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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의 킹핀은 ‘산업한류’다”

[인터뷰] 박광기 前 삼성전자 부사장 “샌드위치 신세? 발상 전환하면 위기는 곧 기회”

조유빈·김종일 기자 ㅣ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1(Thu) 08:01:00 | 15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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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경제 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 때와는 다른 양상이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모델이 변곡점에 와 있다. 업종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침체기에 빠져 있거나 하향세다. 이 변곡점에서 새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 쇠퇴한다. 청년실업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양극화 등 갈등도 극심하다. 각각의 처방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할 정도다. 모든 문제가 긴밀히 연결된 초(超)연결사회에서는 이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킹핀(king pin)’이 필요하다. 볼링에서 핀 10개를 다 쓰러뜨리려면 1번 핀이 아닌 그 뒤에 숨어 있는 5번 핀을 맞혀야 한다. 이게 바로 킹핀이다.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박광기 전 삼성전자 부사장은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의 유일한 돌파구이자 구체적인 국가 재도약 전략이 될 수 있는 킹핀으로 ‘산업한류’를 말한다. 우리나라를 무역 강국으로 발돋움시킨 수출형 무역 패러다임을 해외 맞춤형 투자로 전환해, 현지에 공헌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윈윈(win-win)형 글로벌 진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샌드위치 신세라고 자조할 게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박 소장은 1987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30년 동안 대한민국 압축성장의 한복판에서 일했다. 대표적 해외파 기업인으로 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 시장을 개척하고, 세계 93개국을 방문해 영업과 마케팅, 사업운영 등을 두루 경험한 글로벌 경영자다. 30년간의 경영을 바탕으로 15년 뒤의 미래를 구상하고 있는 그에게, 한국 경제 위기를 헤쳐 나갈 ‘뉴패러다임’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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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나.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정점을 찍은 뒤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수요 정체기로 고전한다. 경제성장의 변곡점이다. 도태되거나 재도약을 해야 하는 시점이다. 새 생명을 넣는 산업을 찾지 않고서는 해법이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을 이끌던 대기업들에 변곡점이 오면서 전체적인 경제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쉽게 예를 들어보자. 노르웨이의 노스세일링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고래를 잡는 포경업을 하다가 포획이 금지되자 고래 관광으로 회사 패러다임을 바꿨다. 경쟁사가 늘어나자 관광범선을 개발하고 디지털 장비를 동원해 ‘생태관광’으로 다시 영역을 넓혔다. 기업이든 국가든 지금의 상황을 돌파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과 일본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에 낀 한국을 두고 ‘위기의 샌드위치’ 신세라고 비유한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회의 샌드위치’로 나아가자고 주장하는 걸로 알고 있다.


“삼성에서 일하면서 많은 해외 리더들을 만났다. 그들 눈에 비친 한국은 동북아시아의 한국, 미국과 중국에 끼인 한국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관심을 갖는다. 현재 우리는 동북아에서 살아남는 정책들만 내놓고 있다. 경제적으로 일본을 따라잡아야 하고, 중국과의 격차는 더 벌려야 한다는 전략을 내밀고 있다.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교량적 위치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산업한류에 있다. 지정학적 위치를 인식하는 관점이 바뀌면 한류를 풀어나가는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국 경제의 위기를 극복할 뉴패러다임, 즉 킹핀으로 ‘산업한류’를 제시했는데.


“현재 저성장과 저출산, 양극화, 중소기업 문제, 주력산업 문제까지 모든 문제들의 뿌리는 ‘산업 노후화’에 있다. 이를 하나로 아울러 해결할 수 있는 방책이 필요하고, 그 방안으로 제안하는 것이 산업한류다. 한류는 문화 콘텐츠에 한정되지 않는다. 산업과 연계할 수 있다. 한국은 가장 짧은 기간에 압축적인 성장을 이룬 나라다. 신흥 개발도상국들은 산업부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한국에서 찾고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낀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 그것이 바로 산업한류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산업정책이라는 것은 먼저 어떻게(how)와 무엇을(what)을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 제조시대의 꽃은 반도체였다. 반도체를 이을 포스트 반도체 산업에 대한 답이 나와야 산업정책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신(新)맞춤형 산업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극빈국에서 선진국이 된 노하우를, 우리를 따라오는 개발도상국들에 맞춤형 산업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개도국은 한국의 압축성장 경험과 다양한 제조업종, 기술력을 활용할 수 있다. 정부의 지원 아래 인프라 공기업과 대기업, 장년층 기술자와 대졸 청년, 중소기업이 ‘원팀’이 돼 신흥 개도국으로 동반 진출한다. 각국 경제개발 단계에 필요한 산업과 기술로 맞춤형 산업단지를 조성해 산업화의 기본 토대를 구축해 주고, 경제개발을 지원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 기업도 같이 성장하는 글로벌 공생 전략이다.”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사례가 있나.


