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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상처를 본 이들의 연대…아동학대 다룬 《미쓰백》의 성취

누군가의 도움 간절히 기다리는 아이의 작은 등을 외면한 적이 없었나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ㅣ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8.10.12(Fri) 17:00:00 | 15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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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학대당하는 어린 소녀를 지켜주기로 결심한다. 전과자로 사회적 낙인이 찍힌 데다, 하루하루 파트타임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입장에서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여자는 어린 시절의 자신처럼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아이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미쓰백》은 ‘미쓰백’이라 불리는 여자 백상아(한지민)가 우연히 만난 소녀 지은(김시아)을 지켜내기로 마음먹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사회의 그늘에서 학대로 신음하는 아이들을 향한 관심을 촉구하는 영화이자, 같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부둥켜안는 연대를 이야기하는 영화다. 남성 캐릭터 중심의 한국영화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모처럼 다양한 여성 캐릭터에 주목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배우 한지민이 연기한 백상아는 한국영화 여성 캐릭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얼굴 중 하나로 거론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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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상처를 매만지는 여성들

《미쓰백》은 상아의 행동을 모성의 관점에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이 영화의 중요한 성취다. ‘여성=모성’이라는 막연한 고정관념을 피해 간다는 점에서다. 오히려 상아는 친모를 향한 증오를 품고 있으며, 자신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위치로나 아이와 함께 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되물으며 망설이는 인물이다. 다만 상아와 지은은 서로를 ‘알아본다’. 차갑고 어두운 골목에서, 서로의 과거와 어쩌면 미래가 됐을지 모를 두 존재가 만나는 것이다. 구원이나 희망이라는 거창한 가치를 위해서가 아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서로의 상처를 손으로 어루만져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건 그동안 누구도 해 주지 않았던 일이다.

아이를 혼자 책임져야 하는 상황, 즉 사회가 규정한 ‘불완전한 가정’ 안에서 아이의 유일한 보호자로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여성들의 불안한 상황을 고발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들을 둘러싼 사회적 안전망은 얼마나 허술한지, 아동학대 가정의 실상은 얼마나 복잡한 양상으로 이뤄져 있는지 등을 복합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백상아를 학대했던 친모 명숙(장영남)도, 지은을 학대한 게임 중독 친부 일곤(백수장)과 동거인 미경(권소현)도 어떤 면에서는 사회적 피해자다. 이들은 부모 세대로부터 이어진 빈곤과 학대라는 무거운 굴레를 혼자 힘으로 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사실이 아이를 학대한 사실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는 이들을 질책하기보다 이들이 왜 이런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상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보다 성숙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여배우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상대적으로 좁은 충무로에서 괄목할 만한 여성 캐릭터를 낳은 영화인 점도 중요하게 지적할 만하다. 그간 인형처럼 예쁜 외모와 사랑스러운 성정 등만 강조됐던 배우 한지민이 백상아를 연기하며 180도 달라진 모습을 선보인다. 폭력적인 세상에서 홀로 외롭고 거칠게 살아온 백상아의 캐릭터는 연민의 대상이 되기도, 안아주고 응원하고픈 대상이 되기도 하며 관객의 시선을 잡아끈다. 폭발적인 감정들을 오가는 한지민의 연기는 배우를 특정 이미지에 가두는 것이 충무로가 흔히 범하는 실수임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더 다양한 여성의 얼굴로 변신하기를 소망하는 여배우 풀이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6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돼 지은을 연기한 아역 배우 김시아의 열연도 눈부시다. 그가 연기하는 지은은 단순히 어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연약한 아이가 아니라, 지켜주겠다는 백상아의 다짐에 “나도 지켜주겠다”고 답하는 성숙하고 다부진 아이다. 어린아이를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분명한 의지를 지닌 캐릭터로 묘사한 것 역시 중요한 성취다.

다만 장섭(이희준)의 캐릭터는 상대적으로 아쉽다. 상아가 전과자의 굴레를 뒤집어쓰던 순간부터 그 곁을 한결같이 지켜온 순애보 캐릭터다. 상아가 주도적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들을 헤쳐 나가는 가운데, 결정적인 위험에 노출되는 순간마다 장섭은 극 안에서 해결사 노릇을 한다. 상식적이고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캐릭터 특성과는 별개로 남성, 게다가 형사라는 직업적 위치가 그에게 상아에게는 없는 권력을 부여하는 셈이다. 이지원 감독은 “단 한 명이라도 상아를 진심으로 지켜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해서” 장섭의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물론 상아와 장섭의 멜로가 극을 감정적으로 한층 풍성하게 만드는 지점도 있으나, 기왕 여성 중심의 영화니만큼 캐릭터 운용 면에서 보다 과감한 선택을 내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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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의 실상 그 너머를 보려는 시도

《미쓰백》을 통해 학대받는 아이의 고통을 지켜보는 건 감내하기에 쉽지 않은 경험이다. 촬영 현장에서 아역 배우를 충분히 보호하며 촬영했다고는 하나, 이 영화에서 아이에게 가해지는 폭력적 묘사는 꽤 직접적이고 거친 편이다. 다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양상들을 생각할 때 이 같은 각성은 오히려 필요한 종류의 것일지 모른다.

영화를 위해 극화된 사연이라고만 하기에는 한국의 아동학대 실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법무부의 5년간 아동학대 범죄 사건 접수 및 처리 현황에 따르면, 2013년 459명에 그쳤던 접수 건수는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5456명에 달했다.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접수된 것만 벌써 3200명을 넘어섰다. 매년 가해자 중 7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이들은 친부모다. 경찰 조사 결과 친부가 아이를 살해한 범인임이 밝혀져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던 ‘고준희양 암매장 사건’ 등 뉴스를 떠들썩하게 장식한 사건도 여럿이다.

감독은 수년 전 자신의 옆집에서 발견됐던 아동학대의 징후들을 모른 척했던 시간들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 시나리오를 썼다고 밝혔다. 감독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그간 한국에서 벌어진 수많은 아동학대 사건들을 조사했고, 극 중의 지은 같은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데 분노했다. 지은은 감독이 여러 사례를 취합해 극화한 캐릭터다. 이는 대중적 파급력이 큰 영화라는 매체에서 어느 한 사건을 집중해서 다룰 경우 해당 아동이 받을 상처 등을 고려해 선택한 방식으로 보인다.

대신 감독은 자료 조사에서 알게 된 내용들을 충실히 반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영화 중간중간에는 인물들의 모습 뒤로 아동학대 사건을 다룬 뉴스 화면들이 흘러나와 관객의 또 다른 각성을 요구한다. 이것이 분명한 현실의 일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비록 낡고 더러워졌지만 지은이 원피스 차림인 이유는 언젠가는 친부모로부터 사랑받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임을 암시한 설정이다. 감독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자녀를 학대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한때 아이에게 헌신에 가까운 애정을 쏟은 부모였다고 한다. 혹시 우리는 언젠가 누군가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이의 작은 등을 외면한 적이 없을까. 《미쓰백》은 더 늦기 전에 우리 사회의 병폐, 그전에 당장 나의 주변을 진중하게 들여다보기를 촉구하는 하나의 절박한 메시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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