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허점’ 뒤에 숨은 성인오락실
  • 유지만 기자 (redpill@sisajournal.com)
  • 승인 2018.08.10 14:09
  • 호수 15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다이야기 사태’ 후 제도 정비됐지만 실효성 낮아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마음으로 사과드린다.”

 

2006년 8월31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방송의 날’을 맞아 KBS와 진행한 특별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성인오락실인 ‘바다이야기’ 파문이 정국을 뒤흔들 때였다. 노 전 대통령은 회견에서 “특별팀을 만들어 전체를 분석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완벽하게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인과의 비공개 대화에서 임기 중 가장 힘들었던 문제로 성인오락실을 꼽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 전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하게 됐다. 시사저널의 취재 결과, 성인오락실과 관련한 제도가 정비됐다고는 하지만 실효성에는 여전한 의문이 남았다. 성인오락실의 불법적인 영업을 감시해야 할 게임물관리위원회의 관리요원은 오히려 줄었고, 현장에서는 불법적인 행위가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선에서 단속업무를 담당하는 현장 요원들도 “바다이야기 사태가 났었지만, 당시보다 나아진 상황은 하나도 없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2006년 8월24일 서울 중곡1동 성인오락실 ‘바다이야기’ 업소 외부에 설치된 불법 옥외광고물이 광진구청과 경찰서의 합동단속으로 강제 철거되고 있다. ⓒ연합뉴스


 

2008년 대대적 제도 정비했지만…

 

정부는 바다이야기 사태가 진정된 이후 2008년 대대적인 제도 개선 대책을 내놨다. 2008년 10월2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 뒤 기자 브리핑을 열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정부합동 불법 게임·도박물 근절 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우선 상습적 환전 등 사행성을 목적으로 게임물을 이용하는 행위와 불법 사행성 게임장이 입주한 건물주를 처벌하는 근거를 마련하고, 전체이용가 게임물의 경품 제공이 주로 불법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품 제공을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또 국세청은 불법영업자 간의 자금흐름을 추적해 음성탈루 소득을 추징하고, 세금탈루 혐의가 있는 사업자는 세무조사를 통해 위반 시 고발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와 검찰청은 조직폭력배 개입 게임장, 불법 게임물 제작·유통사범, 인터넷 도박 개장사범 등에 대해 집중 단속을 실시하고, 철저한 자금추적 수사로 범죄수익을 박탈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의 제도 마련으로 성인오락실이 주춤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까지도 뚜렷한 근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사업자 현황에 따르면, 현재 성인오락실이 포함된 ‘일반게임제공업’ 업소는 전국에 걸쳐 모두 2346곳에 달한다. 서울에만 252곳의 성인오락실이 영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바다이야기 사태 당시 전국에 1만4000여 개에 달하는 업소가 존재했던 시절에 비하면 확실히 줄었지만, 여전히 상당수 성인오락실이 별 탈 없이 영업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도 정비 이후 성인오락실 개업은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하도록 됐지만, 개업에는 그리 어려움이 없는 상태다. 시사저널에 제보한 내부 고발자는 “보통 ‘개인사업자’로 개업을 하기 때문에 지자체에서도 별다른 심사 없이 허가를 잘 내준다”고 말했다.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게임산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이 증폭되자 노혁우 강남경찰서장(오른쪽)이 2006년 8월22일 서울 논현동 한 성인 게임장을 찾아 실태 파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법·불법 만연한데 규제는 ‘손 놓아’

 

현재 운영되는 성인오락실에서도 여전히 불법과 편법 운영이 만연해 있다. 관련 정부 당국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사실상 손쓸 수 없는 상태다.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 시장이 위축되자, 정부가 스스로 규제의 힘을 빼버린 탓이다. 

 

우선 현재 성인오락실은 원칙적으로 상품권과 쿠폰 등을 통한 현금 거래가 불법이다. 또한 오락실 이용자 1명이 기기 1대에서 한 시간에 1만원 이상을 쓰게 될 경우 불법이다. 예컨대 1인이 기기 2대를 사용해 한 시간에 2만원을 사용할 경우 불법인 셈이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현장을 직접 취재한 결과, 1인이 많게는 10대 가까운 기기를 이용한 경우도 있었다. 또 현장을 둘러보는 기자에게 접촉해 현금 거래를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이를 관리하고 단속해야 하는 게임물관리위원회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실제 현장에서는 현금거래와 1인 1시간 한도를 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만연해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단속이나 처벌은 점점 어려운 추세다. 실제로 청소년의 출입이 가능한 오락실을 비롯한 성인오락실 등을 단속해야 할 게임물관리위원회의 단속요원은 몇 년째 규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익명을 요구한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정부가 규제에서 손을 놓아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국에 퍼져 있는 PC방과 청소년 출입 가능 오락실, 성인오락실 등을 포함하면 단속 대상이 4만여 개에 달한다. 하지만 이를 현장에서 감시할 요원은 12명 정도밖에 없다. 한때 게임물관리위원회 사후관리단이 운영되며 인원이 40여 명에 달할 정도였던 적이 있지만, 어느 순간에 조직이 축소돼 버렸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한 것 같은 느낌이다.”

 

처벌제도 역시 규제 및 단속을 어렵게 하고 있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일반게임 제공업자, 청소년게임 제공업자는 영업장 안에서 1명이 동시에 2대 이상의 게임물 등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1차 경고, 2차 영업정지 5일, 3차 영업정지 10일, 4차 영업정지 1개월에 달하는 처벌을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영업정지 1일당 과징금 10만원을 내면 영업정지를 피해 갈 수도 있다. 시사저널의 취재에 따르면, 성인오락실이 하루에 버는 돈은 150만원가량이다. 

 

법적 처벌도 힘든 상황이다. 현재 게임물관리위원회 및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불법 영업을 적발할 경우 업소에 대한 정보를 지자체나 경찰에 넘긴다. 하지만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기란 요원하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지자체에 처벌을 요구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나온 일이 있어서 지자체에 단속 확인 결과 정도만 보내주는 수준”이라며 “특별한 처벌을 요구하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털어놨다. 

​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