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리그 정상이 별거냐”
  • 이태일 (<중앙일보> 야구 전문기자) ()
  • 승인 2002.09.2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병현, 최고 소방수 자리 굳혀…막강 구질·자신감·승부 근성 3박자 갖춰
김병현 선수(23·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활약이 눈부시다. 비록 최근 상승세가 약간 주춤거리고 있지만, 메이저 리그의 초특급 소방수들과 비교해 하나도 뒤질 것이 없다. 그같은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그는 이미 광주 제일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잠재력이 있었다.





1995년 7월,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코드라는 곳에서 제15회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야구 강국 미국·쿠바·타이완이 모두 참가했다. 예선을 거쳐 상위 네 팀이 결승 토너먼트를 벌이는 방식이었는데, 4강 토너먼트부터는 메이저 리그의 유서 깊은 야구장 팬웨이파크(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어 있었다.


당시 한국 대표팀은 고교 3년생 우수 선수들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김선우(휘문고·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에이스였고 서재응(광주일고·뉴욕 메츠)이 제2 선발이었다. 한국 팀은 예선 초반 김선우가 쿠바를 꺾는 등 전승을 거두며 잘 나갔다. 그러다 예선 후반에 타이완을 만났다. 그 경기는 중요했다. 4강에서 쿠바를 다시 만나느냐 아니면 피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이었다.


당시 대표팀 김대권 감독은 밤 늦게까지 선발 투수를 놓고 고민했다. 그리고 경기 당일이 되어서야 선발 투수를 결정했다. 의외의 카드가 나왔다. 넘버2 서재응이 아니었다. 당시 대표팀의 유일한 2학년 선수이자 선수단에서 키가 제일 작았던 김병현이었다.


김병현은 기가 막히게 던졌다. 당시 쿠바와 미국의 유망주들을 탐색하기 위해 현장에 모였던 메이저 리그 스카우트들은 “도대체 저런 폼에서 어떻게 저런 빠른 공이 나오느냐?”라며 감탄했다.결국 김병현은 타이완에 완봉승을 거두었다. 김병현의 호투로 상승세를 탄 한국은 이튿날 서재응을 내세워 홈팀 미국마저 꺾고 예선 전승으로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메이저 리그 구장 팬웨이파크로 향했다.


한국 대표팀의 비밀 병기로 떠오른 김병현은 4강전에서 다시 타이완을 만나 선발로 등판했지만 야수들의 에러가 겹치면서 아쉽게도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 날 팬웨이파크에 모인 메이저 리그 팬들과 스카우트들은 김병현의 당찬 투구 내용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때가 김병현이 자신의 이름 석자를 미국 무대에 처음 알린 순간이다.





공의 위력은 구원 투수 랭킹 2위


그로부터 7년이 흐른 2002년 시즌, 김병현은 당당히 월드 시리즈 2연패를 노리는 강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주전 마무리로 활약하고 있다. 1999년 미국에 건너간 지 4년 만이다. 김병현은 지난해 월드 시리즈에서 맞은 홈런 두 방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미국의 언론들이 그의 ‘재기’를 의심하며 불안한 예상을 내놓았으나, 그는 오히려 새로운 투구 폼과 다양한 구질, 넘치는 자신감을 앞세워 주위의 불안감을 씻어 버렸다.


김병현은 9월11일 현재 8승2패 33세이브, 방어율 2.26으로 내셔널 리그 세이브 부문 8위에 올라 있다. 1위는 존 스몰츠(애틀랜타 브레이브스·50세이브), 2위는 에릭 가니에(LA 다저스·48세이브)다. 그러나 김병현은 성적이 아니고 위력으로만 평가하는 CBS 스포츠 라인의 ‘플레이어 랭킹’에는 가니에에 이어 당당히 2위에 올라 있다. 시즌 중에는 1위로 올라선 적도 있다.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김병현을 처음 만나면 수줍은 소녀 같은 인상과 왜소한 체격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그의 벗은 몸을 보면 허벅지 근육에 놀라고, 고르게 발달된 상체 근육에 또 놀란다. 그리고 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뚜렷한 야구관과 승부 근성, 그리고 자신감에 ‘아!’하고 감탄하게 된다.


자신만의 세계가 확실하고 자신이 하는 일의 중요성을 똑똑히 알고 있으며, 그 일을 남보다 뛰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자기 관리를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선수가 바로 김병현이다. 그리고 그런 요소들은 만 스물세 살인 한국인 청년 김병현을 지구촌 최고 야구 무대인 메이저 리그의 정상에 당당히 올려놓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