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투자④] “경협 통해 EU 같은 ‘하나의 시장’ 만들어야”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6.22 16:49
  • 호수 1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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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경협, 비핵화의 반 발짝 뒤에서 이뤄져야 바람직”

 

화창한 봄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완연한 화해 무드다. 남북한 경제협력(경협)의 기대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점차 커지고 있다. ‘한반도 신경제지도’에서 ‘신(新)북방정책 로드맵’까지 경협을 둘러싼 담론도 점점 거대해지는 모습이다. ‘북한 특수’나 ‘통일 대박’이라는 말도 다시 등장했다. 경협이 꾸준히 지속된다면 3%대 성장률에 머무르는 한국 경제는 5%대 성장을, 북한 경제는 한동안 10%대 성장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비핵화라는 큰 숙제는 물론 완전한 경협으로 가는 길목마다 불안한 살얼음이 남아 있지만, 이를 걱정하는 이는 드물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신중했다. “판이 바뀌고 있다”며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경협으로 장밋빛 미래가 성큼 다가왔다는 일각의 전망에 대해서는 극도로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김 교수는 6월19일 시사저널과 인터뷰하는 내내 “경협은 비핵화와 연동돼야 한다”는 대원칙을 수차례 역설하면서, ‘대북 투자는 로또’라는 낙관적 기대를 경계했다. 아울러 현재 제시된 경협안(案)들은 “본론·결론이 빠진 답안지와 같다”며 더 꼼꼼히 채워야 할 부분이 많다고 꼬집었다.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지만 김 교수는 경협 문제를 좁게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멀리, 넓게 봤다. 몇몇 기업들이 특수를 맞는 경협이 아닌, 경협을 통해 유럽연합(EU)과 같은 ‘하나의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협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 중 가장 낮은 단계”라면서 “충분히 숙의해 만든 그랜드 디자인 없이 기업 차원에서 경협이 이뤄지면 국제정세 변화 등에 따라 그동안 치른 비용에 대한 청구서가 세금으로 국민 전체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 침착하고 냉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사회주의 체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사회주의 및 체제 이행을 연구해 온 김 교수는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북한 경제 전문가다. 7년의 연구 끝에 지난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출판사에서 펴낸 영문 저서 《북한 경제의 베일 벗기기(Unveiling the North Korean Economy)》는 해외에서 북한 경제를 이해하는 주요 도서로 활용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희귀한 자료를 학문적 엄격성으로 분석한, 북한을 다루는 정책결정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평했다.

 

(사진 = 뉴스1)
 

 

경협에 대한 낙관적 전망들이 쏟아지고 있다. 어떻게 보나. 

 

“대원칙이 있다. 경협은 비핵화와 연동돼야 한다는 점이다. 경협의 바람직한 속도는 ‘비핵화의 반 발짝 뒤’라고 생각한다. 일각에서는 낙관적 전망 속에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관계없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가자고 하는데, 이는 대북 투자를 할 기업에도, 정부에도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예측이 안 되는 인물이다. 만약 한·미 공조가 깨지게 된다면 지금까지의 비용에 대한 청구서를 안보 영역과 결부시켜 우리에게 넘길 거다. 경협은 기업의 미시적인 이익과 국가의 거시적인 이익을 결합시키는 게 중요하다. 기업 중심 위주의 경협 일변도로 흘러가면 최적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경협이 비핵화와 연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북한의 비핵화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큰 투자금이 들어갈 경우 그 돈이 어떻게 쓰일지 담보할 수 없다. 작은 단위의 경협이 아닌 북한에 대규모 투자금이 들어가는 경협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이 원칙이 지켜져야 소탐대실하지 않을 수 있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인가.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 1960~70년대 아프리카 잠비아에 국제사회가 엄청난 지원을 했다. 세계은행 등이 총동원됐다. 이 돈이 경제를 살리는 데 제대로 쓰였다면 1990년대 초에 이미 잠비아 1인당 소득은 2만 달러가 됐어야 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떤가. 아직도 1200달러 수준이다. 무작정 투자한다고 경제개발이 되는 게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지점이다. 중요한 점은 경협을 통해 북한 경제를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동시에 관련 제도적 역량을 같이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경협의 효과는 북한 경제체제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나타나야지, 왜곡된 체제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경협도 디테일이 중요해 보인다. 

 

“맞다. 경협은 치밀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그리고 긴 호흡으로 짜여야 한다. 현재 경협안의 원천은 북한학 전문가들이다. 대북관계지만 경제 분야이기도 하기 때문에, 저개발국가 경제 발전, 성장, 체제 이행, 금융 등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 지금의 경협안은 이런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았다.”

 

경협안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나.

 

“경협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 중에서 가장 낮은 단계의 숙제를 해결하는 것에 불과하다. 바로 통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람직한 남북관계는 경협에서 시작해 ‘하나의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바로 남북 경제의 통합이다. 유럽연합처럼 높은 단계는 아니더라도 남북 경제가 이렇게 진전되려면 3가지 숙제를 동시에 풀어내야 한다.”

 

3가지 숙제가 뭔가.

 

“한마디로 하면 ‘이행·통합·추격’이다. 우선 북한이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법·제도 모두 바뀌어야 한다. 다음으로 남북 경제의 통합이다. 마지막으로는 북한 경제의 ‘추격 성장’이다. 이 세 가지 방정식을 동시에 풀어낼 수 있는 경협이 필요하다. 지금 경협안들은 기업 단위, 사업 위주다. 3가지 숙제와 연계된 전망과 통찰이 부족하다. 비유하자면, 서론만 써져 있고 본론과 결론이 없는 답안지와 같다. 경협을 반대하는 게 아니다. 경협으로 시작해야 하는 게 맞다. 다만 우리 앞에 중장기적인 거대한 숙제가 놓여 있음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

 

대북 인프라 건설이 경협의 첫 단추여야 한다는 인식은 어떻게 보나.

 

“역시 EU와 같은 하나의 시장을 만든다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인프라 건설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경제학자로서 인프라 사업이 북한에 처음 대대적으로 투자돼야 할 사업이라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현재 북한의 GDP(국내총생산)는 200억 달러(약 22조원) 수준도 안 된다. 우리나라로 비교해 보자면, 광주광역시 GDP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거론되는 인프라 투자금 규모는 수백억 달러에 이른다. 20조원 경제 수준의 국가에 그 정도 규모의 인프라를 구축한다면 오히려 경제에 불균형이 올 수 있다. 북한의 거시경제가 불안정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개성공단의 최대 강점은 무엇인가. 바로 저임금이다. 북한에 수백억 달러의 대대적인 인프라 건설이 시작되면, 일시적으로 경제에 붐이 일 것이다. 그러면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가게 된다. 북한이 가진 가장 큰 경쟁력인 싼 노동력이 사라지면서 수출 경쟁력도 약해지게 된다. 즉 지금 경협안에는 서로 양립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섞여 있다. 오히려 북한의 경제 발전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얘기도 있다. 옥석을 가려야 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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