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4강 신화’의 비밀
  • 손장환 (<중앙일보> 체육부 차장) ()
  • 승인 200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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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팀 자격 정지당해 대리 출전…고지대 적응 위해 마스크 쓰고 훈련



지난해 한·일 월드컵축구대회가 벌어지기 전까지 20년 동안 한국 축구를 상징한 것이 바로 ‘멕시코 4강 신화’였다. 멕시코 청소년대회 4강 진출은 ‘박종환’이라는 스타를 탄생시켰고, 한편으로는 역시 청소년은 아직 미완성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아시아 3위 팀이 세계 4위에 올랐으니.


1982년 벌어진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한국은 중국·북한에 이어 3위에 그쳤다. 당연히 한국은 본선에 오르지 못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그 해 가을 뉴델리 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에서 쿠웨이트와 경기하던 북한 대표팀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난동을 부린 것이다. 아시아축구연맹은 북한에 ‘2년간 각종 국제대회 출전 정지’처분을 내렸다.


당시 국내에서는 전혀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3개월 후 벌어지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보았자 망신만 당할 테니 출전을 포기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러나 박종환 감독이 출전을 주장했다. 그리고는 이른바 ‘지옥 훈련’에 들어갔다. 박감독 스스로 ‘기계적이고 잔인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박감독이 승부수로 던진 것은 체력과 조직력이었다. 하루에 세 차례, 새벽·오전·오후 훈련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멕시코시티가 해발 3700m의 고원 지대임을 감안해 선수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훈련했다. 처음에는 5분 만에 픽픽 쓰러지던 선수들이 대회 직전에는 30분 정도는 끄떡없을 정도가 되었다.


1983년 본선이 열렸다. 사실 국내에서는 거의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조별 예선 첫 경기에서 스코틀랜드에 0-2로 나가떨어진 후에는 ‘그럼 그렇지’ 하고 포기하는 듯 했다. 그런데 두 번째 경기에서 홈팀 멕시코를 2-1로 꺾고 마지막 경기에서 호주마저 2-1로 누르면서 이변이 예상되었다.


국내 분위기는 물끓듯했다. 우루과이와 8강전을 치르던 날, 오전 10시(한국 시각)에 시작된 경기를 보기 위해 전국이 잠시 숨을 멈춘 듯했다. 한국은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마저 연장전 끝에 2-1로 물리치고 준결승에 올랐다. 전국이 환호했고, 연장전 결승골을 포함해 2골을 혼자 넣은 신연호는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준결승 상대는 세계 최강 브라질. 전반 김종부의 멋진 중거리 슛이 꽂히면서 다시 한번 기적이 이루어지는가 했으나 결국 1-2로 역전패,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다. 3-4위 전에서도 한국은 폴란드에 1-2로 져 4위를 기록했다. 어쩌면 한·일 월드컵 때와 그렇게 똑같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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