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규 공정위 위원장 “공정거래법 개정, 후퇴 없다”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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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 의결권제 도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분명하게 밝혔다. 공정위가 제도 도입을 검토할 예정이라는 언론 보도는 잘못된 것이다.” “지금도 출자 여력이 순자산의 14.6%인 23조원에 달한다. 출자 규제가
국회 정무위의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감사에서 강철규 위원장은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정부가 발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정반대 개정안을 내놓은 야당 의원들이 재계의 주장을 대변하며 파상 공세를 폈지만 그는 끄덕없었다. 지난 9월 야당 의원의 의장 단상 점거까지 빚어졌던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여야가 11월12일 표결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삼성과 전경련이 막판 저지 공세를 벌이는 등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강위원장은 이번 개정안의 토대는 지난해 말 성안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으로, 재계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한 것이어서 공정위로서는 더 물러설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를 10월21일 집무실에서 만났다.

국감에서 차등의결권제 도입이 왜 돌연 불거졌는가?

10월18일 정무위 국감에서 한 의원이 ‘계열 금융·보험사 의결권 행사를 축소하게 되면 적대적 M&A 우려가 커지는데 이에 대한 방어 대책으로 차등의결권제 등 유럽에서 시행하고 있는 여러 제도를 도입할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다. 앞서 다른 의원들도 시중에서 거론되는 문제 회사들의 적대적 M&A 가능성을 집중 제기한 터였다. 그래서 그런 우려가 크다면 (공정위가) 소관 부처는 아니지만, 증권 관련 법률로 경영권 방어 제도 도입 여부를 검토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차등의결권제 도입에 대해서는 소유지배 괴리도를 더 심하게 한다는 이유로 분명하게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유럽연합(EU)이 폐지를 논의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 여러 가지 설명을 했지만 일부 언론이 거두절미하여 차등의결권제에 대해서만 보도했고, 공정위가 도입을 검토하겠다고까지 잘못 보도했다.

야당이나 재계가 거론하는 대표적인 회사가 삼성전자인데, 이 회사가 적대적 M&A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경영을 잘하고 있다. 경영권 탈취 세력에 대한 최선의 방어 수단이 경영 잘하는 것 아닌가. 삼성전자는 기업 규모가 커 인수 자체가 어렵고, 유형 자산보다는 인적 자산이 주요 자산이기 때문에 인수에 따른 실익도 적다고 생각한다. 또 외국인 지분율이 높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외국인 주주가 수익을 좇는 포트폴리오 투자자들이다. 이들은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다. 사실 적대적 합병·매수 건은 공정위가 직접 다룰 사안도 아니다. 하지만 국감 전부터 재계 등에서 우려를 제기해 시뮬레이션을 해본 적이 있는데, 외국 자본에 의한 삼성전자의 적대적 M&A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계열 금융기관 의결권 축소를 저지하기 위해 차등의결권제 도입으로 맞불을 놓았다고 분석한다.

맞불인지는 모르겠고. 계열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허용 범위를 30%에서 15%로 단계적으로 낮추려는 것은 금융과 산업자본 분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고객 돈으로 지배주주 지배권을 행사하려는 이해상충 문제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의결권 축소 조처가 이루어져도 지배주주의 경영권에는 아무런 변동이 없다. 공정위에 공식으로 문제 제기한 기업도 없다. 공정위로서는 의결권 조항 개정을 포기할 수 없다.

출자총액제한제가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는 재계의 줄기찬 비난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일축하는 근거가 무엇인가?


출자총액제한제는 계열사간 출자로 가공 자산을 만들어 지배력을 확장하는 행위를 억제하려는 것이지 건전한 투자를 가로막는 제도가 아니다. 기업의 내부 설비투자·연구개발투자·사업부 설립·자사주 및 외국 회사 주식 취득·국공채 매입 같은 건전한 투자는 전혀 제한하지 않고 있다. 또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성장 잠재력을 늘리는 데 관련된 출자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따라서 출자 규제가 투자를 저해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출자 규모를 순자산의 25%로 묶여놓아 기업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고 하지만, 광범위한 ‘적용제외’와 ‘예외인정’ 부분을 감안하면, 지금도 출자 여력이 순자산의 14.6%인 23조원에 달한다. 물론 기업 별로는 편차가 있다. 출자가 대부분 투자로 연결된다는 재계의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실물 투자로 연결될 수 있는 회사 설립에 따른 출자가 전체 출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 2천억원에 불과했다.

투자와 출자의 상관성이 미미하다면 투자가 부진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생각보다 재계나 민간 연구소 등이 수행한 기업인 대상 조사 결과를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올 3월 전경련 조사에서는 노사분규가 투자 부진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다음이 반기업적 정서, 증권 집단소송제, 마땅한 투자 산업 발굴 미흡, 소액주주운동, 정부 규제 순이었다. 비슷한 시기인 지난 2월 삼성경제연구소 조사에서는 내수 침체로 투자가 부진하다는 응답률이 77.6%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정책 혼선 및 정국 불안(7.2%), 투자 재원 조달 애로(6.4%), 기업가 정신 위축(2.2%), 노사 불안(2.2%) 따위 이유는 매우 적었다.

원안 통과를 위해 11월12일 표결 전까지 어떻게 할 작정인가?

지난 9월 여야 합의로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하기로 합의한 터라 국회 통과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여당 주도 언론개혁법안이 공정거래법에 저촉된다는 야당의 공세가 거세다.

언론을 통해 접해 아직 법안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지 못했다. 10월20일 국회에 제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정거래법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한 후 견해를 밝히겠다.

지난 5~6월 4대 그룹 총수와 개별 회동했는데,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는가?

다 훌륭하더라. 열심히 설명하니까 대체로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LG 구본무 회장은 적극적이었다. 개혁의 필요성에도 공감을 표시했다. 구회장은 전경련에 가지 않는다며 전경련이 ‘삼경련’이라는 표현도 했다. SK 최태원 회장은 지배구조 개선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공정위와 함께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만들겠다고 거듭 말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은 말은 어눌했지만 소신은 분명했다. 공정위가 몇 년 전에 업종 전문화를 유도해 현대자동차가 계열 분리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자동차산업을 제대로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며 고맙다고까지 했다. 다만 개혁은 좋지만 속도를 조절해 달라고 요청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중소기업·신용불량자·서민생활 안정 등 여러 문제에 걸쳐 깊이 있게 참 많이 알더라.

이건희 회장이 강위원장의 말을 듣기보다는 하고 싶은 말만 했다는 풍문이 사실인가? 특히 지배 구조 개선 요청에는 미온적 반응이었다는데.

그렇지 않다. 삼성에 대해 여러 가지를 비판했는데 다 수용했다. 그런 점에서 좋게 본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국민들은 삼성에 대해 애증을 갖고 있다, 70%의 국민은 삼성이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머지 30%는 나쁜 감정을 갖고 있다, 나는 30%를 대표해 비판하겠다. 삼성의 자유도 존중되어야 하지만, 타자에 해를 끼치면 안된다. 납품업체와 소액주주, 소비자 같은 이해 관계자들이 피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이회장은 열심히 경청했고 나름의 대안도 제시했다. 좋은 예가 중소기업과 하청업체 지원 건인데, 이들에게 1조1천억원을 배정하겠다고 말했다. 분위기는 좋았다. 왕년의 한국비료 사건의 배경까지 자세히 얘기했다. 대화가 되는 상대였다. (지배구조 개선 요청을 했느냐고 재차 묻자) 문제 제기를 했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좀 피해 가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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