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덩이’ 스포츠 복표 ‘복덩이’로 키우는 법
  • 장원재(숭실대교수) ()
  • 승인 2002.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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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축구 연중 리그화가 성공 ‘젖줄’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뒷날 엄청난 의미와 영향력을 지니게 되는 일들이 정작 시작 초기에는 별달리 주목되지 못했던 예를 허다하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체육계 내부로 시야를 한정해 축구 복표 사업에 관심을 기울여 보자. 국민들의 사행심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든가, 폭력 조직과 연계된 승부 조작 위험성이 있다든가 하는 나름의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축구 복표 사업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실보다 득이 많은 사업이다. 무엇보다도 프로 축구, 나아가 우리나라 스포츠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 육성해 발전시킬 촉매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포츠 산업화란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 프로 스포츠가 모기업의 재정 지원을 받는 단계에서 벗어나 자체적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상당한 인원을 고용해 경제 발전에 창조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스포츠 산업화의 핵심이다.






2002년 현재,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그러나 거의 유일한 상품은 경기 자체다. 다시 말해서, 본 경기를 제외하면 프로 스포츠가 하나의 산업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이른바 ‘스포츠 파생 상품’이 전무하다는 이야기다.


스포츠 복표 사업은 이런 맥락에서 스포츠 산업화로 가는 가장 효율적인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복표 사업을 통해 프로 축구는 경기장 주변, 경기 중심의 제한된 시·공간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차원과 논리로 움직이는 스포츠 바깥의 광대한 세계로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스포츠 산업 전체가 관광산업·금융업 등과 같은 맥락에서 논의되는 고도화한 3차 산업의 하나로 발전해 갈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2001년 10월부터 시행 중인 한국 축구 복표 사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심각한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축구 복표의 속성상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다수의 경기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같은 필요 충분 조건을 전혀 충족시키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표팀 경기나 FA컵 경기를 대상으로 삼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복표 사업이 성공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도 1등 당첨자에게 거액 상금을 보장하는 강력한 동기 유발 요인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구도와 같이 K리그 경기만을 대상으로 사업을 시작한다면, 매회 다섯 경기 이상은 치를 수 없기 때문에 경우의 가짓수가 제한되고, 따라서 상금 액수도 적을 수밖에 없다. 천원을 내고 다섯 경기의 승패를 모두 맞춰 보아야 24만3천원 이상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현행 제도대로 주중 경기·주말 경기를 아우르고, 전반전과 후반전 결과를 모두 맞추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야기할 공산이 크다.


현행 ‘스포츠 토토’의 문제점 두 가지







첫째, 복표 사업 성공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또 다른 포인트, 즉 복표의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은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단순하고 간단 명료한 방식’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고 듣고 바로 결과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참을 들여다보고 이리저리 따져보아야 당첨 유무를 알 수 있다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국민적 오락’이 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토요일에 일부 경기 결과를 확인해 ‘절반의 승리’를 거둔 사람들이 완전한 승리를 위해서 수요일까지 기다려야 하는 지루한 당첨 확인 과정도 인기몰이에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둘째, 1주일에 두 경기씩을 1년 내내 소화하는 일정은 축구라는 경기의 본질을 감안하면 말이 되지 않는 편성이다. 이같은 일정은 선수들의 신체에 지속적인 무리를 가져오며, 피로를 누적시켜 경기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부상 위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키는 연쇄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 타이거풀스의 원안대로 2군 리그 경기를 포함해 대상 경기를 확장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2군 리그란 본질적으로 연습 게임이며, 승리를 위해 전력을 동원하는 완전 경쟁 경기(fully competitive match)가 아니다. 이제까지의 관례대로, 부상 선수들의 회복 여부를 점검하고 신인 및 외국 선수를 테스트하기 위해 다소 탄력적으로 2군 경기를 진행했다가는, 복표 참가자들의 집단적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필자는 한국 축구 복표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실업 축구 활성화를 통해 리그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실업 축구단들이 소도시에 본거지를 정하고, 축구 복표 사업 주관사와 방송사가 각팀 운영비를 일부 지원하는 식으로 실업 축구 연중 리그를 창설한다면, 앞에서 언급한 복표 사업의 본질적인 문제들은 비교적 간단히 해결될 것이다. K리그에 비해 경기 수준이 다소 떨어지는 점이야 불가피하겠지만, 복표 사업 정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초일류들이 벌이는 한두 경기가 아니라 승부를 예측할 수 없는 다수 경기이다.



실업 축구의 연중 리그화에는 또 다른 문화사적 의미가 있다. 단순히 복표 사업을 성공시킬 기틀을 마련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축구판 전체의 규모가 확장되면서 축구 산업화로 나아가는 인적·물적 기반이 조성되는 동시에 막대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해 국민 경제에 기여할 길이 열리는 것이다. 문제는, 누가 초기 투자 비용을 감당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그러나 선행 투자를 통해 2부 리그가 활성화한다면, 그리고 대상 경기 확장을 통하여 복표 사업이 본궤도에 올라선다면, 이같은 초기 투자 비용은 단기간에 전액 회수가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축구 복표 사업자가 최초·최대의 수혜자가 되는 이외에, 궁극적으로는 축구인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수혜자가 되리라는 점에도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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