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보다 더 뜨거운 ‘연봉 싸움’
  • 오윤현 기자 (nomsisapress.comkr)
  • 승인 2003.02.0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엽·김도훈·서장훈 ‘종목별’ 연봉왕…2천4백만원 이하 선수 수두룩
운동장을 떠나 쉬고 있던 선수들이 호된 ‘경기’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연봉 협상이라는 경기에 나가 소속 구단과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기의 특징은 감독·코치·동료의 도움 없이 혼자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다른 경기처럼 반드시 승패가 따른다. 패배의 쓰라림은 운동장에서 패할 때보다 훨씬 가혹하다. 자칫하면 다음 시즌을 망칠 수도 있다. 올해 경기에서는 어떤 선수가 가장 큰 성과를 올렸는지 알아 보자.





‘연봉왕’ 경쟁이 치열한 곳은 프로 야구다. 현재 정민태(33·현대)와 이종범(33·기아)이 각각 5억원과 4억5천만원에 계약해 1, 2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상훈(32·LG)과 이승엽(27·삼성)이 호시탐탐 그 자리를 노리고 있다. 지난해 4억7천만원을 받아 프로 야구 연봉왕 자리를 차지했던 이상훈은 7승2패18세이브 방어율 1.68의 성적과, LG의 인기를 되살린 공을 내세워 정민태보다 나은 대우를 요구하고 있다.


21년 만에 팀을 코리안 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고, 시즌 네 번째 홈런왕(47개)과 타격 4관왕(홈런·타점·득점·장타율)을 차지한 이승엽(지난해 4억1천만원)은 최고 연봉을 확신한다. 삼성 구단도 최고 대우를 약속했다. 그래서 계약도 이상훈이 한 다음에 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이승엽의 연봉은 6억∼7억 원.
프로 축구에서는 지난해 김도훈(일화)이 3억5천5백만원으로 최고였다. 올해에도 성남과 연봉 4억원에 2년간 계약해 프로 축구 연봉왕 자리는 그의 차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프로 농구에서는 지난해 서장훈 선수가 서울 삼성과 4억3천만원에 계약해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프로 골프 선수 가운데에서는 최경주(33·슈페리어)가 최소 27억원의 수익을 올려 박세리를 앞섰다.





모래판에서는 골리앗 김영현(27·신창건설)과 이태현(27·현대)이 ‘연봉 천하장사’를 다투고 있다. 김선수는 1월9일 계약금 4억6천만원, 연봉 1억4천만원 등 모두 6억5백만원을 받고 신창건설에 입단했다. 동갑내기 라이벌 이태현은 최근 연봉 1억6천만원에 계약해 체면을 세웠다. 각 종목 연봉왕들의 수입은 국무총리 연봉(1억1천2백35만원, 판공비 제외)은 물론 대통령 연봉(1억4천4백68만8천원)보다도 많다.


연봉을 좀더 많이 받기 위한 선수들의 투지는 눈물겹다. 또 협상이 한 해 농사를 짓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자리인 만큼 대부분은 큰 기대감을 갖는다. 하지만 구단이 선수가 원하는 금액을 호락호락 줄 리야 없는 일. 그러다 보니 밀고 당기는 일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가장 실속 있는 부류는 외유내강형이다. 구단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서 협상 막판까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원하는 액수를 제시한다. 이런 유형은 비교적 자신에 관한 자료를 철저히 준비한다. 삼성의 이문환 운영차장은 “김한수·김현우가 이 유형에 속하는데, 이들은 실제 경기에서도 꼼꼼하다”라고 말했다.


실속파부터 막가파까지 협상 자세 십인십색


구단이 알아서 하라는 백지위임형도 적지 않다. 단, 성적이 좋은 선수들은 목에 힘을 주고, 성적이 좋지 않은 선수들은 고개를 숙인 채 맡긴다. 우승하지 못한 팀의 2군 선수들이 대부분 이에 속한다. 막가파형도 있다. 이런 유형은 구단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무조건 자기 말만 늘어놓는다. 구단측이 보기에 가장 골치 아픈 선수들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거북이형도 있다. 급할 것이 없다는 투로 협상에 나서지 않다가 전지 훈련 떠날 때쯤 슬그머니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이런 선수들 역시 구단이 껄끄러워한다. 삼성에는 빨리빨리형이 많다. 적당히 버티다가 한번 접으면 빨리 승복하는 것이다. 이승엽·진갑용·노장진이 이 유형이다.
21년 만에 코리안 시리즈에서 우승한 삼성 선수들은 ‘돈벼락’을 맞았다. 삼성이 선수들에게 푼 돈은 모두 40여 억원. 우선 신인 12명에게 각각 2천만원, 자유계약선수 양준혁에게 3억3천만원을 지급했다. 그리고 1·2군 선수 40명에게 26억7천8백만원을 쏟아 부었고, 코리안 시리즈 MVP 마해영에게는 3억8천만원을 지급했다.


