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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정치적이야’라는 말, 어떻게 들리시나요?”

[김종일의 국회 사용설명서] 2회 - ‘정치’는 왜 외면 받고 있나

김종일 기자 ㅣ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8.07.15(Sun) 17: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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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종종 욕을 하게 됩니다. 직접 들리지 않아서 그렇지 욕하는 이상으로 욕도 먹고 있을 겁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신조를 갖고 있는 저도 운전대를 잡으면 이성을 부여잡느라 안간힘을 쓸 때가 있습니다. 

 

욕을 먹어도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에서 먹으면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합니다. 마감 날짜를 지키지 못했을 때 상사의 호출이라던가, 금주 선언 한 날 만취해 귀가했을 때의 식구들 반응은 사실 예상 가능합니다. 그럴 때 먹는 욕으로 ‘멘탈 붕괴’가 오진 않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느닷없는 욕은 당황스럽습니다. 특히 악의 없이 한 말을 상대방이 전혀 다르게 해석할 때는 동공에 지진이 오기 마련입니다. 저도 이런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아까 보니까 너 엄청 정치적이더라.” 이 말을 들었을 때 제 기분이 어땠을까요? 여러분은 어떠실 것 같나요? 저는 오랫동안 정치부 기자였고,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이었음에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습니다. 상대방이 선의로 한 말이었고 학술 세미나에서 정치학 서적을 공부한 후 나온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후 저는 ‘정치적이다’라는 말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주변에도 물어봤습니다. 대부분 “나라도 ‘정치적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정치적이다’라는 말을 여러 가지 안 좋은 어감을 담아 쓰는 것 같습니다. 먼저 ‘사회생활 잘 한다’라는 뉘앙스입니다. 상사 같은 윗사람한테 아부를 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사내 정치를 한다’는 어감도 있습니다.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 뒤에서 무언가 꼼수를 부린다는 느낌입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여론을 끌고 가려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뉘앙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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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대기업·검찰보다 신뢰도 낮아

 

‘정치적이다’라는 말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다면 ‘정치’라는 단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실제로 정치인들만큼 국민들이 신뢰하지 않는 집단도 없습니다. 통계청이 발간한 ‘2017년 한국 사회 지표’에 따르면 국회는 국가 기관별 신뢰도 조사에서 4점 만점에 1.8을 기록해 조사 대상 중 유일한 1점대를 기록했습니다.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가 2003년부터 진행해온 한국종합사회조사에서 국회는 신뢰도 부분에서 단 한 번도 꼴찌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한국갤럽의 ‘2017년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에서도 국회는 가장 낮은 수치인 15%를 받았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그토록 싫어한다고 여겨지는 신문사(39%), 대기업(31%), 검찰(31%)과도 큰 차이가 났습니다. 

 

정치는 왜 이렇게 국민들에게 외면 받게 됐을까요? 여러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국민들은 정치 세력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치는 분명히 위기입니다. 국민들은 정치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정말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민주주의 체제의 존립과 건강함에 정치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까요. 총수일가의 갑질과 비리 등을 폭로하며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가던 용감한 항공사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최근에도 이어지고 있지요. 집회에는 시민들도 참여하며 이들에게 힘을 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반기지 않는 손님이 있습니다. 바로 정치인들과 민주노총과 같은 노조단체입니다. 

 

이 집회를 주도하던 한 관리자가 언론 인터뷰(2018년 5월8일자 한겨레21)에서 한 말이 있습니다. 

 

민주노총과 정당의 개입은 철저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현재 00항공 노조의 상위단체가 민주노총이다. 그들이 개입하면 역효과만 난다. 순수성을 의심받게 된다. 오로지 우리 힘만으로 해내야하는 당위성이 우리를 뭉치게 만들었다. 앞으로도 쭉 이 기조를 이어가려한다.”

 

정치권이 개입하면 자신들의 순수성이 의심받게 된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들만 그럴까요? 아닙니다. 이런 사례는 최근 대중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비리, 갑질 고발 운동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지난 겨울을 뜨겁게 달궜던 촛불시위에서도 정치권의 참여는 별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어른들만의 일도 아닙니다. 대학생들도 정치를 신뢰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화여대 사례를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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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개입하면 순수성 의심 받아”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출발점이 됐던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에서도 이른바 운동권 세력의 참여는 철저히 배제됐습니다. 당시 열렸던 기자회견에서 한 학생이 마이크를 들자, 이를 지켜보던 학생들이 마이크를 든 학생이 ‘운동권’ 출신이라는 이유로 발언을 막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서로를 ‘벗’이라고 부르면서도 ‘순수한 이화인’의 의도가 변질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운동권’으로 지명된 학생들을 투표에 부쳐 농성장 밖으로 내보냈습니다. 당시 이화여대 곳곳에는 “시위는 어떠한 정치색을 띤 ‘외부세력’과도 무관합니다”라는 문구가 붙었습니다. 농성 과정에서 이화여대 학생들은 타 대학들의 연대집회도 거절했습니다. 정치권이 내민 손도 잡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화인의 목소리’라는 문구를 앞세웠고, ‘순수성’을 강조했습니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결국 학교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왜 이대생들은 정치를 배제시켰을까요. 확실하진 않지만 학습효과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권은 외부세력’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공격받았던 수많은 사례들에 대한 학습효과 말입니다. 그동안 한국 언론과 정치권은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집단의 시위에 시민단체나 종교계 등이 결합하면 이들을 ‘외부세력’이라고 몰아세웠습니다. 그러면서 당초 시위의 순수성이 변질됐다고 공격했습니다. 이런 프레임은 한 번 굳어지면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외부세력 프레임’에 대한 공포를 이대생들이 고스란히 느끼고 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국민 전체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두려운 감정을 대부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도출됩니다. 왜 우리는 어떤 요구를 해야 할 때 순백과도 같은 ‘순수성’을 증명해야 할까요? 또 왜 정치가 개입되면 그 순수성은 사라진다고 생각할까요? 무엇보다, 어쩌다 정치는 국민들한테 이렇게 멀어진 존재가 돼버린 걸까요? 왜 이렇게 신뢰받지 못하게 됐을까요? 정치가 이렇게 우리 일상에서 멀어져도 괜찮은 걸까요? 다음에는 이 얘기를 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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