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좋아하다 쓴맛 본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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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지방간·심장병 등 부작용…하루 찻숟갈 둘 분량이면 충분
최근 번역 출간된 <슈거 블루스>(설탕 섭취로 인해 발생하는 육체 및 정신의 복합적인 질병을 뜻함)는 <뉴욕 포스트> 기자였던 윌리엄 더프티가 설탕의 폐해를 신랄하게 고발한 책이다. 윌리엄은 이 책에서 ‘설탕은 의문의 여지 없이 인류 역사 제1의 살인자이다. 그것은 아편이나 방사성 낙진보다 더 나쁘다. …근대 문명이 극동과 아프리카 국가에 전파한 것 중에서 설탕이 가장 사악한 악마다…’라고 단언한다.


아이스크림과 음료 소비가 급격히 늘고 있는 요즘, 윌리엄의 그같은 주장 때문에 오래된 논쟁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설탕이 몸에 이로우냐, 해로우냐?’가 그것이다. 국내외 갖가지 설탕 관련 자료와 <슈거 블루스>를 토대로 설탕의 ‘정체’를 추적해 본다.







설탕은 순수한 자연 식품이다?:대한제당협회 홈페이지(www.suger.or.kr)에는 설탕에 대한 찬사가 그득하다. ‘설탕은 …열대 지방에서 자라나는 사탕수수와 온대 지방에서 자라나는 사탕무에서 추출한 천연 그대로의 당즙에서 불순물을 걸러내고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도록 상품화한 순수한 자연 식품을 말한다.’ 언뜻 보면 모두 맞는 말 같지만 엄밀히 들여다보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천연 그대로의 당즙…’ 부분은 맞는 말이다. 설탕은 분명 사탕수수와 사탕무라는 천연 재료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정제 과정에서 원료의 90% 이상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슈거 블루스>에 따르면, 사탕수수나 사탕무를 정제해 설탕을 만들면 천연 성분의 99%가 제거된다. 비타민 C도 완전히 사라진다. 따라서 정제된 설탕에는 영양소는 없고 칼로리만 있다. 윌리엄은 말한다. “(설탕을 천연 자연 식품이라고 광고한다면) 헤로인도 천연 성분으로 만들었다고 광고해도 된다. 양귀비 역시 사탕수수 같은 천연 재료이다. 중요한 점은 그 천연 재료를 어떻게 (정제)했느냐이다.”







설탕은 몸에 해로운가, 이로운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분분하다. 그러나 설탕을 소화하고 체외로 배출하는 과정에서 우리 몸 안의 귀중한 비타민·미네랄·칼슘이 다량 소비된다는 사실에 거의 모든 학자가 동의한다. 또한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데도 이견이 없다. 서울 여에스더클리닉 여에스더 원장은 “당질 식품 섭취는 비만증과 충치를 유발하고, 혈액에 중성지방을 늘린다”라고 말한다. 중성지방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동맥경화가 되기 쉽고, 심장이 비대해지며, 지방간이 되기 쉽다는 말이다.



설탕은 비만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그 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우선 설탕은 포도당으로 전환된 뒤 글리코겐 형태로 간에 저장된다. 하지만 간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어 정제 설탕을 매일 먹으면 간이 풍선처럼 부푼다. 그러다 한계에 이르면 초과분의 글리코겐은 지방산으로 전환되어 혈액을 타고 돌아다닌다. 혈액은 온몸을 순환하다가 활동성이 떨어지는 배·엉덩이·유방·허벅지에 지방산을 옮긴다.



뇌도 설탕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 몸에서 뇌 기능을 조절하는 영양소는 채소에 함유된 글루타민산이다. 이 글루타민산이 뇌의 기능을 진행하거나 억제하는 화합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비타민 B군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비타민 B군은 장내에 공생하는 세균이 합성하는데, 정제 설탕을 매일 먹으면 장내 세균이 죽어버려 비타민 B군의 저장량이 바닥 난다.



따라서 설탕을 많이 먹으면 졸리거나, 계산력과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주식이 쌀인 사람들에게 설탕은 더욱 치명적이다. 비타민 B군이 제거된 쌀을 먹는 탓에 따로 비타민 B군을 공급받아야 하는데, 설탕을 먹게 되면 그나마 몸 안의 비타민 B군마저 소비하므로 영양 불균형을 가져오는 것이다.



일본의 설탕 연구가 고다 미쓰오의 경고는 좀더 위협적이다. 그에 따르면, 설탕을 과식하면 감기·편도선염·습진에 쉽게 노출된다. 그리고 권태감·견비통·비타민 B1 결핍증에 시달릴 수 있다. 또 칼슘을 빼앗겨 정신 상태에 이상이 와 쉽게 짜증을 내거나, 식사 뒤 자주 존다. 그 외에도 동맥경화·뇌졸중·암·아토피성 피부염·알레르기성 비염이 설탕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다(<해로운 백설탕 알고 먹읍시다> 태웅출판사).



