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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살아 있는 우리 삶의 비늘들이 다 문화재”

《노포의 장사법》 펴낸 박찬일 셰프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09(Sat) 10:00:00 | 14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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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정보연구소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2017년 하반기 전국 8대 업종의 폐업률은 2.5%로 창업률(2.1%)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 생겨나는 업소보다 사라지는 가게가 더 많았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음식업종은 폐업률 3.1%, 창업률 2.8%로 8개 업종 중 창·폐업이 가장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자 출신 요리사 박찬일 셰프가 최근 펴낸 《노포의 장사법》은 음식점 창업을 꿈꾸거나 오래 유지하고픈 이들이 귀담아들을 만한 ‘대선배의 조언’을 전한다.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 한 시대가 들어오는 듯한 식당들이 있다. 맛이 있어 오래 남아 있는 식당, 그것을 우리는 노포(老鋪)라 부른다. 노포를 오래 취재하다 보니 어떤 중요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다. 이른바 ‘살아남는 집의 이유’다. 물론 맛은 기본이다. 운도 따라야 한다. 그 외에 가장 중요한 건 한결같음이다. 사소할 것 같은 재료의 손질, 오직 전래의 기법대로 내는 일품의 맛, 거기에 손님들의 호응으로 생겨난 기묘한 연대감 같은 것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수많은 식당들이 간판에 ‘SINCE 19XX’를 써 붙이고, 전국의 노포 식당만 찾아다니는 식객들도 늘었다. 2017년 서울시는 오래된 가게들의 가치를 헤아리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39곳의 노포를 지정하고 ‘오래가게’라는 이름을 붙였다. 노포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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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셰프’로 알려진 박씨는 대한민국 곳곳에 숨은, 평균 업력 54년에 육박하는 노포 26곳의 창업주와 대를 이은 이들을 직접 만나고 돌아왔다. 그들은 단순히 오래 ‘생존’함에 그치지 않고, 대를 이어 내려오며 세월을 이기고 살아 있는 ‘전설’이 된, 한국형 밥장사의 성공 모델들이다. 그들은 트렌드·마케팅·브랜딩 없이도 꾸준히 단골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빛나는 장사 비결, 비용이나 마진과 같은 경영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우직한 승부수를 가지고 있었다. 

 

 

세월을 이기고 살아 있는 전설이 된 비결

 

박씨는 노포 식당들의 성공 비결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 번째는 ‘기세’다. 평균 업력 50년 이상 된 노포 식당의 창업주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의 면모다. 1939년에 창업한 서울 하동관은 지금도 점심시간마다 직장인들이 줄을 서지만, 하루 단 500그릇만 팔고 문을 닫는다는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 더 벌자면 더 팔면 되겠지만, 매일 소 한 마리분을 받아 손질해 무쇠솥 두 개에 늘 똑같은 방식으로 푹 삶고, 다 팔면 오후 서너 시에도 문을 닫는다. 매일 최선을 다하되 더는 욕심 내지 않는 것, 그것이 하동관의 장수 비결이다. 최고의 재료를 쓰되, 너무도 간결한 맛이라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다는 하동관 곰탕의 맛은 그런 기세를 바탕으로 유지된다. ‘장사는 크게, 멀리 보는 것’이라 말하는 거상(巨商)의 면모가 돋보이는 노포의 뚝심은 종종 ‘함께 오래’ 일하는 직원의 존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상당수의 노포에서 몇십 년씩 일하며 고희와 팔순을 넘긴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세간의 정년이 한참 지난 이들을 끝까지 보듬으며, 서로 의지하며 가는 것이다. 

 

두 번째 비결은 ‘일품’으로 정리한다. 대다수 노포들은 최고의 맛을 위해 고된 노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직 손맛으로 일가를 이룬 집념의 장사꾼들이었다. “‘67년째 손으로 빚는다. 그것은 자존심 같은 것’이라 말하는 이들에게서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최상의 맛을 선보이겠다는 집념에 더해, 무엇보다 ‘밥장사는 누군가의 배를 불리는 일’이라는 사명을 잊지 않는 푸근한 인심이 또 다른 비결이다. 대전역 앞을 60년째 지켜온 신도칼국수는 무엇보다 ‘푸짐한 양’ 때문에 유명해졌다. 2인분짜리 주문에 ‘바케쓰’ 가득 퍼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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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자 내공이 번뜩이는 장사법의 보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고통스러운 근현대사를 맞은 탓에, 우리에겐 백년 노포가 거의 없다. 지금 노포가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도 대를 이어 수십 년간 업을 지속해 온 위대함을, 그 가치를 이 시대가 재발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순히 메뉴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노포는 좁게는 개인의 추억 속에서, 넓게는 한 사회의 문화사 속에서 유물이 되고, 독자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서 박씨는 노포의 성공 비결 세 번째로 ‘지속’을 꼽는다. 

 

“서울 을지로 야장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을지오비베어는 생맥주와 노가리 안주 맛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구순(九旬)이 다 되도록 매일 아침 10시에 문을 열어 가게 앞을 쓸고 직접 ‘디스펜서(생맥주를 공급하는 손잡이 장치)’를 잡고 ‘생활의 달인’처럼 정확하게 맥주를 따르는 창업주 때문에도 꼭 한번 가봐야 할 노포다. 구도자 같은 경건한 태도, 참으로 악착같이 살았던 그의 삶은 한 가지 일을 지속한다는 것의 위대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장사의 표본이 된다.”

 

박씨는 이 노포들이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기를 바란다. 한국의 노포는 대를 거듭해 우리에게 남은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인 동시에, 우직하지만 담대한 내공이 번뜩이는 장사법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씨는 왜 식당은 무형문화재나 인간문화재로 지정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무형문화재, 인간문화재는 반드시 예술에만 해당하는데, 곰탕 만드는 것이 어떻게 문화재가 될 수 없나. 봉산탈춤을 추는 사람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처럼, 국밥 만드는 사람에게 문화재 지정을 해 줘야 한다. 서울 한양 음식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 설렁탕, 곰탕밖에 없다. 장국밥이나 구한말 냉면, 그런 것에 왜 무형문화재를 안 줄까. 그건 정책 당국이 음식 만드는 사람의 기술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삶이 훨씬 더 밀접하게 담겨 있는 건데. 비단은 지키고 무명은 버려야 하나. 그건 아니지 않나. 이런 살아 있는 우리 삶의 비늘들이 다 문화재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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