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부는 날이면 전기가 ‘짜릿짜릿’
  • 안성·천안 오윤현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2.12.0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풍력, 대안 에너지로 각광…한국도 대단지 건설 계획
농부들에게 바람은 늘 귀찮은 손님이다. 변덕스러움과 그로 인한 피해 때문이다. 하지만 서양란을 재배하는 이광렬씨(41·경기도 안성시)에게는 다르다. 갈바람(서남풍)이든 마파람(남풍)이든 그에게 바람은 반가운 손님이다. 지난 여름 태풍이 급습했을 때에도 그는 태풍이 동반한 노대바람(강풍)을 은근히 반겼다. 요즘도 그는 풍력계를 들고 마당을 서성거린다. 이는 농부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농부라면 바람을 막고 피해야 하건만, 웬일일까.





1년 전에는 그도 의당 바람이 싫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환경운동연합의 권유로 집앞에 1㎾짜리 풍력발전기(풍력기)를 설치하고는 완전히 사람이 바뀌었다. “풍력기 덕이다. 비록 풍력기로 외등 두세 개 켤 정도의 전력밖에 만들지 못하지만, 요즘 바람의 고마움을 절감하고 있다”라고 그는 말했다. 풍력기로 인해 바뀐 것은 바람에 대한 인식뿐만이 아니다. 전기가 귀하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는 전기 1㎾를 생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당연히 이제 그의 집에 있는 전자 제품은 모두 절전형으로 바뀌었다.



평균 풍속 초당 5m면 어디든 설치 가능



바람 부는 날이 좋은 사람은 이씨뿐만이 아니다. 1997년 건설된 북제주군 행원리의 풍력 단지를 관리하는 제주도청 부정환씨도 매일매일 바람을 간절히 기다린다. 현재 행원리에는 풍력기가 600㎾급 2기, 660㎾급 2기, 750㎾급 2기 등 모두 12기 있는데, 부씨는 그것들을 관리하고 있다. 부씨에 따르면, 지난 1년간 행원리의 풍력기들은 전력을 약 9천㎿h(1㎿=1000㎾) 생산해 9억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그는 “바람이 많이 불면 불수록 그만큼 수익이 늘어난다. 내년에는 15억원 정도 수익이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충남 천안의 유니슨산업 직원들도 앞으로 뒷바람(북풍)이든 마칼바람(북서풍)이든, 바람 소리만 들리면 화색이 돌 것 같다. 강원풍력발전이라는 합작 회사를 만든 뒤, 대관령 목장 내에 대단위 풍력 발전 단지를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2004년 2천㎾급(날개 지름 80m, 탑 높이 60m) 덴마크제 대형 풍력기 49기가 돌아가면 풍력으로 연간 전력을 약 20만㎿h 생산하게 된다. 이는 4만5천 가구가 쓸 수 있는 양으로, 소양댐 전력 생산량의 절반쯤 되는 양이다.





풍력기를 이용한 전력 생산은 몇 년 안에 눈에 띄게 늘어날 전망이다. 풍력기를 설치할 만한 곳이 많고, 또 실제 풍력기 설치가 줄을 잇고 있다. 유니슨산업 기술연구소 김두훈 소장은 평균 풍속이 초당 5m 정도만 되면 풍력기를 설치할 수 있다고 밝힌 뒤 “울릉도·포항·제주도·서해안과 일부 산악 지역이 그런 곳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이미 제주 서북부 해안과 경북 영덕에도 대단위 풍력 단지가 들어설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풍력이 각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지하 에너지 자원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는 탓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꽤 오래 전부터 ‘화석 연료는 필연적으로 고갈된다’고 경고해 왔다. 세계의 에너지 연구소들도 석유·석탄·천연가스 가채 연수를 각각 41년·1백70년·65년으로 내다보고 있다. 보수적인 산업계나 일부 국가조차 이제는 2050년께에 이르면 접근 가능한 지역의 석유가 바닥 나리라고 전망한다. 상황이 이러니 기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대안 에너지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댐처럼 자연을 수몰시켜 환경을 파괴하지 않기 때문이다. 온실 가스 주범인 이산화탄소·이산화황·질소산화물도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 시간당 1㎾ 전력을 생산할 때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등의 양이 갈탄·석탄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양의 2%에 불과하다. 깨끗하다고 소문 난 원자력과 비교해도 그 절반밖에 안된다. 설비 단가도 아주 싸다. 태양광 발전과 연료 전지 같은 대안 에너지는 각각 ㎾당 6천·3천 달러가 들지만 풍력은 1천 달러도 안 든다. 공간을 적게 차지한다는 이점도 있다. 대관령에 설치되는 2천㎾급 풍력기가 기껏해야 가로 12m×세로 12m의 공간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이런 장점 때문에 이미 서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풍력 발전에 공을 들여왔다. 그린피스와 유럽풍력협회가 공동 발행하는 <풍력 12>에 따르면, 2002년 현재 전세계에 설치된 풍력 발전기는 약 5만5천기이다. 설비 용량은 2만5천㎿이며, 실제 전력 생산량은 55TWh(1T W=1000㎿)이다. 이는 약 1천4백만 가구, 약 3천5백만 명이 이용할 수 있는 양이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다른 어떤 대안 에너지보다 빠르게 풍력 발전이 성장하고 있다. 월드리서치연구소가 펴낸 <바이탈 사인 2002>에 따르면, 2001년에만 37%가 증가했다(98쪽 도표 참조).






