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 뜯으러 가실래요?
  • 이영미(문화 평론가) ()
  • 승인 2002.03.2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래, 니 잘났다. 이천 산다 이거제? 내는 아파트 살아 청국장도 제대로 몬해 묵는다, 우짤래?” 이 난을 즐겨 읽는 친구가 빈정거린 말이다. 하지만 오늘도 또 이천 사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좋은 봄에, 봄볕 속의 황홀한 산책 이야기를 어찌 안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천 산골로 이사 와서 처음 맞는 봄에, 나는 봄 기분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집 뒤의 야산으로 돌아다녔다. 그땐 주로 집에서 글을 썼기 때문에 조반을 먹으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마땅했는데도, 나는 나물 뜯는다는 핑계로 봄볕 맞으며 서너 시간 싸돌아다니고, 돌아와서는 그 기분에 푹푹 낮잠 자기가 일쑤였다.




나는 서울내기로 커서, 그 이전에 나물을 뜯어본 경험은 딱 두 번뿐이다. 한 번은 초등학교 2학년 봄방학에 엄마 따라 전북 외가에 갔을 때이다. 2월 말인데도 남쪽 지방이어서 그런지 양지쪽 마른 풀잎을 헤치면 쑥이 조금씩 푸른 기를 내밀었고 냉이도 있었다. 땅에서 나는 것을 가져다가 금방 국을 끓여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 경험이었는지, 단 며칠의 짧은 경험이 어른이 되어서까지 아주 강렬하고 생생한 기억으로 살아 있다. 도시의 아이들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는 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단 며칠만이라도 말이다. 아이들의 적응력은 별로 걱정할 게 못 된다.

어릴 적 나도 첫날은 냉이와 고추냉이(와사비의 재료가 될 뿐 다른 용도로는 먹을 수 없다)를 구별하지 못했지만 둘째 날부터는 그것도 웬만큼 가려낼 수 있었으니, 사람의 적응력이란 참 강한 거다. 그리고는 결혼 직후 시어머니와 함께 취나물과 고사리를 뜯어본 적이 있었다. 나는 나물이 눈에 설어, 노인분이 한 바구니 뜯을 때까지 그 절반도 못 채웠었다.


그래도 지금 봄나물을 뜯어 먹게 된 것은 그 경험 덕분이다. 나물은 ‘캔다’기보다 ‘뜯는’ 것이다. 달래와 냉이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물은 뿌리째 캐는 것이 아니라 잎과 줄기를 뜯어 먹으며, 그래서 시골 사람들도 ‘나물 뜯는다’ ‘나물 한다’는 표현을 많이 쓴다. ‘나물 캔다’는 말이 이렇게 익숙해진 것은 시나 노래 가사에서 그 표현을 자주 썼기 때문인 듯하다.


3월에 먹을 수 있는 나물은 산나물이 아닌, 논둑 밭둑에서 나는 것들이다. 지천으로 깔린 어린 쑥은 조개나 멸치 넣고 된장국을 끓인다. 냉이는 된장국이나 된장찌개로 끓여도 맛있고 살짝 데쳐서 무쳐 먹어도 그 향이 일품이다. 이렇게 유명한 나물 외에도, 다년생 풀들이 처음 싹을 내밀 때에는 독이 별로 없어서 다 먹을 만하다. 4월 중순만 되어도 풀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는 개망초 싹도 3월에는 데쳐서 무치면 아작아작 신선한 맛으로 먹는다.


4월 초가 되면 산기슭에서는 원추리가, 들에서는 씀바귀가 난다. 여름이면 나리꽃 모양의 진노랑 꽃이 피는 원추리는 싹도 먹음직스럽게 크다. 된장국을 끓이면 달착지근 맛있다. 들에 깔린 씀바귀는 아직 쓰지 않고 연해, 데쳐서 그대로 고추장이나 된장에 무치면 아주 좋다.


그리고는 5월이 되면 이제 본격적으로 산나물 철이다. 취나물·고사리·두릅 같은 것들이 제철이 되는 것이다. 산에서 뜯은 취나물 맛을, 온상에서 재배한 것에 어찌 비할 수 있으랴. 그 향은 열 배는 차이가 나는 듯하다. 밤새 봄비가 내린 다음날 아침이면 먹음직스러운 고사리 순이 쑥쑥 올라와 있다. 가시나무 꼭대기에 뾰족 내민 예쁜 드룹 순을 따는 건 조금 미안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요즘엔 전문 나물꾼이 너무 많아 산에 나물이 남아나질 않는다. 사람 손이 참 그악스럽다.


이영미의 음식이야기는 격주로 연재됩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