이제까지 삼성이 지급한 연봉 총액은 36억2천8백만원. 남은 선수는 이승엽뿐이지만 6억원 이상을 지급할 것이 확실해 연봉 총액이 40억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1·2군 선수는 44명. 1인당 평균 45%가 올라 팀 평균 연봉이 1억원 가까이 올랐다. 주전들의 연봉은 그보다 훨씬 높아 2억원이 넘고, 억대 연봉자만 12명을 보유하게 되었다.


지난해 6월에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한 한국 대표팀도 두둑한 보너스를 받았다. 포상금 차등 지급을 두고 논란이 많았지만, 결국 23명이 3억원씩 골고루 나누어 가졌다. 그러나 그 뒤 선수들의 몸값은 천양지차로 변했다. ‘한국의 야신’ 이운재(30·삼성)와 유상철(32·울산)은 최근 각각 연봉 3억원에 5년·1년간 재계약했다.


같은 월드컵 스타라도 ‘국내파’보다 ‘해외파’ 선수들의 몸값이 좀더 높다. 지난해 8월 터키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한 이을룡(27)과 최근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으로 진출한 박지성(22)·이영표(26)는 3년6개월 계약에 연봉 6억원(1달러 1200원 기준)을 받는다. 반면 송종국(24·페예노르트)은 연봉 4억8천만 원(5년간 24억원)을 받고 있다.
가장 먼저(2000년 8월) 유럽에 진출한 설기현(24)은 원하는 만큼의 연봉을 못 받고 있다. 벨기에 안트워프에 처음 입단할 때 그가 받은 금액은 계약금 3억원에 연봉(출전 수당 포함) 9천만원. 지난해 안더레흐트로 옮겼지만 그의 연봉은 3억원에 불과하다. 설기현·송종국·이영표는 이적료로 9억∼27억 원을 받았지만, 경제적 이득은 못 챙겼다. 이적료는 구단 몫이기 때문이다.





또 한 명의 월드컵 스타 이천수(22·울산 현대)에게 지난 1월18일은 꿈 같은 날이었다. 그날 그는 소속팀과 월봉 1천3백만원(세금을 뺀 금액)에 재계약했다. 연봉으로 치면 1억5천6백만원. 지난해 연봉 2천만원보다 무려 700% 인상된 금액이다. 후반기에만 7골 9도움을 기록하며 팀을 2위로 올려놓고 신인왕에 등극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하지만 1999년부터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병현(24·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인상률에 비하면 이천수의 7배 인상은 별것 아니다. 김병현은 지난 1월17일 소속 구단과 연봉 3백25만 달러(39억원)에 1년간 재계약해 ‘깜짝쇼’를 연출했다. 이는 지난해 연봉(2억4천만원)보다 무려 16배나 오른 금액. 지난해 그는 8승3패 36세이브에 방어율 2.04로 생애 최고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김선수가 손에 쥐는 연봉은 25억원 정도이다. 에이전트 커미션 5%(1억9천여만원), 세금 약 38%(12억3천5백만원)를 제하기 때문이다.


박세리(25·CJ)는 지난해 각종 골프대회에 출전해 21억5천2백만원의 상금을 챙겼다. 국내 유명 프로 선수들에 비해 서너 배 많은 금액이지만, 라이벌 아니카 소렌스탐(35억8천만원)에 비하면 ‘아직도 배가 고픈’ 수준이다. 그러나 올해는 수입 면에서 그가 소렌스탐을 앞설지도 모른다. 지난해 말 CJ와 5년간 매년 30억원씩(옵션 10억원 포함) 받기로 계약한 덕이다.
이로써 그녀는 소속 업체 로고가 새겨진 모자나 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30억∼40억 원의 부수입을 챙길 수 있게 되었다(소렌스탐은 약 25억원의 부수입을 챙길 것으로 추정). 박선수가 지난해만큼만 활약하면 소렌스탐을 제칠 여지가 생긴 것이다. 박선수가 맹활약하면 자신만 덕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녀와 계약한 CJ도 엄청난 이득을 챙길 가능성이 높다.