좋은 점도 있다?: 국내 제당업계와 일부 학자에 따르면, 설탕(단맛)은 포도당과 과당이 단순 결합한 입자여서 먹는 즉시 혈액에 흡수되어 신체 에너지로 쓰인다. 그래서 피로가 심하거나 짜증이 날 때 설탕을 섭취하면 정서가 안정되고, 피로가 회복되고, 기운이 솟는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설탕이 몸 안에 들어가면 혈당이 높아져 기분이 급격히 고양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설탕으로 올려놓은 혈당은 높은 파도처럼 쉽게 아래로 곤두박질한다(저혈당증). 이렇게 되면 기분도 다시 곤두박질해 맥이 탁 풀리고 피곤해진다. 떨어진 혈당 수치가 다시 오르기 전에는 움직이기조차 힘들고 생각하는 것도 힘겹다. ‘가엾게도 뇌는 멍한 느낌과 환각에 쉽사리 빠진다. 불안정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며, 병적으로 과민해진다. 설탕을 통해 유입된 포도당이 혈액에 과다하게 유입될수록 증세는 심해진다.’(<슈거 블루스>). 사정이 이런데도 제당업계가 수십 년째 설탕의 에너지를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설탕에 영양소라고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아 내세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설탕에 대한 오해와 진실: 과학자들은 설탕을 탄수화물로 분류한다. 탄수화물이란 산소와 수소가 결합한 탄소라는 뜻이다. 그러나 천연 통알곡과 인조 정제된 설탕을 같은 탄수화물로 보는 것이 옳을까. 탄수화물을 섭취할 때 당질은 다당체(자연 식품에 들어 있는 당)로 섭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포도당·설탕 같은 단순 다당류는 총 당류의 10% 미만으로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어떤가. 정반대 길을 걷고 있다.



사람들 사이에는 흑설탕이나 황설탕이 백설탕보다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다. 과연 그럴까.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시중에서 팔리는 설탕은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황설탕·백설탕·흑설탕 제조 공법은 모두 같다. 색깔이 있는 설탕은 조금 더 가열한 설탕이거나, 백설탕에 당밀을 입힌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 색깔 있는 설탕이 자연산처럼 보이는 이유는 결정화 공정에 특별히 신경을 써서 미용 효과를 낸 덕이다.




얼마나 먹고 있나?: 서울 시은한의원 이지연 원장은 성인 한 사람에게 필요한 설탕의 양은 “하루에 찻숟갈 둘 분량이다”라고 말했다. 이 양은 혈액 속에 든 당의 전체 양과 같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어떤가. 주스·과자·사탕·패스트푸드·아이스크림 등을 통해 당을 먹고 또 먹는다. 콜라 350㎖에는 무려 각설탕 18개와 맞먹는 당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교적 당분 함량이 적다고 알려진 일부 이온 음료나 건강 음료에도 각설탕 8∼9개 정도의 당분이 들어 있다.



2000년 현재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설탕 섭취량은 21.4kg으로 세계 평균인 20.9kg보다 약간 많다. 싱가포르 사람들이 72.9kg으로 세계에서 설탕을 가장 많이 소비하며, 호주(63.5kg), 쿠바(62.7kg)가 그 뒤를 잇고 있다(유엔 국제설탕기구 연감).





설탕이 안 든 음료는 있는가?: 한국에는 무설탕 음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소비자보호원(소보원)의 생각이다. 3년 전 소보원은 국내에서 시판되는 음료수 제품 40개의 당분 함량과 열량을 비교했다. 결과는 좀 당혹스러웠다. 무가당 음료에도 가당 음료에 버금가는 당분이 들어 있거나, 오히려 더 많았던 것이다. 당시 소보원의 결론은 이러했다. ‘재료 자체에 당이 들어 있고, 맛을 좋게 하기 위해 당을 넣기 때문에 완전한 무가당 음료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과즙 음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무설탕·무가당 음료는 가당 음료보다 당이 적으므로 마실 때 비교적 신경을 덜 써도 된다. 하지만 성인병 환자는 피하는 것이 좋다.’



식품의약안전청 박혜경 연구원(영양과)은 국내에는 어린이 식품에만 ‘당류는 전체 열량의 20%를 넘지 않도록 한다. 또 당류 가운데 설탕의 비율이 50%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기준치가 있을 뿐, 어른들이 마시는 음료나 식품에는 기준치가 없다고 말했다. 단것을 덜 먹으려면 꼼꼼히 식품을 골라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설탕 끊기는 가능한가?: 태어나서부터 먹어오던 음식을 끊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노력하면 즐겁게 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혼자 사는 사람은 한 번에 끊는 것이 유리하다. 방법은 간단하다. 설탕이 든 식품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이다.



장을 볼 때 설탕이 들어 있지 않은 식품을 고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는 사람의 경우에는, 설탕 대신 꿀을 넣은 제품이 있는지 알아본다. 일단 꿀을 넣은 제품 맛에 익숙해지면 설탕 먹는 양을 줄이며 점차 끊어버린다. 설탕과 크림을 듬뿍 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아예 녹차나 물을 이용한다.



설탕을 끊을 때 또 하나 실천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다. 육류를 끊는 것이다. 남성적이고 양(陽)의 속성을 가진 육류를 먹으면 반대 성질의 것, 즉 매우 달콤하고 여성적이며 음(陰)적인 음식이 먹고 싶어진다. 육류 대신 생선이나 닭고기를 먹으면 식후에 단 것을 먹고자 하는 욕구가 줄어든다.
정 단것을 끊을 수 없다면 비타민류가 풍부하게 들어 있는 밀 배아나 현미 배아, 생야채 등을 가까이 두고 섭취한다. 쌀과 보리의 비율이 7 대 3 정도인 보리밥도 괜찮다.



박용우 교수(성균관대·가정의학과)는 우리 몸에 필요한 당은 곡류나 채소에 든 양으로도 얼마든지 보충되므로 가급적 설탕이 든 음식은 안 먹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시은한의원 이지연 원장은 단맛의 유혹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는 심정으로 당을 끊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 일은 술꾼이 술 끊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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