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체질 감별은 믿거나 말거나인가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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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하는 곳마다 결과 달라…사상의학 체계화 아득
기자는 2년 전 서울 강남에 있는 한의원에서 체질 감별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젊은 한의사는 안색과 체형 등을 살핀 뒤 “소음인 같다”라고 판정했다. “그렇게 쉽게 알 수 있느냐?”라고 묻자, 그는 체질 감별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100% 자신할 수는 없다고 고백했다.





최근 텔레비전에서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가 방영되는 것을 계기로 사상의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아직 체질 감별 수준은 미흡해 보인다. 직접 전문가를 만나 체질 감별을 받아보기로 했다. 감별의 정확성과 사상의학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우선, 사상의학 관련 서적을 통해 내 체질을 감별했다. 대형 서점에 들렀더니 <태양인 이제마> 여파인지 사상의학 관련 서적들이 진열대 앞에 나와 있었다. 판매원은 요즘 체질 관련 책이 많이 출간되고, 책도 잘 팔린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비교적 쉬워 보이는 두 권을 골랐다. 그 책들에 따르면, 사상의학은 이제마(1837∼1900년)가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을 통해 발표한 체질론이다. 그는 사람들이 가진 장기의 대소(大小;크기가 아니라 기능의 활발함과 약함을 뜻함)를 파악하고,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면모를 검토해 사람의 체질을 태양인·태음인·소양인·소음인으로 나누었다.


이제마의 예언은 빗나갔다


네 가지 체질의 장기 크기를 비교해보면 태양인은 폐(肺)가 크고 간(肝)이 작으며, 태음인은 폐가 작고 간이 크다. 그리고 소양인은 비(脾·위장, 췌장)가 크고 신(腎)이 작으며, 소음인은 비가 작고 신이 크다. 이제마는 이 네 장기의 크기에 따라 사람의 체질·성격·기질이 달라지고, 특정한 병에 대한 저항력 등이 결정된다고 보았다(86~87쪽 딸린 기사 참조).


하지만 책만으로는 체질을 감별해낼 수가 없었다. 이렇게 보면 소음인 같았고, 저렇게 보면 소양인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웠던 것은 이 체질에 좋은 음식이 저 체질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체질 전문가를 찾아나섰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다섯 전문가를 만났지만 체질을 확인하는 데 실패했다. 다섯 사람이 저마다 다르게 진단해 내 체질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이제마가 <동의수세보원> ‘변증론’ 편에서 ‘내가 죽고 100년 후에는 사람들이 이 의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이 의학이 널리 퍼져 집집마다 개개인이 직접 자기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되어 모든 사람이 건강을 누릴 것이다’라고 한 말은 실현되지 못했다. 그의 말이 실현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더 지나야 할 것 같았다.


서울 방배본동에 있는 ○○한방병원 배 아무개 원장은 우선 설문지부터 내밀었다. ‘땀을 많이 흘리는가, 소화는 잘되는 편인가’ 같은 질문에 답을 쓰고 내밀자, 배원장은 진찰대 위에 누우라고 말했다. 배와 가슴께를 살핀 그는 오른쪽 발과 손에 체질침 10여 대를 순식간에 놓았다. 그리고 체질 감별 시약을 한 봉지 내밀며 뜨거운 물에 타서 먹고 30분 뒤에 오라고 말했다. 잠시 뒤 그는 속이 어떠냐고 물었다. 약한 트림이 몇 번 나왔을 뿐 별 느낌이 없다고 대꾸하자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체질침을 맞고 시약을 한 봉지 더 먹어도 반응이 없었다. 배원장은 내 왼쪽 손목에 손가락 세 개를 대고 찬찬히 맥을 짚었다. 그런 다음 또다시 시약 한 봉지를 내밀었다. 송일병 교수(경희대·한의학)에 따르면, 체질 감별은 보통 일곱 가지를 살펴 결정한다. 체형·성격과 인상·병적 증세·맥·체질약 반응·체질침 치료 반응·근력이 그것이다.

배원장은 그 가운데 약진(藥診)을 선호하는 듯했다. “약진은 거짓말 안한다. 70% 이상 정확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고심 끝에 배원장이 판정을 내렸다. “소음인인 줄 알았는데, 소양인 같다.” 그가 ‘나에게 맞는 음식과 섭생법’이라는 쪽지를 건넸다. 거기에는 파·당근·도라지·더덕·미역·사과같이 내가 좋아하는 식품이 해로운 음식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체질건강연구원장 백 아무개씨는 사상의학에 음양오행을 접목해 체질을 감별해냈다. 그는 얼굴을 관찰하고 생년월일시를 묻더니 주역 속에서 금방 해답을 찾아냈다. “전형적인 소양인이다.” 명쾌했다. 그러나 그만큼 믿기 어려웠다. 그는 “이 체질은 간과 콩팥이 약하고, 체내에 열이 많다. 쉽게 피로하며, 타인을 많이 의식한다. 외관상 차분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다혈질이다”라는 해석으로 의구심을 풀어주었다. 신기하게도 그 해석이 내 체질이나 행동과 맞아떨어졌다.


