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즐기려면 버스에 올라타라
  • 오윤현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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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알차고 재미있는 ‘시티투어 버스’ 활용법
벌써, 꽃 소식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는 기온이 유난히 따뜻해 개나리와 진달래가 예년보다 1주일쯤 먼저 핀다. 꽃이 벙긋벙긋하면 사람들은 공연히 싱숭생숭해져 꽃 마중 가려고 서두른다. 그런데 어디로 간담. 서울 같은 대도시 사람들은 교통난과 바쁜 일과 때문에 들녘에서 봄빛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람들, 미적미적거리다가 슬그머니 방안에 주저앉으려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봄나들이가 있다. 바로 서울 시티투어 버스에 몸을 싣는 것이다(서울 구경을 제대로 하고 싶은 타지 사람이나 외국인에게도 제격이다).




이용 방법(위 상자 기사 참조)은 간편하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자기가 보고 싶은 곳에서 하차하면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30분∼2시간쯤 관광이나 쇼핑을 한 뒤 30분마다 오는 버스에 다시 올라 다른 목적지로 이동하면 된다. 대구에서 왔다는 차영채씨는 “가이드가 있어 길 잃을 염려가 없고, 택시보다 싸게 가고 싶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어 편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차씨는 낮 12시께 버스에 오르는 바람에 가고 싶은 곳을 다 못 가게 되어 아쉽다고 덧붙였다.


시티투어를 이용하면서 차씨처럼 섭섭하지 않으려면 찬찬히 계획을 세운 뒤 버스에 올라야 한다. 먼저 ‘본전’을 빼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되도록 일찍 버스에 오르는 것이 유리하다. 네 코스 모두 오전 9시에 광화문에서 첫 차가 출발하고, 30분마다 1대씩 순환한다(고궁 코스는 1시간). 가이드 최윤정씨는 고궁부터 관람하는 것이 시티투어를 알차게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소개했다. “쇼핑 장소보다 먼저 고궁에 들르는 것이 유리하다. 쇼핑을 하다보면 자칫 고궁이 문을 닫아 입장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를 ‘괴롭히는 것’도 관광을 알차게 하는 비법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계속 묻고 듣는다(다행스럽게도 가이드들이 명랑하게 대꾸를 잘해준다). 가이드에게 숨은 ‘명소’를 찍어달라고 해도 좋다. 최윤정씨는 인사동에서 하차하면 인사동만 둘러볼 것이 아니라, 동쪽 너머에 있는 운현궁을 꼭 들러 보라고 권했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정치 활동 근거지였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즉위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 고종은 1866년 이곳에서 민씨(후에 명성황후)와 가례를 올리기도 했다. 3월 말이면 화사한 봄빛을 감상할 수 있고, 매주 토·일 요일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전통 혼례를 관람할 수 있다. 김동인의 장편 소설 <운현궁의 봄>을 읽고 들어서면 또 다른 느낌을 맛볼 수도 있다.


남산에 가면 팔각정·케이블카 꼭 올라야




시티투어 버스가 정차하는 곳에는 운현궁 같은 비경이 곳곳에 숨어 있다. 남대문시장에서는 신세계백화점과 맞닿아 있는 지하 상가가 눈길을 끈다. 이곳은 30∼50대가 찾아가면 반할 만한 곳인데, 특히 수북이 쌓인 오래된 레코드들이 돋보인다. 한 레코드 가게 주인은 “낡은 레코드만 취급하는 가게가 20개쯤 된다. 음악 전문가들이 자주 들러 1960∼1980년대 귀한 판을 구해 간다”라고 말했다. 가게에 내걸린 색 바랜 레코드 커버를 보니 잊힌 가수들의 얼굴과 곡 이름들이 선명하다. 국내에 10여 장밖에 남지 않았다는 신중현과 김추자의 라이브 공연 실황을 담은 레코드까지 보였다.


남산 꼭대기에서 하차하면 서울타워에만 오를 것이 아니라 팔각정과 남산 입구를 잇는 케이블카에도 반드시 올라본다. 3분 정도 운행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청명한 밤이나 복사꽃잎 분분한 낮에 타면 저절로 탄성이 새어나온다. 햇빛 찬란한 날 연둣빛 낭자한 숲 위를 가로지를 때의 마음은 산이나 들에 나가 맛보는 감흥과는 전혀 다르다.


