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는 '회초리'가 있다
  • 경기 양평.오윤현 기자 (noma@e-sisa.co.kr)
  • 승인 200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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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교육 현장 취재/2주간 한자.예절 함께 배워...논.개울에서 뒹굴기도
겨울 방학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일지 모르지만, 학부모에게는 고통스러운 날이 될 수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을 둔 황혜정씨(38·서울 청담동)는 요즘 그 사실을 절감한다. 틈만 나면 컴퓨터 앞에 앉으려는 아이들과 날마다 ‘처절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황씨는 방학이 시작된 뒤 ‘그만 하라’는 소리를 안 해본 날이 없다며 “딱 하루 잔소리 안하고 놔두었더니 무려 여덟 시간 이상 게임을 했다”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학부모가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튀는 공처럼 정신 없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어떻게 자녀들을 이끌어야 할지 몰라 쩔쩔 매고 있는 것이다. 방학 초에 그럴듯한 생활 계획표를 짜도록 유도한 학부모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빡빡한 일과표를 제대로 지키는 아이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맘껏 놀리면서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국자녀교육상담소 정 송 소장은 “부모가 생각만 바꾸면 얼마든지 길이 있다”라고 말한다. 정소장에 따르면, 방학은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인간성과 감성을 키워줄 수 있는 때이다. 이 기회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아이들을 외가나 친척집에 보내는 것이 좋다. 외할머니나 친지 어른들을 통해 예절을 배우고 덕 쌓는 법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갈 만한 친척집이 없다면? 교육 전문가들은 여러 단체가 운영하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추천한다. 특히 서당이 괜찮다고 말한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학교와 달리 예절·인격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벽계서당은 한자를 배우며 제대로 된 인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양수리에서 북한강변을 쭉 따라가다 보면 유서 깊은 이항로 선생(1792∼1868·조선시대 유학자)의 생가가 나온다. 벽계서당은 그곳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된바람이 부는 1월 초 한낮. 벽계서당에서는 염불처럼 웅얼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무얼 하는 걸까. 살짝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학동 30여 명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열심히 무언가를 외고 있다. 얼른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장석현 훈장(42)이 따라나선다.

장훈장에 따르면, 전국 곳곳에서 벽계서당을 찾은 학동들은 2주 동안 <四字小學> <推句·啓蒙>·<童蒙善習> 등을 배운다. <사자소학>은 인간의 윤리·도덕·예절을 강조한 4자 성어를 모은 책이고, <추구·계몽>은 아이들 정서를 따뜻하게 만들고 문장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아름다운 시구와 산문을 모은 책이다. 이외에도 학동들은 혼례·제례·상례를 이론과 실기로 배운다. 기상 시간은 아침 6시.





그 날 오후 육적·계적·향·전·포·채·향합·모사라고 쓰인 나무토막을 이용한 제상 차리기 실습이 있었다. 5~6년씩 벽계서당을 드나든 학동들이 있어서인지 제상 차리기는 막힘이 없었다. 네 명이 한 조를 이루었는데, ‘고참’이 없는 몇몇 조가 쩔쩔 매기도 했다. 하지만 훈장이 몇 마디 거들자 음식의 위치가 바뀌고 금세 상차림이 번듯해졌다. 그 사이 두 학동이 뒹굴며 떠들다가 훈장의 호출을 받았다. 낭창대는 싸릿대가 종아리에 닿자 학동들의 얼굴이 벌개졌다.


“엄마 보고 싶은 것 빼고 다 재미있다”


제일 어리다는 임성재군(경기 구리초등학교 2)에게 무섭지 않느냐고 했더니 “엄마 보고 싶은 것 빼고는 다 재미있다”라며 웃었다. 이해찬군(서울 월촌초등학교 5)은 “크리스마스 때에는 외롭고 쓸쓸해서 집에 가고 싶었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벽계서당 아이들은 엄마 이야기가 나오면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2주 동안 부모 품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자연스레 부모를 그리워하게 된 것이다. 장훈장은 늘 부모와 살붙이고 살던 아이들에게 서당 생활은 ‘이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소중한 장소라고 말했다.


해가 산그늘을 짙게 만들자 정훈장이 아이들을 데리고 서당 밖으로 나갔다. 바깥 기온은 영하 7~8℃. 가만히 있어도 볼이 얼얼했다. 그렇지만 학동들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두 패로 나뉘어 눈 덮인 논과 개울로 숨가쁘게 달려갔다. 사내아이들은 울퉁불퉁한 논에서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공을 찼고, 계집아이들은 꽁꽁 언 개울에서 썰매를 씽씽 탔다. 새빨갛게 언 손을 호호 부는 학동도 있고, 눈 위에 넘어지고 자빠지는 학동도 있었지만 논과 계곡에는 건강한 웃음소리가 낭자했다.


그들이 놀이를 마치고 돌아오면 간식이 기다리고 있다. 귤 껍질을 벗기고 빵 봉지를 뜯는 소리가 가라앉자, 정훈장이 ‘자, 이제 강(講) 받는 시간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저기에서 ‘휴우’ 하는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일제히 책에 눈을 대고 낭랑한 목소리로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조옥요옹필중(足容必重·발 모양은 반드시 중후하며), 수우요옹필단(手容必端·손 모양은 반드시 공손히 하라)…’.






사나흘만 지나면 눈빛·행동 달라져


노래가락 같은 낭송이 달아오를 무렵 정훈장이 학동의 이름을 불렀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일순 엄숙해졌다. 학동들이 ‘강만 없으면 정말 좋겠다’고 한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학동들이 외는 내용은 다 달랐다. 몇 년째 벽계서당을 드나들며 <사자소학>을 뗀 학동도 있고, 이번에 입문한 학동도 있기 때문이다. 무릎을 꿇은 채 공부한 부분을 한 자 한 자 외는 아이들의 표정이 가지각색이다. 내용을 잊어버려 혓바닥을 내밀고 실실 웃는 학동, 눈물을 찔끔거리는 학동, 머리를 긁적이다가 고개를 떨구는 학동, 입을 열기도 전에 홍당무가 되는 학동….


정훈장은 학동들에게 엄하게 한자의 뜻을 묻고, 못 외운 부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질타했다. 그리고 외운 정도에 따라 통(通)·략(略)·조(粗)·불(不) 네 등급으로 점수를 매겼다. 통은 ‘다 외우다’, 략은 ‘대충 외우다’, 조는 ‘거칠게 외우다’, 불은 ‘못 외우다’를 의미한다. 못 외운 학동들은 다음날 다시 외우고, 그때 통을 못 받으면 벌쓴다.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버릇이 없고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가르치기 나름 아닐까. 정훈장은 서당 교육이 완벽한 방법은 아니지만, 아이들을 변화시킨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엄한 학습과 불편한 시골 생활에 진저리를 치지만 사나흘만 지나면 눈빛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여기에서의 하루하루가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 듯했다.

“(벽계서당에서) 남을 도와주고, 노력한 만큼 기쁨도 커진다는 걸 알았어요.” 6년째 벽계서당을 다닌다는 이지민양(경기 다문초등학교 6)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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