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혁명, 무시하거나 소외되거나
  • 조창완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15 13:41
  • 호수 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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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홍기대 작가가 읽어주는 암호화폐 《화폐혁명》

 

근대 화폐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시간은 1971년 8월15일 리처드 닉슨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한 ‘닉슨 쇼크’ 때다. 이 선언을 통해 금본위제는 사실상 막을 내렸으며, 이후 세계 화폐 시장은 기본적으로 변동환율제에 의해 굴러가게 됐다. ‘금 1온스=35달러’라는 등식은 사라졌지만 이후에도 미국은 세계 경제나 금융을 주도했다. 구소련의 붕괴로 미국의 달러 패권은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한국에 큰 상처를 안긴 1997년 IMF 사태나 2008년 월가(街)를 흔든 글로벌 금융위기는 달러나 신용버블을 일으키는 미국 주도 금융에 한계를 주기에 충분했다. 

 

홍익희·홍기대 지음 | 앳워크 펴냄 | 440쪽 | 2만2000원© 조창완 제공

 

 

미국이 밟아도 암호화폐는 꿈틀거리고 있다

 

1978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입사해 유럽과 미주를 중심으로 2010년까지 현장을 누빈 홍익희 작가에게 이런 금융의 변화가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었다. 특히 해외 주재원에게 원화의 폭락을 초래한 1997년 IMF 관리 체제는 삶의 근본을 허물었다. 이런 경험은 홍 작가에게 화폐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줬다. 우선 작가가 천착한 《유대인 경제사》 시리즈의 근간에는 달러를 만드는 ‘연방준비은행 FRB’를 주도하는 유대인이 빠질 수 없었다. 이 밖에도 단행본으로 달러, 환율, 월가를 다양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이 분야에서는 이론뿐만 아니라 현장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금융 흐름이 감지됐다. 바로 ‘비트코인’ 등으로 대표되는 암호화폐의 등장이다. 지난 1년간 끊임없는 논란 속에 우리 정부는 국내에서 암호화폐등록(ICO)을 금지시켰다. 이 분야 전문가인 홍익희 작가와 카이스트에서 ‘산업 및 시스템 공학’을 전공하고, 벤처 및 크라우드 펀딩, 스타트업에서 활동하는 홍기대 대표를 만나 이 책을 펴낸 이유를 들어봤다. 

 

작가는 화폐의 흐름을 3단계로 봤다. 우선 물물교환에서 화폐의 시대로 이행되는 실물화폐를 1차 화폐혁명으로 본다. 달러가 실체로 등장하는 신용화폐 시대는 2차 화폐혁명이다. 그리고 최근에 가시화되는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신뢰화폐)가 3차 화폐혁명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2차 화폐혁명으로 화폐 패권을 잡은 미국이 3차 혁명으로 가는데 어떤 입장을 보이는가가 중요해진다. 미국은 이것을 용인할 것인가.

 

“미국은 암호화폐가 달러를 대체하여 기축통화 자리를 넘보는 것을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핍박은 할 수 있어도 죽일 방법이 없습니다. 일례로 지난 3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열띤 논의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회의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강한 대처방안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암호화폐에 대한 몇 가지 긍정적인 합의들이 도출되고 있습니다. 기술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금지가 아닌 규제로 수위를 낮추었고, 암호화폐가 복지시스템에 도움을 준다는 점도 인정했습니다. 암호화폐는 암중모색하다가 달러가 금융위기에 휩쓸리거나 환율전쟁의 자충수를 둬 고율의 인플레이션 조짐이 보일 때 비로소 세력을 얻을 가능성이 큽니다. 궁극적으로 암호화폐의 미래는 시장이 결정할 것입니다.”

 

작가는 암호화폐가 어려움 속에 성장할 수 있고, 금융 자유주의에 도움을 줄 것으로 봤다. “암호화폐는 달러의 그늘 밑에서 태동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화폐는 그간의 강력한 화폐들과 달리 공간적 확장성, 물리적 패권을 추구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3차 화폐혁명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분권을 지향합니다. 자유와 창의가 암호화폐의 가치입니다. 이런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으로 상징되는 암호화폐는 기술적으로나 신뢰, 화폐 본연의 기능에서 믿음을 주고 있지 못하다. 이 때문에 우리 정부는 암호화폐는 물론이고, 블록체인기술이 가는 길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비트코인의 결제 역할 한계는 관련 이해 당사자들의 이해 충돌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닥치거나 절호의 기회가 와서 이들이 일치단결하면 모든 기술적 문제들을 쉽게 극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암호화폐가 익명성이 보장돼 추적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테러자금, 돈세탁, 환치기, 불법송금, 지하경제 등 불법과 음성거래에 암호화폐가 사용되기 때문에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보 당국이 익명거래를 해도 마치 은행 계좌를 추적하듯 누가 어떤 거래를 했는지 모두 알 수 있다는 사실이 노출됐습니다. 비트코인은 공공원장으로 사용자의 지갑주소가 공개돼 있어 필요하면 자금의 이동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 대신하는 ‘자산형 암호화폐’ 주목 필요

 

기존 증권시장에서 ‘주식공개상장(IPO)’으로 자금을 확보하는 대신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관심투자자의 자금을 모으는 암호화폐공개(ICO)를 통해 자금을 모으는 ‘자산형(asset)’ 암호화폐의 가능성도 물어봤다. 

 

“해외에서는 자산형 암호화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자산형 토큰은 사실상 주식, 증서, 계약 등과 같습니다. 암호화폐 보유자에게 수익분배나 이자지급을 하기 때문에 유가증권으로 분류됩니다. 2015년에 4000만 달러에도 못 미쳤던 세계 누적 ICO 규모가 불과 2년 만인 지난해에는 57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ICO를 통해 조달된 자금이 37억 달러로 뉴욕 증시의 IPO 규모 356억 달러의 10분의 1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ICO를 통한 자금조달이 금융제도권 안으로 성큼 들어오는 모양새입니다. 규제 가이드라인만 명확하다면 우리나라도 ICO 금지를 재검토해야 합니다.”

 

저자는 책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직접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라는 피터 드러커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나라 역시 암호화폐를 만들지 못한다면 미래에서 소외될 수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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