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집안에 널린 유해 물질, 어떻게 피하나
  • 안은주 기자 (anjoo@e-sisa.co.kr)
  • 승인 2001.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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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 · 가구 등이 배출하는 유해 물질 '신체 점령'…
환기 자주 하고 천연 제품 써야
식품 첨가물이 함유된 가공 식품이나 플라스틱 그릇에 보관한 반찬을 먹고, 합성 세제로 빤 옷을 입는가? 또 집안에 밴 나쁜 냄새를 없애는 데 방향제를 애용하고, 개미나 바퀴벌레용 살충제를 사용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몸은 이미 환경 호르몬을 비롯한 온갖 화학 물질에 점령당했다.


당신의 장기와 혈액에 침투한 화학 물질들은 날마다 조금씩 당신의 건강을 좀먹고 있다. 가벼운 두통이나 접촉성 피부염은 '경고'에 불과하다. 화학 물질들은 궁극적으로 아토피를 비롯한 알레르기 질환, 나아가 암 또는 기형을 일으키는 유전인자를 만들 수 있다.




지난 11월6일 환경정의시민연대 소속 '다음을 지키는 엄마 모임'(다지모)은 일상 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유해 화학 물질의 종류와 영향을 밝히고, 대처 방안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열었다. 이 날 다지모가 유해 화학 물질을 배출하는 생활용품이라고 규정한 것은 총 여덟 가지 분야이다(아래 표 참조).


플라스틱 용기,
상온에서 화학 물질 배출


가장 유해한 것으로는 식품 포장 용기에서 장난감·식기·랩·페트 용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얼굴을 한 비닐과 플라스틱이 꼽혔다. 잘 알려져 있듯, 플라스틱과 비닐은 생식 기능과 내분비계 장애를 일으키는 환경 호르몬을 배출한다. 플라스틱으로 된 식품 용기에서 화학 물질이 사라지려면 제품을 만든 뒤 2년은 걸리고, 열을 가하지 않은 상온에서도 화학 물질을 배출한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또 샤워커튼이나 그릇, 랩 등에 많이 사용되는 폴리염화비닐(PVC)은 발암 성분이 있어서 기형아 출산과 유전자 변형의 원인이 된다. 그뿐만 아니라 랩의 접착력과 유연성을 높이려고 첨가하는 유연제는 지방질이 많은 고기나 치즈 등을 포장할 때 식품에 스며든다. 플라스틱 코팅재로 사용되는 에폭시 수지도 식품으로 스며들 경우 내분비 장애를 일으키고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일반 가정 열의 아홉이 사용하는 합성 세제 또한 독성이 강한 화학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합성 세제에 흔히 사용되는 계면활성제는 세포벽을 절단하는 성질이 있어 호흡이나 피부 접촉을 통해 인체에 들어가 신경 조직을 약하게 만든다. 피부막을 녹여 주부 습진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계면활성제에 주로 쓰이는 노닐페놀은 내분비계를 교란하거나 생식 기능을 떨어뜨리는 환경 호르몬이다.


바퀴벌레·개미·파리·모기·벼룩·진드기 등을 퇴치하기 위해 사용하는 살충제 역시 위험한 화학 물질을 배출한다. 헵타클로르·카바메이트·벤젠·붕산염·유기인산·클로로데인 등 독성이 강한 화학 물질로 만든 이들 살충제는 신경 계통에 장애를 일으키거나 피부 질환을 부를 수 있다.


가스 레인지는 화학 물질의 온상


에탄올이나 이소프로판올 등을 포함한 방향제나 포름알데히드를 사용한 가구·벽지·바닥재 또한 안전하지 않다. 방향제는 두통이나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고, 포름알데히드는 발암 물질이다.


거의 모든 가정에서 사용되는 가스 레인지 또한 화학 물질의 온상이다. 천연 가스나 프로판 가스는 타는 동안 일산화탄소·포름알데히드·이산화질소·이산화황을 끊임없이 배출한다. 이런 물질들은 면역 기능을 약하게 하고, 기관지염이나 신경과민 등을 일으킨다. 가스 레인지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주부가 두통이나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것은 이들 화학 물질 때문이다.


