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 골머리 앓는 독일은 지금…
  • 강성운 독일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4.10 15:32
  • 호수 1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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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정부, 교통 통제·전기자동차 지원·단거리 무료 대중교통 등 대안 내놔

 

미세먼지는 불과 몇 년 사이 한반도의 생활상을 크게 바꿔 놨다. 시민들은 미세먼지 오염도를 보여주는 앱을 통해 수시로 바깥 공기의 청정도를 확인한다. 미세먼지와 황사를 막아주는 마스크는 외출 시 필수품이 됐고 장시간 환기가 어려워지자 가정용 공기청정기와 세탁물 건조기 판매량도 역대 최고치로 증가했다.

 

이런 방책들은 한국에서 미세먼지 방지가 개인의 책임이며 개인의 경제력이 좌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스크 속 작은 공간에서 집 안 전체에 이르기까지, 개인이 쾌적한 공기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은 돈을 쓸수록 넓어진다. 지금 한국의 미세먼지 문제 해결책은 오염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대신, 각자의 신체나 거주 공간 등 사적이고 한정된 영역을 보호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최근 독일 사회도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이 독일의 미진한 대응을 문제 삼고 “적극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으면 기소하겠다”고 한 이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런데 ‘독일 최악의 대기오염 도시’라는 오명을 얻은 남서부의 도시 슈투트가르트는 미세먼지 주의보를 내려도 “마스크를 쓰라”는 권고를 하지 않는다. 시사저널은 독일의 사례를 통해 미세먼지 문제의 공공적 해결 방안 가능성을 모색했다.

 

1월1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400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미세먼지 해결 촉구를 위한 집회가 진행됐다. © 사진=DPA연합


 

시민단체 승소, 디젤차 운행금지 합법화

 

2월27일 독일 자동차산업계와 정치권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시민단체 독일환경행동이 뒤셀도르프와 슈투트가르트시를 상대로 제기한 ‘공기청정계획안’ 개선소송 3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독일환경행동이 제안한 개선안의 핵심은 “시 당국은 (대기를 오염시키는) 특정 자동차 모델을 강제로 운행 중단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규정은 지금보다 느슨한 배기가스 기준에 맞춰 생산된 구식 디젤 승용차를 정조준하고 있다. 진보 성향의 뉴스 사이트인 sz.de는 만약 구형 디젤차 운행금지가 전국적으로 시행된다면 약 1000만 대의 자동차가 멈춰 서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BMW사는 경유엔진을 단 X5와 X6의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위르겐 레쉬 독일환경행동 대표는 이 판결이 “정치권에 대해 세차게 따귀를 때렸다”며 자축했다. 그동안 독일 정치권이 대기오염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동차산업계는 로비를 통해 독일 정치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동차는 대기오염의 주요 원인이다. 특히 문제는 배기가스보다 자동차의 브레이크와 타이어다. 보수 성향의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FAZ) 보도에 의하면, 2014년 기준으로 자동차·항공기·선박을 포함한 교통수단의 배기가스가 대기오염에 미치는 영향은 미세먼지(PM-10) 기준 15%, 초미세먼지(PM-2.5) 기준 23%에 불과하다. 하지만 브레이크와 타이어가 마모되면서 발생하는 오염물질, 그리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가 바람을 일으켜 공중에 부유하는 미세먼지까지 고려하면 대기 중 입자의 절반이 도로교통을 통해 발생한다.

 

그동안 독일에서 자동차가 일으키는 대기오염 논의는 질소산화물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배기가스뿐 아니라 자동차 운행 자체가 공기오염 물질을 만들고 확산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세먼지가 문제라는 인식이 점차 생기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연방행정법원의 판결 이후 일각에선 “디젤차뿐 아니라 휘발유 차량도 운행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차도에 설치된 미세먼지 경고 표지판 © 사진=EPA연합


 

독일의 미세먼지 대책은 오염원 중심

 

독일 정부가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EU가 강경 대응을 예고하자 독일 연방정부는 교통 통제, 전기자동차 지원, 단거리 무료 대중교통 등의 대안을 내놓았다. 자동차산업계에 최소한의 타격을 주는 정책들이다. 그러나 이 중 대중교통 무상 운영안은 지자체의 반대와 예산 부족으로 무산됐다. 다만 대기오염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바덴-뷔르템베르크주의 세 도시에서 절충안을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로이틀링엔시(市)는 디젤 운전자에게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안을 내놨다. 1년간 지역의 대중교통 무료 이용권을 주고,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곳이나 장거리 이동은 카 셰어링(나눔차) 멤버십, 택시 쿠폰, 열차표 50% 할인권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승용차 포기자가 유연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복합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한편 분지에 있어 대기오염이 심한 슈투트가르트시(市)는 미세먼지 주의보를 ‘사후처방’이 아닌 ‘예방’ 차원에서 실시 중이다. 독일기상청이 2일 이상 대기의 순환 능력이 크게 저하될 것이라고 판단하면 발령한다. 미세먼지 수치가 EU 기준치인 50ug/㎥을 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가 운영하는 미세먼지 주의보 사이트엔 시민들이 실천할 수 있는 9개의 행동요령이 있는데, 이 중 8개가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 혹은 자전거나 도보를 이용하라는 내용이다. 다른 난방 기구가 있는데도 ‘분위기’를 위해 벽난로를 때는 것 역시 금지됐다. 이 방안들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지만 오염된 공기의 ‘흡입’이 아니라 오염 자체를 예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한국과 차이를 보인다.

 

개인뿐만 아니라 시 당국도 계속해서 새로운 미세먼지 예방안을 실험하고 있다. 지난해 3월부턴 야간에 물청소차를 운행하고 있다. 미세먼지의 근원이 되는 도로의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데 효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오염이 특히 심각한 네카토어 일대의 4차선 도로엔 길이 100m, 높이 3m의 이끼벽을 설치했다. 이끼가 미세먼지를 빨아들이고 심지어 양분으로 쓴다는 연구에서 착안한 것이다. 슈투트가르트의 자연사박물관이 주축이 된 연구팀은 서리이끼, 측백제이끼, 솔송뻐꾹이끼 등 세 종류의 이끼를 섞어서 심었다. 지난 여름 가뭄으로 이끼의 3분의 1이 말라 죽고 계측기가 파손되는 등 ‘악재’가 있었지만, 시 당국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실험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당국은 올해 6월경 실험 결과가 나오면 이끼벽의 상용 가능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미세먼지는 새로운 산업의 발달로도 이어지고 있다. 루드빅스하펜에 본사를 둔 필터 전문업체인 ‘만운트 훔멜’은 도심형 공기청정 시설을 개발하고 실험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브레이크용 필터와 자동차용 공기청정기를 장착한 시험 차량 세 대의 운행을 시작했다. 브레이크용 필터는 눈에 띄게 미세먼지를 감소시켰다. 흥미롭게도 이 자동차용 공기청정기는 차 내부가 아닌 지붕에 장착해 도로의 미세먼지를 제거할 목적으로 개발됐다. 독일의 미세먼지 대책이 지향하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에서 지난 10년간 사회문제의 공공적 해결보다 각자도생의 생존법을 체득한 사람들은 정부와 산업계에 대책을 요구하는 대신 편의점에서 마스크를 사서 쓰고 있다. 그러나 개인은 아무리 넓어도 자기 집 크기 정도의 공간만을 깨끗한 공기로 채울 수 있다. 누구나 집에서 창문을 활짝 열고, 마스크 없이 거리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려면 정부가 적극 움직여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도 예방 차원의 불편을 감수한다는 사실을 독일의 사례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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