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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한 분이라도 더 기록하고 싶어”

[인터뷰]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록하는 사진작가 라미 현…“90세 노인 흑백사진 속에서 20살 군인으로 돌아가”

김정록 인턴기자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8(Thu) 14:00:00 | 15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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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할아버지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후줄근한 조끼에 모자를 눌러썼다. 왼쪽 가슴, 어깨, 모자에는 태극기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얼굴에는 쭈글쭈글한 주름이 가득했다. “얼마를 주면 되나?” 촬영을 마치자 할아버지는 물었다. “68년 전에 값은 충분히 치르셨습니다.” 사진작가 라미 현(Rami Hyun·본명 현효제)이 대답했다.

현 작가는 2013년부터 군인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촬영한 군인이 5000명에 이른다. 시작은 군복에 대한 관심이었다. “우리나라 육군에 100종이 넘는 군복이 있다.” 현 작가가 군복 사진을 찍기 전 육군 복장 규정집에는 그림으로 군복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 군복을 기록하고 싶어 사진을 찍어 모았다. 군복을 찍던 그의 카메라는 어느새 군인을 향했다. 한 주임원사의 사연을 듣고서다.

“28년 군 생활이 국가에는 떳떳하지만 가족에게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분 자식이 둘 있는데 함께 보낸 시간이 거의 없어서 가족사진도 별로 없었다. 곧 전역하고 함께 가족여행 다녀오는 게 그분 소원이라더라.”

현 작가의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했다. 각 부대를 돌아다니며 군인들 사진을 찍었다. 군 생활로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 별로 없는 군인들에게는 가족사진도 찍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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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2억원이지만 편지 한 장이면 달려가

현 작가는 찍은 사진을 무료로 전달했다. 그가 받는 유일한 대가는 군인들의 사연이 담긴 편지 한 장이다.

“그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간다. 빚이 2억원이다. 점점 더 마이너스가 되고 있지만 이런 편지 하나 받으면 안 갈 수 없다.”

그렇게 편지 한 장 한 장이 올 때마다 현 작가는 사비를 털고, 촬영 장비를 되팔며 군인들을 찾아갔다.

2017년부터 현 작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영국·미국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참전용사를 만나는 중이다. 지난 4월에는 영국 런던에서 영국군 참전용사회를 만나 촬영했다. 이어 6월에는 미국 포틀랜드 참전용사회를 찾았다. 지난 8월23일부터 27일까지는 미국 인디언 한국전쟁 참전용사 촬영 행사에 참여했다. 이 밖에도 캐나다·프랑스·태국·터키·에티오피아·이탈리아 등을 방문해 참전용사를 만났다.

“한 미국 참전용사가 ‘더 잘 싸워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더라. 자신이 잘 싸웠다면 지금 한국이 더 잘살고 있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실제로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 영국 참전용사분이 한국 땅을 밟고 장애가 사라진 적도 있다. 폐허였던 곳이 이렇게 발전한 것을 보고 마음이 놓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군 한국전쟁 참전용사 하면 백인 군인을 떠올린다. 하지만 현 작가는 한국전쟁에 참여한 미군은 백인뿐만이 아니라고 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일본계 미군도 촬영했다. 심지어 중국계 미군도 있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도 많았을 텐데 아직 만나보지는 못했다. 그들을 촬영하는 게 다음 목표 중 하나다.”

참전용사들에게 한국전쟁은 자랑스러운 기억이자 아픈 상흔이었다. 자신의 젊음을 바쳐 국가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떳떳했지만, 바로 옆에서 전우가 죽어가던 장면은 끝까지 참전용사를 괴롭혔다.

“참전용사분들은 군복을 입고 촬영하는 동안은 군인이었던 시절로 돌아간다. 중위 계급인 손녀와 함께 사진을 찍는 참전용사분이 있었다. 할아버지 얼굴이 너무 굳어 있어 손녀가 ‘할아버지 좀 웃어’라고 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군인이 군복을 입고 어떻게 웃을 수 있냐’며 큰 소리로 호통쳤다.”

사진 속 참전용사들의 표정은 대부분 굳어 있다. 입은 꽉 다물고 눈은 부리부리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주먹도 보인다. 그리고 흑백이다.

“색은 시간과 장소와 사람에 따라 다른 감정을 보여준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군인들의 명예와 자부심이다. 이런 가치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색을 빼야 한다. 흑백이면 사람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참전용사들도 흑백을 더 좋아한다.”


참전용사 희생 존중해야

참전용사를 향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그들은 일명 ‘태극기부대’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현 작가는 이런 현실을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미국에서 유학한 현 작가는 미군이 명예를 존중받는 것과 다른 우리나라에 실망했다.

“선진국에서는 군인을 진심으로 존중한다. 우리는 참전용사분들을 싸잡아 ‘태극기부대’라며 손가락질한다. 오히려 참전용사분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이다.”

보훈정책자료시스템에 따르면,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 가운데 생존자는 현재 약 11만 명이다. 해마다 1만 명 이상씩 줄어들고 있다.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질 것이다.

“참전용사분들이 90세를 바라본다. 이미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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