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간 유전자 상업화는 죄악”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2.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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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게놈 프로젝트’ 영국 연구진 이끈 존 설스턴 박사 인터뷰
다섯 나라가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영국 연구진을 이끌었던 존 설스턴 박사(60)가 한국을 찾았다. 그는 1998년 세계 최초로 다세포생물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한 유전자 분석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인간 유전자는 인류의 공동 유산이므로 연구 결과는 인류 전체의 행복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으로 안다.


그렇다. 과학의 결과물은 만인의 것이며, 인류 전체의 행복을 위해 써야 한다.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했다고 해서 결과물을 특정한 사람이 독점해서는 안된다. 특히 인간 유전자 연구는 모두를 위해 써야 한다. 인간 유전자 지도 초안을 공개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공학 연구가 발달하면서 점점 상업적으로 이용되고 있지 않은가?


맞는 말이다. 특허제도의 비호 아래 연구 결과가 소수의 것으로 전락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이 크다. 특히 인간 유전자 정보는 특허 대상이 아닌데도 미국이 앞장서서 인간 유전자에게까지 특허권을 주고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유럽연합이나 다른 나라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소수의 부자들만을 위한 연구만 활성화된다.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데, 부자들의 질병인 비만이나 우울증 치료법만 연구하는 식이다.


이미 대세인데, 바꿀 방법이 있는가?


많은 나라가 협력해 미국이나 특정 기업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1998년 5개국이 인간 게놈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미국은 프로젝트를 포기하려 했다. 인간 유전자 지도를 만들어 팔려 했던 한 생명공학 회사가 의회 등에 로비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이 연구 투자비를 늘리며 적극 나서자 미국은 어쩔 수 없이 따라왔다. 생명공학이 지나치게 상업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비정부기구의 역할이 중요하다. 비정부기구가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곳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미국의 특허제도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노력한 과학자나 기업에게도 이익이 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물론이다. 그래서 특허제도가 중요하다. 특허권은 연구를 장려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가급적이면 상품으로 개발된 것으로 범위를 축소해서 특허권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과학자나 기업의 배타적인 권리만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포괄적인 것까지 특허권을 준다.


생명공학 연구는 돈과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하므로 한국처럼 돈이 많지 않은 나라는 소외될 수도 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때처럼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연구에 참여하면 된다. 또 인간 유전자 지도처럼 포괄적인 정보만 공개되면 작은 연구실에서도 창의적인 연구가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 나는 과학자들이 기업에서 연구비를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업의 돈을 받아 연구하게 되면 그 기업의 이익을 위한 연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사람들은 점점 그 과학자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영국에는 웰컴트러스트라는 의학 연구 지원 자선단체가 있어서 과학자들이 비즈니스와 무관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 연구도 여기서 지원했기 때문에 공개할 수 있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미국 친구들은 ‘너는 왜 현실 세계에 살지 않느냐’며 빨리 현실로 돌아오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나는 ‘네 현실이 아닐 뿐 내게는 현실이다’라고 맞받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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