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가·경품 사냥꾼… 떠오르는 ‘e색 직업’
  • 오윤현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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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관련 특수 직종 ‘각광’…감각이 ‘관건’, 전망 밝아
미국에서는 앞으로 10년 동안 고용이 늘어날 분야로 서비스 산업이 꼽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정보기술(IT) 관련 산업이 인기를 끌 전망이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산하 중앙고용정보원이 지난해 정보 기술 관련 직업 종사자 2천1백18명을 조사한 결과, 1천7백99명(84.9%)이 ‘향후 5년간 정보 기술 산업의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고, 정보기술 변화가 빨라 관련 직업이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많은 사람에게 정보 기술 관련 직업은 낯설다.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클리커·네이미스트·사이버디텍티브·콤포저·뉴스클리퍼·아바타 디자이너·GIS 전문가 같은 직업을 대하면 어안이 벙벙해지기까지 한다. 스파이 용어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고, 또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네이미스트…“섹시한 이름을 붙여주마”




최고급 차종에 에쿠우스(EQUUS)가 있다. 중후한 차에 에쿠우스라는 이름은 썩 잘 어울린다. 누가 이처럼 그럴싸한 이름을 지어낸 것일까. 자동차 회사의 사장도 유명한 작명가도 아니다. 바로 네이미스트 김희수씨(31·메타브랜드 팀장)이다. “1998년에 의뢰를 받았다. 10여 가지 이름을 지어냈는데, 그 가운데 에쿠우스가 뽑혔다.” 요즘 그의 책상에는 담뱃갑이 즐비하다. 담배인삼공사로부터 곧 출시될 담배 이름을 지어달라는 부탁을 받아 놓은 것이다.


한 제품의 이름을 짓는 데 걸리는 시간은 꼬박 한 달. 그 기간에 네댓 명의 팀원은 세계의 온갖 사전을 뒤적거리거나, 대형 매장이나 서점에 나가 새로운 제품의 이름을 ‘벤치마킹’하는 등 혼신의 노력을 쏟는다. 경쟁 제품과 비교해 분석하고, 소비자 만족도와 시장 변화를 조사해 마케팅 전략을 짜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고참도 1년에 기껏해야 12∼13개 상품의 작명밖에 못한다는 것이 김팀장의 설명이다.


이름을 지었다고 모두 채택되는 것도 아니다. 최종안을 2개 내놓으면 의뢰사에서 그 중 한 가지를 채택하는데, 그 과정에서 이름이 뒤바뀌기도 한다. 소주 이름 夢(몽)이 山(산)으로 바뀐 것이나, 민속주 이름 紫雲英(자운영)이 天菊(천국)으로 바뀐 것이 대표적이다. 이미 외국에 상표 등록이 되어 있는 이름을 모르고 썼다가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렇더라도 네이미스트는 비교적 행복한 직업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상품명을 짓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행동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고, 자신이 작명한 상품이 히트했을 때의 기쁨도 크다. 직업 전망도 밝은 편이다. 김씨는 “현재 메이저급 회사가 다섯 군데 있지만, 수요가 점점 더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평소 언어 감각이 뛰어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자주 내놓는 사람에게 유리하다. 전공과 상관없이 4∼5년쯤 일하면 3천만원 안팎의 연봉을 받는다.


클리커…“인터넷 쇼핑몰이 내 사냥터”




인터넷과 평생 붙어지내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이 있다. 클리커.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쇼핑몰이나 웹사이트를 찾아다니며 각종 경품을 ‘사냥’하는 사람을 뜻한다. 클리커는 하루 종일 마우스만 클릭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외국에는 거액의 인터넷 복권 당첨 같은 횡재나, 마일리지를 통해 현금 확보를 노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한국에서 활동하는 클리커들은 주로 추첨이나 퀴즈 대회를 통해 수익(경품)을 획득한다. 비슷한 직업으로 비드 브로커가 있다. 이들은 세계 최대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eBay) 등에 들어가 돈이 될 만한 물건을 값싸게 낙찰 받은 뒤, 다른 사람에게 비싸게 되팔아 이윤을 남긴다.
간혹 의뢰인의 부탁을 받아 특정 품목을 싸게 구입해 준 뒤 수수료를 챙기는 전문가도 있다. 인터넷 사냥 실력과 예지력, 거기에다 결단력과 순발력을 갖춘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뉴스 클리퍼…“신문·잡지는 내 밥이다”


이유란씨(25·드림커뮤니케이션즈 근무)의 하루는 여느 사람과 다름없이 신문 보는 일로 시작된다. 아침 7시. 이씨는 회사에 나와 50가지가 넘는 신문을 번갈아 뒤적인다. 그러나 신문을 보는 모습이 조금 다르다. 수시로 일어나 신문을 스캔 받아 컴퓨터에 입력해 놓는 것이다. 오전 8∼9시에도 그의 행동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10시가 넘어서자 그의 몸짓에 약간 변화가 생긴다. 신문을 갖다 두고 잡지를 뒤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 회사 직원들 눈에는 조금 괴이해 보이겠지만 그의 직업을 감안하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씨의 직업은 뉴스 클리퍼. 클리퍼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그는 고객(기업)이 원하는 정보를 신문이나 잡지에서 오려내 전달하는 일을 한다. 그가 맡은 분야는 벤처·코스닥·IT 산업 관련 기사 클리핑. 그는 그 가운데 의뢰사의 경쟁사 기사·업계 동향·금융 정보 등을 오리고, 기자의 성향을 분석해서 매일 KT·네오위즈·한국디지털위성방송 같은 기업에 제공한다. 업체들은 정보를 제공받는 대가로 월 1백50만∼5백만 원 정도를 낸다.


