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국민은행장
  • 장영희 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2.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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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은행 이미지 씻어내겠다”
은행장이 중소기업에 찾아가 허리를 굽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가 누구인가. 자산 2백조원인, 한국에서 가장 덩지 큰 은행의 수장인 데다가 한국 최고경영자(CEO)의 대표 주자로 한창 ‘잘 나가는’ 인물 아닌가. 지난 9월12일 오후 크리닝 클로즈 수출 업체 (주)다미상사를 찾은 김정태 행장에게 이 회사 이기철 사장은 ‘그 바쁜 분이 설마 여기까지 오시겠냐’며 반신반의했다고 털어놓았다. 김행장은 이 날 하루에만도 대고무역상사·북부운수·두승산업·이브자리 등 다섯 개 중소기업체를 방문해 ‘거래 기업이 잘되어야 은행도 잘된다’는 공동운명체론을 역설했다. 김행장의 이 날 일정은 강행군 그 자체였다. 오전 7시30분 조찬 모임부터 시작해 직원 교육 및 회식까지 그의 일과는 밤 10시를 훌쩍 넘겼다.





일정이 너무 빡빡한 게 아닌가? 특별한 건강 관리 비결이 있나?


잘 먹는 것뿐 특별한 비결이 있겠는가. 우량 중소기업을 방문해 거래선을 트는 일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은행장을 해보니 별거 아니기는 한데, 그래도 명함 값이 있더라. 지점장들도 행장이 나서면 일이 좀 쉬워진다고 한다.


주로 어떤 점을 홍보하는가?


거래 기업이 망하면 은행도 망한다, 본업(사업)만 잘하면 돈은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말한다. 국민은행은 아예 대출 규정을 담보가 아닌 신용으로 바꾸었다고 설명한다. 고객 만나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하는데 한사코 찾아오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아 방해가 된다. 행장을 찾아오면 될 일도 안된다며, 지점장이나 부행장을 만나라고 돌려보낸다. 권한을 이양한 대신 책임도 묻는데 행장 말이라고 듣겠는가.


교육 때문에 직원들에게 야근을 시킨 셈인데 직원 교육을 직접 해야 하는가?


<삼국지> 서문에 보면 흘러가는 강물 속에 있으면 강이 어디로 흘러가는 줄 모른다. 한국 금융산업은 그야말로 변화의 격랑에 휩싸여 있지 않은가. 행장이 무슨 생각을 하며 은행을 끌어가고 있는지 알리려고 애쓴다(9월12일 서울시립대에서 강의를 마친 그는 망우동 기업금융 지점에서 또 마이크를 잡았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약장수’를 두번씩이나 했다).


국민·주택 은행이 통합된 지 10개월이 넘었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평가되는데.


지금까지는 두 은행 시스템이 사실상 유지되었다. 은행 이름과 지점을 그대로 두고 영업하지 않았나. 본점과 지역본부만 인력을 섞어 놓았을 뿐 아직 지점(1천2백여개) 단위는 손도 못대었다. 11월1일 출범 한돌을 맞을 때는 새로운 CI(기업이미지 통일 작업)에 의해 그야말로 한 은행으로 탈바꿈한다. 10월 한달 동안 전국의 은행 간판을 모두 바꾼다. 이 모든 통합 작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9월23일로 예고된 전산망(IT) 통합이다.


다른 은행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데 정말 가공할 위력이 있는 것인가?


IT 통합은 진짜 한 은행이 되는 실질적 통합을 의미한다. 이제부터 무슨 일을 하든 한 은행으로서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2만6천여 국민은행 직원들에게 오직 한가지 목표는 전산망 통합이다. 7월부터 주5일이 아니라 ‘주7일 근무’를 해왔다. 외부 용역진의 평가와 모의 실험 결과 시스템의 안정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직원들의 업무 인지도다. 새 전산 시스템에 익숙해지도록 열심히 교육하고 있다. 전산망 통합에 성공해야 이른바 합병에 따른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내부에서는 그 효과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한다.




전산망 통합보다 두 은행 직원들이 화학적 융합을 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 아닌가?


전산망 통합만으로도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선진국의 다른 합병 은행 사례를 보면 전산망 통합에 2∼3년이 걸렸다. 우리는 10개월 만에 해치우는 것이다. 인적 융합은 물론 대단히 중요하다. 결국 일은 사람이 하니까. 우선 인사 기록 카드를 없애 출신 은행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 실력이라는 인사 원칙을 세우고 지점 단위까지 인적 융합을 꾀할 것이다. 통합 국민은행 사람들은 일류대 출신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강력한 추진력을 가졌다. 이런 동질성은 비전과 목표를 제대로 설정해주면 엄청난 위력을 낼 것이라고 본다.


통합 이후 감원의 칼바람이 몰아칠 것이라고 보는데.


서울은 사람이 모자란다. 지방 점포들은 상대적으로 넘치고. 모자랄지 남을지는 재봐야 알지만, 인력 재배치를 통해 상당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공연히 평지풍파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다만 직원들에게 노조가 아닌 실력만이 자기의 신분을 보장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북한도 성과급제를 한다는데 기계적 평등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잘하는 직원들에게는 더 많은 성과급을 줄 것이라고 노조에 통고했다. 이제 단순한 일들은 다 기계가 한다. 앞으로 은행원은 자산 관리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고객의 금융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상담원이어야 한다.


합병 한돌을 맞이해 진짜 공격적 영업을 펼칠 것이라며 다른 은행들이 전전긍긍하는 기색이다.


