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지방흡입, 큰코다친다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3.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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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으로 한 해 2~3명 사망…심장 질환자·허약자 수술 금물
지난 1월23일 전남 광주에 사는 하 아무개씨(28·군무원)는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를 방문했다. 지방흡입술로 하복부·허벅지·팔 부위의 군살을 빼기 위해서였다. 의사는 키 155cm, 몸무게 58kg인 하씨를 꼼꼼히 살핀 뒤 ‘수술하자’고 말했다. 상담을 끝내고 하씨는 전신 마취에 필요한 심전도·혈액·간기능·전해질·혈액응고 검사와 흉부 방사선 촬영을 했다. 검사 결과는 좋았다. 이상한 점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열이틀이 지난 2월5일 오후 5시. 하씨는 병원에 도착해 전신 마취 처치를 받았다. 담당 의사는 30여 분 뒤 그의 허벅지 뒷부분에서 지방 세포를 2천cc 가량 뽑아냈다. 그런 다음 허벅지 앞부분에서도 지방 세포를 빼내기 위해 투메센트 용액(생리식염수·국소마취제·혈관수축제·전해질 성분이 포함된 용액)을 하씨의 하복부에 주입했다. 그 순간 이상이 나타났다. 하씨의 심장 기능이 떨어지고 체온이 강하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술팀은 놀라서 급히 심폐소생술을 시행했다. 하지만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병원측은 부랴부랴 그를 근처에 있는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러나 끝내 하씨는 소생하지 못했다.


병원측은 하씨가 사망한 원인을 지방색전증(지방 세포가 혈관으로 들어가 피의 흐름을 막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 추정이 맞다면 하씨는 운이 나빴다. 지방색전증은 흔히 일어나는 불상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색전증에는 이코노미클래스증후군같이 혈전(굳은 피)이 혈관을 막는 폐색전증과, 지방흡입 시술이나 골절 치료를 할 때 지방 세포가 혈관을 막아 발생하는 지방색전증이 있다. 두 가지 모두 발생 확률은 10만분의 1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술 전에 정밀 건강 검진 반드시 거쳐야


그런데도 국내에서 지방색전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한 해에 2~3명씩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에 따르면, 무리한 지방흡입 시술이 화를 부른다. 박현성형외과 박 현 원장은 “국소 마취를 해 하루에 3천㏄ 안팎의 지방만 흡입해야 하는데, 환자들이 요구한다고 전신 마취를 통해 한 번에 5천~1만㏄씩 뽑아내다 보니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방 세포를 많이 빼내면 빼낼수록 혈관이 손상될 확률과 그로 인한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엔제림성형외과 심형보 원장은 “의사가 환자의 건강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큰 사고를 부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예컨대 심장질환이 있는 사람의 경우 지방흡입 시술은 아주 위험하다. 국소 마취를 하고 지방을 흡입하려면 투메센트 용액이 보통 4천~5천㏄(작은 맥주병으로 8~10병 가량) 필요하다. 전신 마취를 하게 되면 그 양은 1만㏄ 가까이 늘어난다. 이 정도면 심장이 약한 사람은 견디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다른 위험 요소는 지방흡입 시술을 하는 대다수 환자의 몸이 보기보다 약하다는 점이다. 무리한 다이어트와 약물 남용 등으로 몸이 축 난 상태에서 다량의 투메센트 용액이 체내로 들어가게 되면 인체에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또 투메센트 용액이 실수로 피하 지방층이 아니라 혈관으로 유입되어 쇼크사를 일으킬 수도 있다. 어쩌다 다량의 투메센트 용액이 알부민 결핍 현상을 일으켜 피가 응고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출혈 과다를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지방흡입술이 ‘해서는 안될 수술’이라는 말은 아니다. 건강 검진을 세밀히 받고, 국소 마취를 통해 한 번에 적당량의 지방 세포만 제거하면 사고가 발생할 확률은 거의 없다. 억울하게 세상을 뜬 허 아무개씨는,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의사와 비만 환자들에게 또 한번 충고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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