전력 인프라 미비한 개도국에 더 유리해



독일·스페인·덴마크 등은 풍력 선진국으로 손꼽힌다. 세 나라는 강력한 법으로 풍력을 발전시킨 결과, 전세계 풍력 발전의 7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지난해에만 설비 용량을 8천7백㎿로 끌어올려 세계 리더의 위치를 확실히 다졌다. 독일은 전체 에너지 가운데 3.5%에 불과한 풍력 비율을 2025년까지 최소 25%로까지 끌어올릴 야심을 갖고 있다(한국은 2001년 현재 0.08%. 환경운동연합). 덴마크도 2030년까지 전체 전력 수요의 50%를 풍력 발전으로 메울 예정이며, 오스트리아는 이미 에너지 수요의 22%를 대안 에너지로 교체했다.



언뜻 보면 풍력이 선진국의 전유물처럼 보이지만 사실과 다르다. 전력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개도국에서 오히려 더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인도가 좋은 예이다. 2001년 3월 현재, 인도의 설비 용량은 1천3백49㎿로 세계 5위 수준이다. 중국도 최근 중대형 풍력기 보급을 확대하면서 2002년 6월 현재 4백㎿가 넘는 설비 용량을 갖추었다. 브라질도 4백㎿ 설비 용량을 갖춘 풍력 프로젝트를 시행 중이다.



유럽풍력협회에 따르면, 지구상에 이용 가능한 풍력 자원은 연간 약 5만3천TWh이다. 이는 지상 10m 높이에서 평균 풍속 5.5m/초가 넘는 지역의 면적을 파악해 산출한 수치로, 현재 세계 전체 인구가 쓰는 전력량의 두 배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한국도 그에 못지 않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 에너지기술연구소가 추정한 결과 국내 잠재 풍력 발전량은 연간 약 6억6천만㎿h나 된다. 이는 현재 우리가 쓰는 전체 전력 소비량의 세 배나 되는 엄청난 양이다. 물론 그만큼 생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에너지기술연구소 김두훈 박사는 “설비 용량이 2천㎿만 돼도 에너지 수급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아직 한국의 풍력 발전은 걸음마 수준이다. 더구나 이 땅에는 20세기를 빛낸 석유·천연가스·우라늄 같은 에너지원도 없다. 풍력 같은 대안 에너지를 개발하지 않으면 미래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새겨둘 만한 충고가 있다. 이필렬 교수(방송통신대·교양과정부)는 <석유 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녹색평론사)에서 석유에 종속되면 “국제 평화를 저해하고, 결국 전쟁까지 유발함으로써 정치·사회·경제적 안정을 저해한다”라고 말했다. 현재처럼 흥청망청 쓰다가는 언제 어떤 꼴을 볼지 모른다는 엄중한 경고이고, 풍력 같은 대안 에너지 개발을 서두르라는 충고이다.



내년 초 개봉을 앞둔 SF 애니메이션 대작 <원더풀 데이스>에는 미래 도시 ‘에코반’이 나온다. 2142년 환경 오염과 핵전쟁으로 지구가 파괴되자 살아 남은 인류는 시실 섬으로 피신한다. 그리고 그곳에 유기체(생활력을 가진 생명체) 도시 에코반을 세운다. 하지만 이미 태양은 오염된 구름에 가리고, 지하 에너지는 고갈된 상태. 도시 설계자들은 고민 끝에 지구를 멸망시킨 오염원(방사능·매연 등)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해 내기로 한다. 이 영화의 모든 상황은 물론 가상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실이 될 수도 있다. 풍력은 어쩌면 그런 위험을 덜어줄 ‘해결사’일지 모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