그것은 우리보다 앞으로 금융권 지형이 어떻게 될까에 달려 있다고 본다. 지금 20개 은행이 모두 공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생존 전략은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차원이면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그 결과 우리와 엇비슷한 덩지의 은행이 생긴다면) 우리도 공격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시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국에는 이른바 니치 마켓(틈새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전국 규모로 장사해야 한다면 소규모 은행들은 어렵지 않겠는가.


국민은행이 한미은행과 대우증권을 인수하려고 물밑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데.


전부 소설 쓰더라. 한미는 신한과 협상 중인데 우리가 끼어든다는 것은 상도의상 있을 수 없다. 대우증권 건은 그 쪽 사람들이 희망한다고 들었다. 합병이라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천지개벽할 정도로 바꾸는 것이다.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 합병에 대한 기본 입장을 말하라고 한다면 ‘열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단계에서 추진하는 일은 전혀 없다. 사석에서도 얘기한 바 없다.


합병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국민·주택 은행은 큰 놈이 작은 놈을 먹는 흡수 합병이 아니라 대등한 합병이어서 더욱 어려웠다. ‘빵빵한’ 노조도 두 개가 있지 않았나. 그렇다고 두 은행을 그저 절충하면 답이 안나온다. 창조적 변용이 필요했다.




통합 국민은행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우리의 지향점은 한마디로 ‘모든 금융상품을 공급하는 회사’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은행을 뛰어넘는 은행이다. 국제화에도 눈길을 돌릴 것이다. 그러나 전세계를 상대할 수는 없다(국민은행은 한국 최대의 은행이지만, 자산 규모로 볼 때 세계 60위권 은행에 그친다). 5∼6년 후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다. 현재 국민은행의 최대 고민이자 가장 중요한 마케팅 전략은 서민 금융기관이라는 이미지를 탈색하는 것이다.


큰손 고객들만을 상대하겠다는 것인가?


고객을 잘게 쪼개는 세분화 전략을 쓰는데, 우선 기업과 개인으로 나눈다. 기업 고객의 주대상은 우량 중소기업이다. 이들을 위해 기업금융 지점 2백22개를 따로 만들었다. 개인 고객에 대해서는 부유층·중산층·서민으로 나눠 각기 다른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부유층을 겨냥한 프라이빗 뱅킹(PB)에도 뛰어든다. 얼마 전 조사해 보니까 절망적이었다. ‘강남의 부자 사모님’을 대상으로 앞으로 국민은행을 이용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10명 중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시장 옆에는 국민이, 아파트 옆에는 주택’이 있었던 것이 서민 금융기관의 이미지를 만들어 놓았다. 부유층 대상 점포에는 시설을 고급스럽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자산 관리 전문가를 집중 배치할 것이다.


안팎의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더라.


밖에서 하는 말이야 신경쓸 것 없고. 직원들을 고생시켰다. 야근을 밥먹듯 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정신 없이 달려온 직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행장이 너무 몰아친다고 생각하는 직원들도 많을 것이다. 행장으로 있을 2004년까지 내 역할은 통합 은행이 제대로 굴러가게 기반을 닦는 일로 보고 있다(한 임원은 그를 난세의 효웅으로 비유하며 ‘김정태식 리더십’은 지금과 같은 변혁기에 적합하다고 평했다. 은행권 일각에서는 은행의 공공성을 도외시한 채 기업 마인드로만 밀어붙인다고 비난한다).


큰 장사꾼이라는 수식이 마음에 드는가?


‘큰’이야 모르겠고. 나는 장사꾼이다. 취임 일성도 장사꾼이 되자였다.


스톡옵션을 행사했는데 어떻게 쓸 작정인가?


1998년 주택은행장 시절 월급 1원 대신 받은 40만주 가운데 20만주를 지난 8월 행사했다(통합은행장이 되면서 그는 다시 70만주의 스톡옵션을 확보했다). 배아픈 사람들은 자격 시비를 거는 모양이지만 받을 만하다고 자부한다. 1백11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세금을 뺀 66억6천7백만원 가운데 10억원을 수재의연금으로 내고 나머지를 은행에 예치해 두었다. 진정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은행 네트워크를 통해 알아보는 중이다.


혹여 가족들이 반대하지 않았나?


우리 가족 중에 아무도 욕심내는 사람 없었다. 내 아내는 평소에 1억원도 못 만져본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66억원은 체감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농사꾼의 자식도 열심히 일하면 큰 돈을 벌어 좋은 일에 쓸 수 있다는 것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주고픈 내 생각에 선뜩 동의해 주었다.



김행장을 20년 이상 모신 박해열 기사는 그의 이미지를 ‘시골 이웃집 아저씨’에 비유했다. 검박하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러나 일에는 날카롭고 무서워 직원들이 벌벌 떠는 광경을 여러 차례 보았다고 귀띔했다. 김행장은 지은 지 20년이 넘은 서울 동부이촌동의 45평형 아파트에 산다. 그는 최고급 차인 배기량 4500cc 에쿠스를 타지만 그가 집에서 굴리는 차는 12년도 넘은 소나타.

17년째 주말마다 경기도 화성군의 농장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김행장은 2004년 은퇴하면 농사꾼으로 돌아갈 작정이라고 말했다. 주주들이 연임 간청을 해도 그만두겠느냐고 떠보았더니 그는 단호했다. 직원들과 회식 자리에서 소주 한잔에 벌개진 그는 “35년 동안 일했다. 식구들도 더 이상 사회 활동하는 것을 반대한다. 더 이상 미련이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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