이씨는 뉴스 클리퍼가 “세상의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파악하고, 보고 싶은 신문과 잡지를 모두 본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소개했다. 자료 분석에 일가견이 있고, 남보다 논리 정연한 사람이 도전할 만한 직업이다. 보수는 대졸 경력 2년 차가 1년에 1천5백만원쯤 받는다. 기업과 정보가 날로 폭증하고 있어 미래도 밝다.


아바타 디자이너…“나는 사이버 분신 조물주”




라이코스(www.lycos.co.kr)가 운영하는 웹게임 ‘마이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가난한 사람도 모든 꿈을 이룰 수 있다. 게임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주인공 10명(남녀 각각 5명) 가운데 한 사람을 나로 정한다. 그리고 사이버 세상에서 현실과 똑같이 생활한다. 부모 밑에서 생활하고, 사회에 진출해 직장도 다니고, 주식·복권·저축 등을 통해 재산도 모은다.


이 과정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 조종하는 또 다른 가상 인물들과 교제하면서 최고급 저택과 승용차, 그리고 의상으로 치장하기도 한다. 때로 실패하는 일도 있어서 나는 인상을 쓰거나 울기도 한다(반대로 웃는 일도 있다). 다행히 재산을 산더미같이 불리면 나는 원하는 타입의 여성과 결혼하고, 회사도 세운다. 더 나아가 자식도 낳고, 손녀나 손자도 볼 수 있다.


이 게임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분신을 통해 억눌린 욕망을 배출하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며 희열을 만끽하는 것이다. 이런 짜릿한 쾌감 때문일까, 지난해 국내 아바타 시장 규모는 2백억원을 넘어섰다.
김민봉씨(28·라이코스코리아 근무)는 마이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아바타를 100여 명이나 창조해낸 ‘신’이다. 2년간 그가 거리에서 오가며 만난 사람들의 이미지를 따서 만든 아바타들의 연령은 어린이에서 노인층까지 다양하다. 김씨는 동작과 표정이 자연스러운 아바타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사람의 동작과 표정을 관찰하고 있다. 그는 “내가 만든 캐릭터를 이용해 사람들이 웃고 울 때, 보람과 함께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아바타 디자이너의 가장 큰 고충을 새로운 인물 창조와, 기존 인물과 환경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가상 세계에서도 친구·직장 동료·애인 등이 생기면서 인간 관계가 복잡해진다. 그같은 주변 인물을 만들어주고, 또 상황에 맞는 표정이나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스케치를 잘하고 드로잉을 할 수 있으면, 전공에 상관없이 누구나 아바타 문턱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현재 김씨는 1년에 3천만원 가까이 받고 있다.


GIS 전문가…“지도, 손금 안에 있소이다”




서울 남산에는 무슨 나무를 심어야 잘 자랄까. 그늘도 있고, 모래땅도 있고, 높낮이도 달라 각 구역에 심는 나무가 달라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구역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예전 같으면 조사관을 파견해 1년쯤 조사해 파악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지리정보시스템(GIS)을 이용하면 모든 것을 눈 깜박할 사이에 알아낼 수 있다.


지리정보시스템이란 지표면과 지하·지상 공간에 존재하는 산·강·토지 같은 자연물과, 건물·철도·도로 같은 인공물에 대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시스템을 말한다. 박상일씨(31·지오매니아 근무)는 그같은 지리 정보를 이용해서 실용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GIS 전문가이다. 그는 GIS를 “재해·국방·교통·지하 시설물 관리·택배·환경·농업·도시 계획 등 모든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라고 소개했다.


대학과 대학원에서 전자계산학을 전공한 박씨는 GIS 전문가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직업이라며 “우리가 제공한 자료를 이용해 사업에 성공하는 사람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6년 경력인 그가 받는 연봉은 4천만원 정도. 지도에 호기심이 많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고액 연봉’에 도전해볼 만하다.


그밖에도 이색적인 정보 관련 직업은 얼마든지 있다. 사이버디텍티브는 웹 탐정을 말하는데 주로 기업의 비밀 유지, 보안 점검, 특정 해커 감시 일을 한다. 콤포저는 웹사이트를 꾸미는 데 필요한 컨텐츠를 기획하고 만드는 직업이다. 국내에서는 웹 프로듀서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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