자연히 계속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남자는 감성적이다. 그러나 행동은 이성적으로 하려고 하는 경향이 많다. 겉과 속이 똑같아 꾸며서 아부하는 일을 못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소양인은 허리와 하체가 약하므로 속보(速步) 운동을 많이 하고, 해산물·마·검정깨·김·결명자를 자주 먹으라고 권했다. 이제 내 체질은 소양인인 듯싶었다.


그런데 서울 사당동의 ××한의원에서 내 체질은 ‘소음인’으로 뒤집히고 말았다. 그곳에서는 8,9년 전에 유행한 오링 테스트(식품과 체질의 상관 관계를 알아보는 실험)로 체질을 감별했는데, 감별 과정은 치밀했다. 김 아무개 원장은 내게 구리 그릇에 연결된 구리봉을 왼손에 쥐라고 말했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내 오른손 팔목을 쥐라고 시켰다. 김원장은 내 손가락 힘을 믿을 수 없어 간접 테스트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의사들은 체질 감별 못한다?


그는 자기가 개발한 물질이 담긴 작은 통 10개를 번갈아 구리 그릇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간호사가 엄지 검지로 만든 오링(동그란 모양)을 힘껏 잡아당겼다. 이어서 곡물과 한약 재료가 든 통을 교대로 넣으며 똑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구리 그릇 옆에 놓인 병들을 살피던 그가 신중하게 “소음인이다”라고 말했다. 기연가미연가하는 눈길을 보이자 그는 똑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그리고 말했다. “똑같다. 소음인이다.”


북한에서 들여왔다는 체질 분석기 ‘금빛말’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지문 인식을 통해 체질을 분석하는 금빛말은 겉보기에 무척 단순해 보였다. 지난해 이 기기를 북한에서 들여온 ▽▽한의원 이 아무개 원장은 “기능이 아주 간단하다. 지문을 갖다대면 같은 유형을 찾아 체질을 감별한다”라고 소개했다.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열 손가락 지문을 번갈아 인식시키자, 1분도 안되어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다시 소양인이었다.


이원장은 금빛말의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느냐고 묻자 “그냥 북한에서 이런 기기를 만들어낼 정도로 사상 체질에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한의사들이 체질 감별에 좀더 신중한 자세를 보였으면 한다고 했다. 체질 감별을 잘못하는 사례가 많은데, 그것이 한의학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난 전문가는 ◇◇체질연구원 이 아무개 원장이었다. 그에게 다른 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자 그는 “대부분의 한의사들은 체질 감별을 못한다”라고 단언했다. 역사가 100년밖에 안되어 체계화할 기회가 없었고, 아무도 가르치거나 배우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거기에다 대학에 사상의학 과목이 생긴 지도 10년 안팎밖에 안되어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그는 6년 동안 사상의학을 연구해 최근 체질을 6백40 유형으로 분류했다).


그의 감별법은 특이했다. 손으로 온몸 구석구석을 만지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명쾌하게 판정했다. 그 결과 내 체질은 ‘태양인’으로 판명되었다. 폐·위완·혀·귀·두뇌·피부 등이 발달해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좀더 깊이 체질을 진단한다며 그가 내 팔다리에 체질침을 대여섯 대 꽂았다. 잠시 뒤 눈꺼풀이 가벼워지고 피로가 풀리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별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대답하자 그는 왼쪽 팔다리와 발에 다시 침을 꽂았다. 그래도 변화가 오지 않았다. 그러기를 10여 차례, 드디어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더니 그가 최종 판정을 내렸다. 소양성태양인(한성태양인). 스티븐 호킹·장동건·이봉주·조수미 등과 같은 체질이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육류와 술을 되도록 먹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곳을 나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어느 전문가의 말을 믿어야 할지 판단할 수가 없었다. 이 사람 말을 따르면 좋다는 음식이 저 사람 말을 따르면 나쁜 음식이었다. 이런 고민을 가진 사람은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비슷한 고민을 하며, 체질 치료나 처방에 불신을 보이고 있었다.


현재 한국의 한의사는 모두 만여 명. 그 가운데 몇 명이 사상의학을 치료에 활용하고 있는지는 아직 분명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거의 모든 한의사가 전적으로 또 부분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리라 추측될 뿐이다. 문제는 감별의 정확성과 객관화이다.

이의주 교수(경희한방병원)에 따르면, 경희대 한방병원이 객관화를 꾀하기 위해 디지털 계측기를 이용해 안면 형상과 체형을 분석해 수치화·계량화하고 있다. 만약 이 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모든 한국인은 혈액형처럼 자기의 고유 체질을 파악할 수 있고, 그것을 치료와 생활에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 시기를 가늠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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