동대문시장 두산타워 앞에서 하차하면 쇼핑은 기본이다. 그러나 양손이 무거워지기 전에 들러볼 곳이 있다. 도보로 5∼10분 거리에 있는 황학동 벼룩 시장. 이곳에는 없는 물건이 없다. 찌그러진 지구의, 겉장이 뜯겨나간 두꺼운 고서들…. 낡고 오래된 만큼 흥정만 잘하면 필요한 것을 매우 싸게 구할 수 있다. 또 자녀들과 함께 옛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


경복궁 관광의 꽃은 ‘교태전과 자경전의 꽃담’


경주에 가서 남산의 수백 개 불상을 꼭 보고와야 하듯이, 경복궁에서도 눈에 꼭 담아 가지고 와야 할 풍경이 있다. 바로 교태전과 자경전의 꽃담이다. 경복궁에 가도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꽃담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높고 우람한 건물을 보호하고 치장하는 구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담장은 건물이나 사람을 보호하고, 동시에 가두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왕비가 거처했던 교태전과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가 거처했던 자경전의 아름다운 담장은 한 가지 구실을 더해 왔다. 구중 궁궐 안에서 지내느라 마음이 답답한 여인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교태전과 자경전의 담장은 그 어느 담장보다 화려하고 아름답다.


자경전 뒤뜰에 의젓하게 서 있는 십장생 굴뚝과 인공 정원 아미산에 우뚝 선 6각형 굴뚝도 아름답다. 두 굴뚝에는 당초무늬·대나무·학·소나무·매화 외에 봉황·불가사리·해태·호랑이 등이 새겨져 있는데, 화마를 막고 상서로운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좀더 시간을 낼 수 있다면 민속박물관 앞에 있는 야생화 자연학습장에 들러 본다. 계절에 따라 작고 아담한 꽃을 피워내는 온갖 꿀풀·엉겅퀴·솜방망이·잔대·박새·금낭화 등이 심어져 있다. 이곳은 특히 여름꽃이 피어나는 6, 7월이 절경이다.


덕수궁 주변에서 한적한 풍경을 만나고 싶은 사람은 남서쪽으로 난 문으로 빠져나온다. 그리고 잠시 서대문 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20세기 말 아관파천의 현장인 옛 러시아 공사관에 닿는다. 아관파천은 1896년 2월, 고종이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사건을 말한다.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의 한 방을 1년 넘게 집무실 겸 알현실로 쓰면서 쓰러져 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려고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자 고종은 마침내 대한제국을 세우기로 결심했다.




저녁 무렵, 일부만 남은 현재의 러시아 공사관 건물에 가보면, 고종의 외로움과 슬픔이 진하게 배어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 옛날의 영화나 파란만장한 사건들이 다 부질없다고 말해주는 듯싶다. 이 건물은 1890년 러시아 토목기사 사마틴이 설계한,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르네상스식 건물이다. 어쩌면 건물이 일부만 남아 있어서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러나 100여 년 전의 주변 풍경을 떠올리며 역사를 음미하다 보면 새롭게 다가온다.


이 외에도 창덕궁 금천교에 세워져 있는 해태상과 현무상, 그리고 대조전의 독특한 지붕 모양도 찬찬히 뜯어볼 풍경들이다. 서울역에서 하차하면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당인 중림동 성당, 용산 전쟁기념관 근처의 대구탕 골목도 잘 모르면 그냥 스쳐 지나기 쉬운 명소이다.
몽골에서 이틀 전에 왔다는 게를촐롱 씨(22)는 “시티투어 버스가 없었다면 남산이나 이태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서울은 몽골 사람들이 꼭 와보고 싶어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티투어 버스(시티투어) 이용 방법은 네 가지이다. 맨 먼저 고궁 코스(17km). 가장 짧은 코스로 1시간마다 광화문을 출발한 버스가 덕수궁·창덕궁∼서대문 독립공원 등 고궁을 중심으로 돌아다닌다. 순환 코스(35km)는 고궁과 함께 남대문시장·전쟁기념관·남산·대학로같이 ‘특별한 정서’가 스며 있는 명소 스물여덟 곳을 들른다.
3월1일 신설된 서울 판타지 코스(32.9km)는 신촌·홍대 입구·절두산 순교박물관·상암 월드컵경기장·여의도 선착장·국회의사당·용산전자상가 등 열 일곱 장소로 안내한다. 야간 코스(42.9km)는 서울 판타지 코스의 일부분을 돈 다음, 이태원·남산 케이블카·동대문시장 등에 정차한다. 가격은 1회권 3천원, 주간권(9~19시)·야간권(17시30분~23시30분) 8천원, 하루권 1만2천원이다. 시티투어 이용자는 국립중앙극장·세종문화회관·63빌딩·세모유람선을 이용할 때 15∼30% 할인 혜택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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