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재다능’ 굴맛 꿀맛에 비하랴
  • 이영미 (문화 평론가) ()
  • 승인 2002.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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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을 지나다 트럭 행상이 있으면 물건을 곧잘 사고는 한다. 단 한 가지 품목만 가지고 오는 행상일 때만 그렇다. 식품 가게 품목을 이것저것 싣고 다니는 트럭은 일반 가게보다 별로 싸지 않지만, 짐칸에 마늘만 가득, 동태만 가득 싣고 다니는 트럭의 물건들은 품질도 괜찮고 값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겨울에 그렇게 사게 되는 품목 중에 굴이 있다.






한 상자를 들고 돈을 지불하면, 옆에서 물건을 고르던 아주머니들이 싱싱한 맛으로 먹는 굴을 저렇게 많이 사서 어쩌자는 건가 하고 걱정스러워하는 눈치이다. 하지만 별 걱정 없다. 굴은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아주 많은 데다가, 어떻게 해먹어도 맛있기 때문이다. 굴을 많이 사서 후회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일단 집에 갖고 와서, 조금은 후회한다. 일단 그 많은 굴을 다듬는 일이 매우 귀찮기 때문이다. 짠물을 채운 채 그대로 냉장고의 신선실에 보관하면 하루 이틀은 괜찮지만 그 이후엔 좀 불안하니 일부라도 일단은 다듬어서 조리해 먹어야 한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역시 가장 맛있는 굴은 날것 그대로 먹는 생굴이다. 다듬은 생굴을 잘 씻어 초고추장을 찍어 먹기도 하고, 초간장에 고추냉이를 넣어서 먹기도 한다. 혹은 소금에 무쳐 먹어도 맛있는데, 체에 받쳐 물기를 뺀 굴에 소금과 고춧가루·파·마늘·깨소금만 넣어 무치는 것이다. 어떻게 먹어도 그 신선한 바다 냄새에 달착지근한 맛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가 막힌데, 이렇게 먹는 것은 굴을 구입해서 하루 이틀 동안만 가능하다. 소금에 무친 것은 2∼3일 정도 두어도 되니 씻고 남은 굴은 일단 무쳐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그 다음에 굴로 해먹을 수 있는 요리는 굴전이다. 생굴을 먹는 데에는 비싼 자연산 굴이 좋지만, 전을 부칠 때에는 양식 굴이 좀 굵어서 덜 귀찮다. 다른 전 부치는 것과 똑같이 달걀에 푼 밀가루를 씌워 기름 두른 번철에 부친다. 고소한 기름내에서 나오는 따끈하고 달착지근한 굴 맛은 일품이다. 굴전뿐 아니라 굴튀김도 참 맛이 있는데(하도 달착지근해서 느끼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튀길 때 굴에 포함된 물기 때문에 기름이 펑펑 튀어서 손을 덴 적도 있다. 그 뒤로 튀김은 포기하고 전에 만족하는 편이다. 어떻게 하면 기름이 튀지 않는지, 나는 아직 그 노하우를 모른다.



한 상자를 샀기 때문에 그래도 굴이 남는다. 나머지 굴은 모두 국거리이다. 굴은 국을 끓이면 국물이 아주 맛있는 해물이다. 어지간한 조개들보다 달착지근한 맛이 강하다. 다른 재료가 별로 없거나 굴의 깨끗한 맛을 느끼고 싶으면, 푼 달걀에 굴을 담갔다가 끓는 물에 하나씩 떠 넣어 굴국을 끓인다. 굴을 싸고 있는 달걀이 금세 익고 굴 국물이 뽀얗게 우러나오는데, 마늘 약간과 파(쪽파가 좋다)를 조금 썰어 넣으면 완성되니, 세상 천지에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국이다.



그러고도 남은 굴은 한 주먹씩 비닐 봉지에 담아 냉동실에 넣는다. 그리고 몇 달 내내, 맛있는 국물이 필요하면 꺼내 쓴다. 쇠고기 넣은 미역국의 기름기가 싫을 때 이 굴을 넣고 끓이면 뽀얗고 시원한 미역국이 되고, 콩나물국에 넣으면 굴 비린내가 하나도 나지 않고 아주 시원한 콩나물국 국물을 맛볼 수 있다. 이래서 겨울에 사는 굴 한 상자는 결코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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