“우리의 노후화된 사업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진출한 예로 베트남에 진출한 태광을 들 수 있다. 태광은 처음에는 신발 수출로 시작했지만, 제조업을 거쳐 이제 현지에 화력발전소와 화학공장까지 운영하는 주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도시의 경험’을 파는 예도 있다. 대구도시철도공사는 내년 3월부터 5년간 싱가포르 모노레일 사업의 운영을 맡기로 했다. SK네트웍스는 지난 8월 인도네시아 국영 철강사와 손잡고 동남아시아 철강 사업이라는 신시장을 공략했다.”


이런 구상이 현재 한국 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 있나.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있는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 일단 대졸 청년들에게 현지인을 관리·육성하는 오피스 업무를 맡길 수 있다. 또 각국에 만들어진 맞춤형 산업단지는 도시화로 연결된다. 병원·학교·유통·안전 등 서비스 산업이 함께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진출한 청장년들은 산업단지 안정화 이후 벤처 창업 등 다양한 일자리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베트남에 한국의 병원이나 호텔, 학원이 진출한 것도 한국 제조업이 대거 진출해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기업은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재건할 수 있고, 중소기업은 새로운 시장에서 성장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양극화를 해소하는 동반성장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하는 문제가 쉽지 않을 텐데.


“물론 대기업이 2차, 3차 협력사까지 데리고 나가는 리스크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이는 중소기업 정책자금으로 보완해야 한다. 현지 시설 투자가 필요한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현재 가동되지 않는 국내 시설을 갖고 나갈 경우 물류비를 국가가 대주거나, 현지 진출을 조건으로 중소기업은행에서 설비 투자비용을 낮은 이자로 보장해 주는 방법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처럼 한계기업에 정책자금을 붓는 식이 아니라 이런 방식이면 일회성 비용이 아니라 ‘살아나는 투자’가 된다.”


산업한류를 이끌 경쟁력 있는 다른 산업은 무엇이 있나.


“21세기 글로벌 디지털 교육혁명을 한국이 주도할 수 있다. 전 세계가 100세 시대가 돼 평생교육의 장이 열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들도 이뤄지고 있다. 텍스트 교과서에서 게임이나 동영상 등으로 교육이 디지털화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이런 맞춤형 교육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우리 강사들에게는 어마어마한 노하우와 콘텐츠가 있다. 게임 역시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우리의 멀티미디어 기술을 집대성해 교육 콘텐츠를 만든다면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창출해 낼 수 있다. 또 한국의 전자업체와 이동통신사들이 교육 솔루션 관련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이미 토도수학·핑크퐁 등 한국 기업들이 개발한 디지털 교육 콘텐츠들은 해외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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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한류 프로젝트의 주 역할은 어느 부처에서 해야 할까.


“당장 급한 곳은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중소기업중앙회·무역협회 등 5~6개 주체가 중소 제조기업을 돕고 있다. 성장기를 거칠 때는 각자 자기 역할만 잘하면 됐지만, 이제는 한 팀으로 융합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체적으로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예산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도 산하에 한국해외사업본부 등 조직을 만들어 지원해야 한다.”


수출 의존도가 높아 내수를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인데.


“국내 기업 모두가 해외와 연결돼 있다. 국내의 가계 소득을 올려준다고 해서, 저부가화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거나 다시 살아나지는 않는다. 국민 소득에서 내수 소비는 그 비중이 낮고, 내수의 출혈경쟁도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의 틀이 외부 지향적인데 우리는 그 문제를 내부에서 풀려 한다.”


정부 역시 신남방정책 등을 통해 산업지도를 넓히려 시도하고 있다. 정부에 제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산업한류의 포인트는 흔한 산업단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디지털 신산업이라는 한 단계 위의 궤도로 바꿔 타는 것이다. 근본적인 틀을 바꾸려면 기존 산업을 어떻게 살리고 어떤 신산업을 키우겠다는 산업정책의 방향이 있어야 한다. 소득주도는 결국 성장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현 상황이 정체돼 있는 만큼 해외에서 그 성장판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신남방정책의 3P(Peace, Prosperity, People)를 구체화한 것이 산업한류의 산업파트너십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진정한 포용성장을 구체화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동반 진출해 새로운 융합사업의 기회를 발굴하는 것이다. 대북 경제개발 지원도 J노믹스의 큰 축 중 하나인데, 국제적 명분과 신용을 얻기 위해서라도 신흥 개도국 개발을 같이해야 한다. 북한을 개발하려는 시뮬레이션을 가지고 있다면, 개도국에 테스트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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