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37. “나라 무사하다면 어찌 몸 하나를 아끼겠는가”

전주 이씨를 종성(宗姓·왕실의 성)이라고 한다. 허균(許筠)은 에서 종성으로 정승이 된 사람으로 이원익(李元翼)과 이헌국(李憲國)을 꼽으면서 “두 사람 모두 원훈(元勳)이자 정승으...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30. 중원 정세 오판했다 삼전도 굴욕 당하다

광해군 10년(1618년) 윤4월27일, 명나라 요계(遼?·베이징과 만주) 총독인 왕가수(汪可受)가 조선 임금 광해군에게 보낸 글이 정국에 큰 파란을 몰고 왔다. 왕가수가 ‘전에 ...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29. 양반들, ‘주자’ 신격화로 기득권 강화

한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를 살필 수 있는 잣대 중 하나는 사상의 자유다. 사상의 자유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을 허용하고, 또 그...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28. 류성룡 내쫓은 양반들, 병역 면제 성역 되다

조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법치국가였다. 국왕도 선조들이 만든 법이란 뜻의 ‘조종(祖宗)의 성헌(成憲)’ 아래 있는 존재였다. 연산군이 쫓겨난 이유도 자신을 법 위의 존재...

류성룡 신드롬, "정승된 자는 1인자 아닌 백성의 종이다"

KBS 대하사극 이 시작됐다. 한동안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대하 정통 사극의 맥을 이은 것이 이었다. 은 에 이어 KBS 대하 정통 사극 부활 제2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어서...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27. 무한 권력 독점하려다 망국의 길로

한때 국내 사학계에서 일부 학자들에 의해 고종을 훌륭한 임금으로 재탄생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과연 고종은 용군(庸君·어리석고 변변하지 못한 임금)이 아닌 성군(聖君)이었을까. 필...

동백이 피네, 붉은 잎이 지네

뼛속까지 파고드는 바람에도 마음은 달아올랐다. 기다리면 오실 님이건만…. 정해진 만남이라 해서 기쁨의 부피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포악스럽던 파도마저 고분고분해지는 것만 ...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24. “‘세’가 날아든다, 온갖 잡세가 날아든다”

당나라 시인 유종원(773~819년)이 쓴 ‘포사자설(捕蛇者說·뱀을 잡는 사람의 이야기)’이란 글이 있다. 호남성(湖南省) 영주(永州)에 산다는 뱀과 세금에 얽힌 이야기다. ‘영주...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20. 쿠데타로 집권한 서인, 살육 정치로 국난 불러

서인(西人)들은 선조 22년(1589년·기축년)의 ‘기축옥사’, 즉 ‘정여립 옥사’ 사건으로 동인(東人)들을 대거 살육하고 정권을 잡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2년 후인 선조 24년...

[2014 올해의 인물] 1760만 백성이 그를 그리워하다

“광화문에 화석화돼 있는 딱딱한 동상으로서의 이순신이 아니라, 같이 느끼고 울림을 공유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이순신으로서의 재현이라 본다.”영화 을 만든 김한민 감독이 자신의 영...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17. "사람들이 다 말하는데, 전하만 홀로 못 듣는 것입니다"

숙종(肅宗) 13년(1687년) 5월 우의정 자리가 비자 숙종은 영의정 김수항(金壽恒)과 좌의정 이단하(李端夏)를 불러 복상(卜相)하도록 했다. 복상이란 정승이 될 사람을 추천하는...

‘을’의 울화통에 영웅이 된 광해군

과거 사극에선 주로 전쟁 영웅이나 건국 영웅, 아니면 계유정난처럼 드라마틱한 정변을 일으킨 지도자가 각광받았다. 반면 요즘 사극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닌 현재 대중의 정치적 열망...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13. 이순신 죽이려던 왕에게 “불가하옵니다”

리더의 자질은 위기 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만약 임진왜란이 없었다면 선조도 그저 중간 정도의 임금으로는 평가받았을 것이다. 선조는 삼도순변사 신립(申砬)의 패전 소식을 듣자마자 ...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11. "명나라 군대 주둔은 절대 불가하옵니다"

지난 7월 말 필자는 열흘간의 일정으로 북만주 답사를 다녀왔다. 북만주 치치하얼(齊齊哈爾) 북쪽의 묵이근(墨爾根)에 옛날 묵이근성이 있었다. 묵이근 고도역참(古道驛站) 박물관이 있...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8. 올곧은 재상 한 명이 만백성 구한다

마지막 양명학자로 불렸던 민영규 선생은 (우반, 1994)에서 강화도에 은거했던 양명학자들이 조선이 망하자 만주로 망명할 때 을 갖고 갔다고 전해주고 있다. 명말청초(明末淸初)의 ...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7. “노비들의 분노 “양반들이나 나가 싸워라”

재일교포 학자인 윤학준 호세이 대학 교수는 (1994년)란 책에서 재일 한국인 중 99%가 양반이고 99%가 상놈이라고 했다. 실제로 대한민국 국민의 99%는 스스로를 양반의 후예...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5. 임란 때 왜군 절반이 조선 백성이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나흘 만인 선조 25년(1592년) 4월17일. 삼도순변사(三道巡邊使) 신립(申砬)은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쳤다가 패배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선조는 도성(都...

사극은 문중에 물어보고 만들라고?

경주 배씨 문중이 영화 의 역사 왜곡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국민권익위원회에 민원을 접수한 데 이어 감독 등 제작진을 경찰에 고소할 예정이라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영화 속...

[이덕일의 칼날 위의 歷史] #2. 혁명 공신 처남 4명 사형시켜 법치를 세우다

제왕의 자질을 알아보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가 친인척 문제다. 이 문제는 한 제왕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바로미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제왕의 공사(公私) 개념을 말해주는...

지도자가 고프고 리더십이 고프다

은 12일 만에 1000만 관객 돌파라는, 황당하기까지 한 대기록을 세웠다. 이런 흥행은 아마도 다시는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거의 21세기판 ‘자발적 새마을 영화’라고 할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