삼성은 1998∼2002년 박세리와 계약했었다. 5년간 삼성이 광고비 등으로 그녀에게 지급한 금액은 모두 66억원. 삼성은 그만큼 투자해 얼마 정도의 경제적 이득을 보았을까. 한 전문가는 계약금 8억원, 연봉 1억원을 준 1998년에만 1천8백억원 정도의 경제적 효과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 해는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박선수에게 ‘최고의 해’였다.


CJ는 박선수가 7∼9개 대회에서 우승하기를 바란다. 특히 CJ가 기대를 걸고 있는 대회는 3월에 열리는 LPGA 투어 나비스코챔피언십. 만약 박선수가 이 대회에서 우승하면 26세 6개월로 캐리 웹이 가지고 있는 최연소(27세 6개월 3일) 그랜드슬램(4개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을 깬다. 세계의 골프계가 호들갑을 떨 것은 불문가지.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CJ는 1998년 삼성이 챙긴 것보다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이상훈·이종범·정민태는 외국에 갔다 와서 큰 돈을 벌었다. 세 선수 모두 일본과 미국으로 진출했지만 그다지 두드러진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종범은 2001년 8월 국내에 복귀하자마자 3억5천만원이라는 초특급 연봉을 받아 다른 선수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상훈 역시 미국 메이저 리그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으나, 고국 무대에 복귀하자마자 4억7천만원을 받아 연봉 순위 1위에 올랐다. 두 선수 모두 지난해에 관중을 구름처럼 몰고 다녀 받은 만큼 활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5억원이라는 거액을 받은 정민태가 그 뒤를 이을지 주목된다.


이들의 고액 연봉은 외국에서 높은 연봉을 받은 것에 대한 구단의 배려일 수 있다. 실제 해외파 선수들은 한국의 초특급 선수들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텍사스 특급 박찬호는 연봉 8백만 달러(96억원, 후 지급 48억원 제외)를 받고 있고, 일본의 구대성(오릭스)은 연봉 14억원을 받는다. 해외파 막내인 최희섭·김선우조차 최하 연봉이지만 3억3천만원을 받는다.


대다수 선수들 “우리는 아직 배가 고프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프로 선수들의 고액 연봉은 부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정작 많은 프로 선수가 ‘배가 고프다’고 말한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큰 탓이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선수협)에 따르면, 프로 야구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국내 85개 대기업 사원의 평균 연봉에 크게 뒤진다.


선수협 나진균 사무국장은 고액 연봉은 몇몇 선수에 한정되어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1·2군 선수 4백48명의 평균 연봉이 약 4천7백만원이었다. 그나마 중간급에 해당하는 연봉 서열 224번째 선수가 2천4백만원을 조금 웃돌았다.” 잡코리아 자료에 따르면, 2천4백만원은 대기업과 금융기관(85개사)의 대졸 신입 사원 평균 초봉(2천4백89만원)보다도 적은 금액이다. 결국 프로 야구 1·2군 선수 절반 정도가 대졸 신입 사원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구단의 견해는 다르다. 대부분의 구단은 선수들의 연봉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꾸 오르는 것에 경계심을 갖고 있다. 특히 올해 삼성이 돈을 풀면서 위기감은 더 커졌다. 결국 한국야구위원회(KBO)와 8개 구단은 최근 연봉총액상한제(샐러리캡)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내놓았다. 물론 지금 당장 그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SK와이번스의 한 관계자는 “일부 선수들이 미국과 한국 선수들의 연봉을 비교하는데, 잘못된 일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프로 구단은 어느 정도 스스로 수익을 올리지만, 한국 구단들은 운영비의 10% 정도밖에 수익(입장료)이 없다는 것이다. “매년 100억원 넘게 적자를 보면서 프로팀을 운영하는 것은, 부의 사회 환원과 국민들을 즐겁게 하려는 공익 목적 때문이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반면 선수협의 나진균 사무국장은 “프로팀을 통해 얻는 그룹 홍보와 유·무형의 경제적 효과를 외면한 발상이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