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둘러싼 세 개의 《애국가》
  • 강헌 음악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09.21 13:15
  • 호수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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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의 하이브리드 음악이야기] 국가(國歌)로 상징되는 국가(國家) 국민이 수긍할 정통성 요구돼

추석을 앞두고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대한민국 정부 수반으로서는 최초로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명의 평양 시민 앞에서 민족의 평화와 공존을 역설하는 역사적인 연설을 가졌다. 적대의 역사를 청산하고 항구적인 평화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인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가운데, 공은 다시 미국의 백악관으로 돌려졌다.


한반도의 운명을 둘러싼 남북 정상 간의 뜨거운 행보를 보고 있노라니 이 분단 체제를 상징하는 두 노래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바로 《애국가》다. 한반도에는 세 개의 《애국가》가 있다. 하나는 익히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애국가》. 모든 공식적인 행사와 스포츠·문화 이벤트에 한국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음악이다. 비록 공식적인 법률로 제정되지는 않았지만 ‘관습적으로’ 국가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는 바로 그 《애국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북한의 국가 이름도 놀랍게도 《애국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남한의 《애국가》가 시작된다면 북한의 《애국가》는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으로 시작한다. 남한의 《애국가》는 4절로 이루어져 있고 북한의 그것은 2절이다. 남한의 《애국가》는 법적으로 국가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북한의 《애국가》는 북한의 헌법 제1절 171조에 공식 국가로 명시돼 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 AP 연합

 

국민에 정치적 정통성 요구받는 국가(國歌)


국가(national anthem)는 명백히 근대 민족국가의 수립 과정에서 탄생한 문화다. 국가엔 그 나라의 정체성과 구성원들이 지향하는 이상의 정신이 담겨 있고, 그 노래를 통해 공동체적 일체감을 고양하는 목적을 지닌다. 그래서 개인의 존엄성을 최우선적 가치로 두는 급진적인 관점에선 국기와 국가를 파시즘의 낡은 상징으로 보고 배격하기도 하지만, 21세기의 지구촌에서도 국가는 여전히 변치 않는 존립 근거를 지니고 소속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가(國歌)로 상징되는 국가(國家)는 개인의 단속적인 삶을 넘어선 영속적인 자기 삶의 근거이면서 미우나 고우나 자기 발이 딛고 있는 생존으로서의 현실을 총체적으로 요약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은 자신이 평생 부르는 국가가 보다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자긍심 넘치는 노래가 되기를 바란다. 세상에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벽한 노래가 어디 있겠냐마는 적어도 국가에는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정치적 정통성과 시대를 뛰어넘는 미학적 탁월함이 요구된다. 


근대 국가의 모델이 된 프랑스의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는 널리 알려진 대로 프랑스 대혁명 당시 공병 대위 루제 드 릴이 혁명을 무산시키려는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전투를 앞두고 만들었다. 적과 내통한 루이 16세와 왕비가 머물던 튈르리궁을 공격하기 위해 파리로 입성했던 마르세유 의용군이 부른 것을 계기로 ‘마르세이유의 노래’라는 이 노래의 제목이 만들어졌다. 혁명 발발 6년 후인 1795년 국가로 제정됐지만 ‘폭군을 무너뜨리는’ 내용으로 인해 나폴레옹 제정기에는 금지됐다가 다시 공화정으로 돌아온 후 공화국의 상징으로 떠올라 국가의 지위를 재탈환한다. 


무려 7절까지 이어지는 이 노래는 공화정을 수호하려는 혁명의 피로 얼룩져 있어 그 호전성을 두고 가끔씩 노랫말을 수정하자는 반대 의견이 개진되기도 한다.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국가인 미국 국가 《성조기(The Star-Spangled Banner)》 역시 변호사이자 시인이었던 프랜시스 스콧 키가 작사한 노래로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포연이 자욱한 가사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미국 국가의 선율이 자신들의 지배국이었던 영국의 선술집 노래를 가져다 쓴 것이라는 점이다. 

 


《애국가》를 둘러싼 친일 논란 


남북한 두 개의 《애국가》 이전에 우리에겐 또 하나의 《애국가》가 있었다. 김은숙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배경이기도 한, 고종황제 시절의 비운의 대한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대한제국 《애국가》다. 근대 국가에 걸맞게 황실 군악대를 조직했고 군악대장으로 독일인 에케르트를 초빙했는데, 그에게 의뢰해 한반도 최초의 공식적인 국가를 짓게 했던 것이다. 지금은 완벽하게 잊혀졌지만 우리의 최초의 국가가 이방인 음악가의 손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에케르트는 조선에 부임하기 전에 일본 황실의 군악대장을 역임했고 그때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만약 이 한반도가 일본에 강제 병합되지 않고 독립국으로서의 대한제국이 이어졌다면 한·일 두 나라 국가의 작곡가가 같은 사람이 되는 인연이 이어질 뻔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애국가》는 공식적으로 작사가 미상이지만 부역 친일파의 거두 윤치호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모두 쉬쉬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작곡가 안익태마저 해방 전 유럽에서의 활동이 친일적인 것임을 증명하는 사료들이 발굴돼 작사와 작곡 양면에서 심각한 정통성 훼손이 일어났지만, 어느 누구의 공식적인 문제제기도 없는 형편이다. 이 정도면 국가의 기강과 정통성을 위해서라도 새로운 국가를 제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국가보안법 때문에 북한의 《애국가》는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 있었다. 북한 《애국가》는 해방 직후 남쪽 출신의 시인 박세영이 작사하고 원산 출신의 약관 스물한 살의 청년 작곡가 김원균이 작곡했다. 김일성 일가에 대한 개인숭배 내용이 없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독립을 맞이하는 벅차오르는 감정이 장엄하게 형상화된 명곡이다. 이 노래 하나만큼은 북한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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