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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지 없는 세상' 만든 10대 발리 소녀

멜라티 위즌 "비닐봉지 없애면 세상이 달라진다"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ㅣ no@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1(Thu) 15:5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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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뱉어보라. 이렇게 우리가 숨 쉬는 공기의 70%는 해양에서 온다. 그런데 그 해양이 플라스틱(비닐) 쓰레기로 오염되고 있다. 이를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인도네시아 발리에 사는 18살 여학생이 세계인들에게 던진 말이다. 멜라티 위즌(Melati Wijsen) 양은 요즘 국제 환경계에서 핫한 인물이다. 지난 5년 동안 테드(TED)와 CNN 등 언론을 통해 세계에 비닐봉지 사용 금지를 호소한 바 있는 그는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학자나 환경 전문가보다 국제 환경 행사에서 인기가 높다. 단순히 10대 소녀라는 생리적인 특성 때문만이 아니다. 기성세대가 말로만 떠들 때 위즌 양은 매우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실천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자신이 사는 발리의 환경 정책을 바꿔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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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즌 양은 12살 때인 2013년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학교 수업에서 넬슨 만델라,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터 킹 등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한 후다. 자신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다. 당시 10살인 여동생 이사벨과 여러 이슈에 대해 논의한 끝에 발리엔 쓰레기 특히 비닐봉지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 해변과 논에서 발에 차이는 게 비닐봉지였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10억 달러를 들여 2025년까지 해양 쓰레기를 70%까지 줄이겠다고 할 정도다. 

 

플라스틱 컵에 빨대를 꽂아 과일 주스를 즐길 나이에 그는 동생과 '바이 바이 플라스틱 백(Bye Bye Plastic Bags·BBPB)'이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글자 그대로 플라스틱 특히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 살면서 비닐봉지의 부정적인 면을 알게 됐다. 사실 이 문제를 모두 알면서도 어떤 것도 실천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미 여러 나라는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거나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발리라고 못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BBPB를 만들고 행동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뚜렷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비닐봉지 사용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도 몰랐다. 다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BBPB 설립 5년이 흐른 올 10월3일 제주에서 열린 2회 세계리더스보전포럼에 위즌 양이 모습을 나타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환경부·제주도가 공동 주최하는 이 포럼은 2012년 제주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에서 호평받은 ‘세계리더스대화’를 확대하고 발전시킨 행사다. 현장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내가 12살, 동생 이사벨은 10살 때인 2013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컨퍼런스(Global initiative network)에서 BBPB를 설립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BBPB는 내가 만든 이름이다. '바이 바이 비닐봉지' 외우기가 쉽지 않나?(웃음)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10대 여학생이 비닐봉지 금지를 주장하며 단체까지 세운 것은 그렇다 쳐도 왜 하필 비닐봉지일까. 플라스틱병이나 빨대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는 매일 비닐봉지를 쓰고 버린다. 생각해보면 비닐봉지는 그렇게 필요하지도 않는 데 말이다. 나는 재사용할 수 있는 가방(장바구니) 사용한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면 된다. 외국은 이미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발리라고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이득이 생길까. 오히려 생활이 불편해질 것 같다. 이에 대해 위즌 양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쏟아냈다.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사회에 큰 여파가 생긴다. 우선 대체재, 예컨대 장바구니를 생산할 새로운 사업이 필요하므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둘째, 비닐봉지를 소각하지 않는 만큼 지구온난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셋째, 해양 쓰레기가 줄어드는 만큼 해양 생물의 사망률도 감소할 것이다. 이 정도면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이상과 현실이 다른 경우는 종종 있다. 한 개인이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환경 보전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오늘 당장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구온난화를 막지도 못할 것이다. 사회·국가·세계가 동참하지 않으면 공염불일 뿐이다. 이 친구는 도대체 어디서 이런 자신감을 얻었을까. 

 