가공 식품에 빠지지 않는 식품 첨가물도 화학 물질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발색제와 방부제를 비롯한 4백여 가지 식품 첨가물은 체내 면역성을 약하게 하고, 신경계나 유전자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방부제는 발암성 물질로 중추신경 마비와 기관지염을 일으키고, 화학 조미료는 두뇌와 성장에 장애를 준다. 통조림이나 냉동 식품 등에 쓰이는 산화방지제는 기형아와 염색체 이상을 부르고, 착색제는 아토피성 피부염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햄이나 소시지에 사용하는 발색제와, 아이스크림 등에 사용하는 유화제·안정제는 유해한 화학 물질이 체내에 흡수되도록 돕는다. 얼마 전 영국에서는 감자 스낵에 들어가는 BHA라는 첨가물이 아이를 난폭하게 만든다고 해서 사용이 금지되기도 했다.


물론 백도명 교수(서울대 보건환경대학원)가 말한 대로 일상 생활에서 접하는 화학 물질이 농도가 낮은 상태에서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유해성이 판가름 난 뒤에 화학 물질을 피한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될지도 모른다. 동종인 교수(서울시립대·환경공학부)는 "현재 화학 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평가는 상품으로 출시될 수 있는가 정도만 판단하는 초보적인 수준이다. 따라서 유해성에 대한 정밀한 평가 없이 화학 물질 수만 종이 일상 생활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확한 유해성 평가를 거쳐서 생산이나 사용이 금지된 품목은 매우 적다. 영국에서 식품 첨가물 BHA를 금지한 것도 유통되기 시작한 지 수년이 지난 뒤였다.




유해성 화학 물질을 배출하는 생활용품













































제품군 유해 성분 인체에 대한 영향
비닐 · 플라스틱 환경 호르몬 암 또는 기형 유발
새 가구 접착제의 포름알데히드
방부제의 붕산염
의욕 저하, 불면증, 천식 유발, 유전자 변화, 눈 자극, 생식 능력 저하
벽지·바닥재 포름알데히드 의욕 저하, 두통, 천식 유발, 불면증
합성 세제 계면활성제, 염소, 과산화수소 신경 조직 약화, 피부염
살충제 클로로피리포스,
피레드린 등 독성 기체
신경 계통 장애, 두통, 현기증, 경련, 구역질, 피부와 호흡계 손상
방향제 계면활성제, 에탄올, 이소프로판올 두통, 어지러움 유발, 신경 조직 약화
가스 레인지 일산화탄소, 포름알데히드,
이산화질소, 이산화황
면역 기능 약화, 기관지염, 우울증, 신경 과민, 두통
식품 첨가물 방부제, 화학 조미료,
산화방지제, 착색제, 유화제
중추신경 마비, 암 유발,
아토피성 피부염, 천식 유발
자료 : 다음을 지키는 엄마 모임


그렇다면 도대체 뭘 먹고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이런 질문에 성수경씨(다지모 생활환경분과장)는 "완전히 피할 수는 없어도 줄일 방법은 많다"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실내에서 배출되는 화학 물질을 피하기 위해서는 환기를 자주 하고, 플라스틱 제품 대신 도자기·유리·나무 등 천연 소재로 된 제품을 이용하면 된다. 또 합성 세제 대신에 계면활성제가 함유되지 않은 자연 분해 세제를 사용하고, 방향제 대신 숯이나 벤자민 등 유해 물질 흡착 효과가 큰 물질 또는 식물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살충제도 은행잎이나 박하(바퀴벌레·개미 퇴치), 비닐 물주머니(파리 퇴치), 모기장 따위 대체재를 사용하면 불편함을 덜 수 있다. 가공 식품보다는 제철에 나는 야채나 채소로 식단을 꾸미면, 식품 첨가물에 의한 폐해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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