성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준다면 영광입니다. 메릴 스트립, 당신이 일어나면 모두가 함께 할 거예요”라고 외쳤다.

 

주저 없이 일어선 스트립을 따라 모든 여성 후보자가 일어섰다. 맥도맨드는 객석을 향해 “오늘 저녁 저는 단 두 단어만 말하겠습니다. ‘포함 조항’”을 간결하게 강조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시상식장에 울렸다. 스타파워로 ‘갑질’ 대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제안은 감동이 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할리우드 성차별 이면의 데이터’(The data behind Hollywood’s sexism)라는 강연에서 스테이시 스미스가 2016년 처음 사용한 ‘포함 조항’은 잊혀진 단어가 되었다가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발언 이후 구글에서 검색이 급등하고 미리엄 웹스터(Merriam-Webster) 사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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