"2014년 발리에 한 마을을 시범 마을로 삼았다. 이 마을에서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도록 지역 정부를 만나 설득했다. 또 그 지역 학교에서 설명회를 열고 청소년들의 인식 변화를 강조했다. 업체로부터 장바구니를 후원받아 매주 토요일 배포했다. 그 결과, 지금 이 마을 상점에서는 손님에게 비닐봉지를 주지 않는다. 아직 비닐봉지가 100%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 사용량은 크게 줄었다. 사회·국가·세계가 비닐봉지 사용을 하지 않으면 우리 삶과 자연환경에 더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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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즌 양은 발리 공항에 한해 1600만 명이 출·입국한다는 사실을 알고 무작정 공항에 찾아갔다. 출국장에 테이블을 깔고 발리에서 나가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발리에 머물며 비닐봉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약 10만 명이 그 서명에 동참했다. 이를 가지고 정부를 찾았으나 비닐봉지 금지 정책을 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정치적 이슈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순수하게 비닐봉지 사용에 대한 금지 정책을 끌어내는 일은 매우 더딘 과정이었다. 정치가와 논의하는 과정은 마치 1보 전진하고 2보 후퇴하는 것과 같았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게 됐다. 몇 해 전, 부모와 인도에 있는 마하트마 간디의 집(현재는 박물관이다)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서 간디의 역사와 업적 등을 접했다.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시위로 어떤 일을 성취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후, 발리 정부가 우리의 주장(비닐봉지 금지 정책)을 들어 줄 때까지 단식 투쟁을 하기도 했다. 단식 이틀째부터 사회적 관심이 쏠렸고, 언론도 우리를 취재했다. 셋째 날, 발리 주지사가 우리를 만나겠다고 연락이 왔다. 망쿠 파스티카 발리 주지사는 우리 얘기를 들은 후, 2018년까지 비닐봉지가 없는 발리를 만드는 우리의 목표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우선, 비닐봉지 유료화라는 정책이 마련됐다. 이는 비닐봉지 금지를 위한 첫걸음이다. 정부와 비닐봉지 금지에 대한 정책을 만들 때 중요한 것은 밑에서 위로 이슈를 끌고 가는 점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내는 정책이 아니라는 얘기다. 국민이 필요한 것을 정치인이 해결하는 방식이어야 효과가 배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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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일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 사람의 뇌리에 박힌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기 때문에 인식 변화를 어떻게 진행했는지도 궁금하다. 위즌 양은 10대 소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했다고 답했다.  

 

"변화의 열쇠는 교육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 캠페인의 핵심도 플라스틱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전파라는 일이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선 학교나 사회에서 기회만 되면 설명회·워크숍을 열어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12개 국가에서 1만6000명 이상을 교육했다. 이를 위해 교육용 책자도 만들어 배포했다. 2014년 25페이지 책자를 만들어 인도네시아 초등학교 30곳에 배포해 플라스틱의 유해성을 알렸다. 인터넷에서 이 자료를 내려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캠페인을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2017년 발리에서 최대 해변 정화작업을 벌였다. 발리의 55개 지역사회에서 약 1만2000명이 하루에만 43톤의 쓰레기를 모아 처리했다. 또 IT업체와 협력해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는 쓰레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앱을 지원받았다. 정화작업 전에 대량의 쓰레기 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미래 쓰레기 투기를 예방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환경 보전이 중요하다는 데 이견은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정작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위즌 양은 특별한 동기를 받아 스스로 환경 운동가가 됐지만, 일반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관심은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창조적이고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캠페인이 즐겁고, 창조적이면 청소년들은 자동으로 참여한다. 우리는 주로 청소년이 많이 참여하길 기대하며, 실제로 10대 학생들의 동참이 많다. 특히 10대는 소셜미디어에서 대화하는데, 한 번은 가게·식당·호텔에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업소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이런 업체를 사진과 함께 지역 월간지에 게재하거나 SNS를 통해 밝혔다. 역시 청소년의 관심과 호응이 컸다. 소셜미디어는 클릭 한 번으로 자신의 것을 대중에 전달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정보와 기술이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널리 알릴 방법이 있다. 따라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자신이 열정적으로 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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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즌 양이 만든 BBPB는 설립 5년을 맞았다. 일반 가게를 개업해도 경쟁이 심해 3년을 넘기기 어려운 요즘, 한 단체를 5년 이상 끌어올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또 그동안 단체도 많이 성장했을 것 같다.  

 

"돈을 좇거나 뭔가 한다는 자만심을 없앴다. BBPB는 순수한 열정으로 사회적 변화를 추구했다. 이런 순수함 때문에 발리의 청소년은 플라스틱이 발리의 미래에 위협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됐다. 발리 정부도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접근법(정책)을 바꿨다. 이제 BBPB는 발리뿐만 아니라 세계 청소년이 운영하는 NGO로 성장했다. 2016년 발리 외부에 BBPB의 첫 팀을 진출시켰다. 2018년 20개 팀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플라스틱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담은 스타터 킷(starter kit)을 배포했다. 앞으로 세계 모두가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 노력하겠다."

 

위즌 양은 그린스쿨에 다녔다. 일종의 '환경 대안학교'다. 그래서 학업과 BBPB 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그도 이 점이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한 해에 등교한 날이 35일뿐일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린스쿨에 다니는 게 행운이었다. BBPS 활동으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학교가 인정해줬다. 또 학습도 학생 개인별로 계획을 세울 수 있어 유연한 편이다. 그렇다고 학교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숙제도 하고, 책도 읽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다름대로 배울 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방과 후에 BBPB 활동을 이어왔다. 올해 그린스쿨을 졸업했다." 

 

학업을 마쳤으니 본격적인 환경 운동가의 길을 갈 계획인 위즌 양은 세계 청소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열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한 가지 찾아서 도전하라는 말을 하고 싶다. 현실적인 목표를 정해서 집중하고 그 가운데서 즐거움을 찾는 게 중요하다. 우리와 같은 청소년은 세계 인구의 25%에 지나지 않지만, 미래는 100% 우리가 이끌고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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