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②] (단독) ‘실미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下)
  • 김지영 기자 (young@sisajournal.com)
  • 승인 2018.09.03 09:10
  • 호수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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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부대 공작원 유족들 文 대통령에 보낸 탄원서 입수…사망 24명 중 11명 유족 미확인, 4명은 유해도 못 찾아

※앞선 ☞[실미도①] (단독) ‘실미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上)편에서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유족들이 정부에 바라는 건 크게 두 가지. 무엇보다 먼저 유해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국방부에 진정서도 10차례 이상 넣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회신 공문을 통해 “신뢰할 만한 새로운 단서 없이는 추가 발굴이 제한됨을 양해해 달라”는 입장이다. 

 

유족들은 또 ‘유해 미발굴 시 국립묘지 위패봉안 및 명예회복 위한 특별법 제정’을 바라고 있다. 국방부는 “(유해를 찾지 못한) 4명은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제3호(형법 250조 사람을 살해한 자로서 사형된 자)에 해당돼 국립묘지 안장이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8·23사건 당시 실미도 공작원들이 기간병 18명을 살해했기 때문에 국립묘지에 봉안될 수 없다는 얘기다. 국가권익위원회 심사에서도 실미도 공작원들은 ‘공동정범’이기 때문에 순직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2008년 4월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보상심의위원회’가 실미도 유족에게 보낸 ‘보상금결정통지문’엔 “여러분(공작원 24명)은 목숨을 국가안보를 위해서 바쳤으며 하나밖에 없는 개인의 생명을 담보로 특수임무를 수행한 국가유공자이며 조국을 위해서 충성을 다한 진정한 애국자”라고 명시했다. ‘국가유공자’ ‘애국자’라 규정했음에도 국립묘지 안치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처럼 정부 스스로가 모순에 빠져 있다. 한편으론 ‘국가유공자’, 다른 한편으론 ‘살인범’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성빈 유족들은 “오빠가 실미도 갈 때는 전과자가 아닌 선량한 국민이었다. 3년4개월 훈련받을 때나 실미도 탈출 때도 군경이나 민간인을 죽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게 없다”며 “오빠는 국가에 속아 그 가혹한 훈련을 받고 짐승만도 못한 내무생활을 견디며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했다. 그런데 국가는 오빠를 살려두면 자신들이 잘못한 일이 알려질까봐 그걸 숨기기 위해 사형시켰다. 지금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모른다. 오빠의 원혼이 구천을 떠돌고 있을 것”이라며 침울해했다. 

 

2005년 11월15일 경기도 고양시 벽제시립묘지에서 군 관계자 및 유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실미도부대원 사망자 유해발굴이 시작됐다. 발굴 2시간 만에 실미도부대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 양말, 발가락뼈 등이 발견됐다. © 뉴스뱅크이미지

 

 

靑 “국정 일정상 대통령님 면담 제한”

 

임성빈 유족은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2017년 11월1일 탄원서를 띄웠다. 탄원서에 따르면, “저희 오빠는 신변의 위협을 받다가 어쩔 수 없이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했습니다. 교전 중 사상자가 발생된 것은 정당방위라고 봅니다”라며 “민간인이냐, 군인이냐 등 사실 여부도 국가의 잘못이며 국가가 해결해야 할 몫입니다. 그런데 국방부에선 실미도 훈련병은 민간인이라면서 왜 군번까지 부여해서 혹독한 훈련을 시켰습니까. 민간인을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왜 민법이 아닌 군법으로 절차도 없이 사형을 시켰습니까. 시신도 부모에게 인도하지 않은 채 암매장하고 은폐해 지금까지 시신도 못 찾고 있는 실정입니다”라며 그간의 사정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봉안소 안치를 수용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유해를 찾는 것과 명예회복이 급선무”라면서 “대통령님께서 직권이든 국회 특별법이든 실미도 훈련병 명예회복과 유해 인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결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대통령 면담도 요청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이에 대해 “실미도사건으로 인한 희생에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만 국정 일정상 대통령님 면담이 제한됨을 알려드립니다”라고만 짧게 답신했다. 

 

유해를 못 찾은 실미도 공작원 김병염 유족도 임성빈 유족과 같은 입장이다. 1968년 실미도부대에 들어갈 때 김병염의 특기는 권투. 당시 나이 22세. 충북 증평에 사는 김병염의 형 김병익씨는 2000년대 중반에야 동생이 실미도부대원이었단 사실을 처음 알았다. 8·23사건이 터졌을 땐 십자성부대원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귀국한 뒤였다. 김병익씨는 7월16일 “정부에 바라는 건 시체 찾아달라는 것밖에 없다”며 “(실미도사건은) 김일성 목 따러 가려다 못 가니까 사건을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말도 안 하고 다 죽여버린 거다.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록도 없는 것 같다. 내가 고혈압 때문에 쓰러질까봐 걔네들(국방부 등)하고 더 싸우지 못하는 거다”며 다소 흥분하기도 했다. 

 

김씨는 정부 보상금에 대해선 “배상금 3000만원 줬는데 시퍼런 청춘을 거짓말로 꼬셔서 반강제로 끌고 가서 죽여놓고 내놓은 그게 배상금이냐. 정확한 비교는 안 되겠지만 세월호 보상과 비교해 봐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김씨 역시 임성빈 유족과 같이 “보상금 더 받으려고 이러는 거 아니다”고 딱 잘라 말했다.  

 

“우리 죽기 전에 유골을 찾아서 꼭 명예 회복시켜주고 싶다”는 실미도 유족들. 8·23사건이 터진 지 올해로 47년. 하지만 실미도 영혼들은 아직 영면에 들지 못했다. 그 영혼의 가족들은 오늘도 국방부 청사와 청와대 문을 두드리고 있다. 유해를 찾아 제대로 명예 회복시켜 달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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