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는 살굿빛 조선일보?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4.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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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평 누락 둘러싸고 ‘보수화’ 논란…행정 수도 이전 반대도 ‘앞장’
“동료들끼리 우리 신문을 ‘살굿빛 조선일보’라고 부른다.“ 지난 10월22일 문화일보의 한 평기자는 사내에 일고 있는 보수화 바람을 용지 색깔에 빗대어 말했다. 최근 문화일보가 국가보안법 폐지·이라크 파병 등 여야가 민감하게 대치하는 사안에 대해 조선·중앙·동아 일보가 무색할 정도로 보수적인 논조를 펴고 있다.

문화일보 보수화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는 연이은 만평 누락이다. 문화일보 3면에 ‘문화만평’을 그리고 있는 이재용 화백은 10월5일, 10월7일에 이어 10월18일에도 만평을 싣지 못했다. 이화백은 “요즘은 매일 승부차기를 하는 심정으로 만평을 그린다”라고 착잡한 심정을 표현했다. 골키퍼를 앞에 두고 오늘은 골을 넣어야 한다는 식의 부담감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그는 “편집국에서 ‘사설에 만평을 맞추라’고 주문하고 있다. 만평은 기명 코너여서 내가 책임지는 것이지만 사설은 무기명이다. 사설에 맞추라는 말은 만평이 아니라 삽화를 그리라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문제가 되었던 세 작품은 모두 한국 사회의 정치적 대립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위 그림 참조). 10월5일자 만평에 대해 김종호 편집국장은 ‘국보법 폐지 집회를 극단적으로 비아냥거렸다’며 작가에게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10월7일자에 대해서는 ‘색깔몰이’라는 단어를 수정하라고 요구했다. 이 날짜 만평은 초판에는 실렸으나 오전 11시 이후 3.5판부터 빠지고 경제부 기사가 들어갔다. 이재용 화백은 “마지막 10월18일자는 한나라당뿐만이 아니라, 개혁이라는 이름만 내건 채 방황하는 열린우리당도 같이 비판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사상 전향서 쓰라는 말인가?”

지난 10월20일 전국시사만화작가회의는 성명을 내고 ‘(만평 누락은) 구시대적인 폭력적 편집권 행사’라고 비판하면서 ‘만평 누락을 사과하고 책임자 문책과 재발방지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백무현 화백(서울신문)은 “만평을 사설에 맞추라는 말은 사상 전향서를 쓰라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만평을 그렸던 손문상 화백은 2002년 4월 회사와 마찰을 빚다 부산일보로 옮긴 바 있다.

이재용 화백은 만평에 대해 편집국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은 지난 5월부터였다고 말한다. 지난 6월28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문화일보 왜 이러나’라는 논평을 내면서 문화일보의 일방적인 이라크 파병 옹호 보도를 비판했다.

사설을 통해 제일 먼저 행정수도 이전 반대 깃발을 든 것은 조선·동아 일보가 아니라 문화일보였다. 언론계에서는 ‘조중동’이 아니라 ‘조중동문’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문화일보 공정보도위원회는 이화백의 만평이 두 번째로 빠진 뒤인 10월8일 ‘공정 보도’라는 사내지를 만들고 ‘편집 원칙 도대체 뭔가’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사내지는 연이은 기사 누락 사태를 소개하고 ‘국장이 사장실에 다녀와서 뉴스 게재 결정을 내린다’며 사장과 편집국을 비판했다. 한 문화일보 관계자는 “공정보도위에서 문건을 만들기는 했지만, 기자들이 지면 보수화에 무력하다. 구조 조정 등 경제 사정이 힘들다 보니 지면 개혁에 힘이 모이지 않는 것 같다”라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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