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희 교수“세계 최초 퓨전 촬영장치 만든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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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희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대학 교수
조장희 UC어바인 교수(68)는 뇌과학 분야 세계 최고의 권위자다. 조교수는 UCLA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1975년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장치(PET)를 개발해 뇌 단층 촬영 분야에서 신기원을 이루며 ‘혜성’처럼 나타났다. 조교수가 당시 학회에 발표한 원형 PET은 ‘조스 펫(Cho's PET)’이라고 불린다. 조스 펫은 세계 주요 병원에서 사용되고 있는 PET에 이론적·실제적 기초를 제공했다. 이 업적으로 조박사는 한국인 최초로 노벨 의학상을 수상할 가장 유력한 과학자로 손꼽히고 있다.

1895년 W.K. 뢴트겐이 엑스선을 발견해 1901년 세계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데 이어 1970년대 초 엑스선 컴퓨터단층촬영장치(CT)를 발명한 코멕과 하운스필스가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또 1970년대 중반 리처드 언스트·폴 로터버·피터 맨스필드가 자기공명영상장치(MRI)를 개발한 공로로 지난해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첨단 의료 영상기기 분야에서 남은 인물은 조장희 교수와 뇌기능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개발한 일본의 세이지 오가와 교수밖에 없다.

고희(古稀)를 앞둔 조교수는 다시 큰일을 벌이고 있다. 한국 가천의대·독일 지멘스와 손잡고 PET와 MRI를 결합한 퓨전 영상장치를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앞으로 5년 동안 가천의대는 6백40억원을 투입하고 지멘스는 최첨단 의료기기를 현물 출자할 계획이다. 조교수가 지난 9월6일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 창립 기념 세미나에서 이 사실을 밝히자 세계 뇌과학계와 단층영상촬영장치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시사저널>은 9월9일 미국 출국을 앞둔 조장희 교수를 만나 단독 인터뷰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42년을 살다가 한국행을 결정한 동기가 무엇인가?


귀국을 결심한 것은 연구 환경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PET와 MRI를 한데 합친 최첨단 퓨전 영상장치를 개발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김병모 가천의대 신경외과 교수가 지난해 초 UC어바인에 교환교수로 오면서 가천의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김교수는 퓨전 영상촬영장치에 대한 내 연구 계획을 듣고 한국에서 한번 해보자고 제의했다. 김교수가 이길여 가천의대 이사장에게 보고하자 이이사장은 곧바로 전폭 지원을 약속했다. 그 뒤 연구에 반드시 필요한 최첨단 MRI, HRRT(최첨단 PET), 동위원소가속기(사이클로틀론)를 구하고자 전세계 뇌 연구소와 업체를 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지멘스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지멘스는 로열티 수입을 5 대 5로 나누는 조건으로 세계에서 6대밖에 없는 최첨단 MRI(9백60만 유로), HRRT(2백50만 달러), 동위원소가속기를 선뜻 내놓고 상용화 과정에서 축적된 응용 기술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1년만 늦었어도 무산될 수 있었던 이 연구 계획이 가천의대와 지멘스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앞으로 1년 동안 UC어바인 교수 직을 정리하면서 연구 인력을 선발하고자 한다. 개발 초기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제자들을 끌어모으고 지멘스 연구 인력을 합쳐 50여명으로 연구진을 꾸릴 계획이다. 연구 인력은 앞으로 2백명까지 늘어날 것이다. 상용화에 필요한 연구는 2년 안에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5년 후에는 시제품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연구 과제인 퓨전 영상촬영장치 PET-MRI는 어떤 것인가?

PET는 신경세포 움직임을 분자 단위로 촬영하는 장치이다. 유전자 변이로 일어나는 암세포를 초기에 발견하는 데 탁월하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보다 포도당을 많이 소비한다. 포도당에 방사성 동위원소를 점착시키고 PET는 동위원소를 추적해 방사성 동위원소에 둘러싸인 암세포를 눈으로 식별할 수 있게 한다. 또 신경세포 사이에 오가는 신경전달물질과 수용체가 움직이는 모습을 촬영할 수 있다. 하지만 PET는 해상도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이에 반해 MRI는 해상도가 매우 높지만 분자 단위 움직임을 촬영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 두 장치가 갖고 있는 장점을 결합하면 신경세포의 분자 단위에서 발생하는 유전자 변이 과정을 해상도 높게 촬영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MRI가 배출하는 자기장은 7만 가오스에 해당한다. 지구 자기장이 0.2 가오스인 것을 감안하면 35만 배에 해당하는 자기장인 셈이다. 이 자기장이 PET를 망가뜨리거나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이 두 장치를 한데 합친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작업이다. 이 두 장치를 격리하기 위해 들어가는 시멘트 철구조물이 4백t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아주 철저한 차폐 장치가 요구되는 것이다.

성공하면 무슨 변화가 오는가?

5년 안에 나오게 될 이 첨단 장치를 이용하면 아직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두뇌의 활동 기제가 상세히 밝혀질 것이다. 또 전체 암 발생 원인의 40% 가량이 뇌에서 연유하는 것을 감안하면, 뇌암을 비롯해 갖가지 암의 원인을 밝히고 조기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치는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MRI 가격이 대당 2백만 달러인데 이번 연구에 동원되는 MRI는 1천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1980년대 초 처음 상용화한 MRI가 당시 2백만 달러에 달했다.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수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 대수가 늘어난다면 가격은 떨어지겠지만 의료영상장치 가운데 가장 비싼 장비가 될 것이 틀림 없다(퓨전 영상장치는 2010년 2백10억 달러나 되는 의료영상장비 시장의 40%를 차지해 80억 달러가 넘는 판매 수입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인으로는 처음 노벨 의학상을 수상할 가장 유력한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노벨상 수상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인물은 전세계에서 수천 명이 넘는다. 내가 속한 미국 학술원 회원 4천~5천 명만 해도 모두 노벨상 후보들이다. 특히 노벨 의학상은 의료 분야에서 인류에 공헌한 업적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해낸 사람이 받는다. 노벨위원회는 지금까지 갖가지 단층 영상촬영장치를 최초로 개발한 이들에게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다음에 뇌 과학이나 단층영상 촬영장치 분야 학자에게 상을 주고자 한다면 내 차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최근 이공계 경시 풍조가 만연하다. 이공계에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 학생들에게 이공계가 매력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젊은이들이 이공계에 들어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숭배할 만한 이들이 나와야 한다. 줄기세포 복제에 성공한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대표 사례다. 또 이공계 출신들이 대접받을 수 있는 형태로 사회보상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장을 맡으면서 연봉으로 30만 달러를 받기로 했다. 연구실에서 보내는 것이 낙이어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지만 이공계 분야에서 나름으로 업적을 쌓으면 이 정도까지 대접받을 수 있다는 전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한국 뇌 연구 수준은 어느 정도이고, 뇌 과학은 한국에 어떠한 기회를 줄 것으로 판단하는가?

한국은 뇌 연구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빠르게 쫓아가고 있다. 하지만 뇌 연구 분야에서도 다른 과학 분야와 마찬가지로 2등은 대접받지 못한다. 오로지 1등하는 연구만 인정받는다. 이번 퓨전 영상촬영장치 개발은 한국 뇌 연구가 세계 수준으로 올라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장치를 활용해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붙은 연구 업적들이 국내에서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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