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된 감독 체계 내년 초에 선보이겠다”
  • 장영희 전문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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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환란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그가 6년 만에 돌아왔다. 지난 8월4일 금융 감독 사령탑이 된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이다. 그가 돌아온 후 여의도 금감위와 금감원, 금융가에는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그것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금융통이자 업무 추진력을 갖고 있으며 화통한 보스 기질의 소유자라는 그의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전임 위원장이 감독기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소신을 폈던 터라 더욱 대조가 된다. 취임 때 ‘자정 기능이 약하면 감독 강도를 높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그는 이미 중소기업 대출 회수에 자제를 요청하는 등 강성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다.

윤위원장은 ‘균형’을 강조한다. 미시 감독과 권역별 감독에 치중한 방식을 거시 감독과 기능 별로도 안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권 비대화와 제2 금융권 위축 현상에 우려를 표명하며, 1·2 금융권 간의 균형 찾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윤위원장은 취임한 지 꼭 3개월 만인 11월4일 언론과의 첫 인터뷰를 <시사저널>과 가졌다. 정부 조직 컨설팅에 세계적 명성을 가진 A.T. 커니 컨설턴트들과 만나 열변을 토한 직후여서 그런지 그는 다소 상기된 표정이었다.

 
10월25~29일 미국을 방문해 ‘금융 외교’를 펼쳤다는 호평을 받았다.


미국은 세계 금융의 총본산이고 배울 게 많은 나라 아닌가. 세계 금융의 두 축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과 증권관리위원회(SEC) 월리엄 도널드슨 의장을 만나 한국 정부의 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금융 현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나누었다. 마침 뉴욕에서 국제증권감독자기구(IOSCO) 고위급 회담이 열려 영국·독일·홍콩 등 주요국 감독기관장을 다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다.

세계적으로 잘 만나주지 않기로 유명한 그린스펀 의장을 어떻게 만났는가?

현지(워싱턴·뉴욕) 한국 특파원들도 어떻게 회동을 성사했느냐고 묻더라.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17년 동안 연준 의장 자리에 있으면서 경륜과 권위를 인정받으며 세계 금융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그는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가 유지된다면 단기적으로는 굴곡을 보이지만 긴 흐름에서는 상승 궤적을 그릴 것이라며 한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했다. 고령화 시대에 잘 대처한다면 성장 잠재력이 높다고도 했다. 감독기관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유지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지만, 기업가 정신이 기운을 잃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카드 대란에서 촉발된 감독 체계 개편이 미완에 그쳤다는 비판이 있다.

본질적 접근, 다시 말해 (통합 같은) 하드웨어 개편은 정부 조직 개편과 연계되기 때문에 중·장기 과제로 넘겼다. 현재는 금감위·금감원 간 기능 재조정을 통해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해 가는 과정이다. 양측 합의로 견제와 균형이라는 내부 경쟁 시스템이 도입되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고 확신한다. 여기에 운영의 묘를 보태야 할 것이다. (10월18일부터)금감원이 (A.T.커니로부터) 조직 진단을 받고 있는데, 내년 초에는 완성된 금융감독 체계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조직 진단을 외부 기관에 의뢰한 이유는?

금융 감독기관은 금융 시장과 산업에서 권위가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고도의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본인이 노력해야 하지만, 내부 통제 장치도 갖추어야 한다. 사람은 성선설과 성악설이 공존하는 존재 아닌가. 금융 시장 변화 추세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현실적 필요도 크다. 6년 전 4개 감독기관을 통합했던 것도 은행·증권·보험 등 영역을 넘나드는 파생·복합 상품이 속속 개발되는 추세를 반영한 것인데, 그 현상은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소속이 불분명한 이런 신종 상품을 제대로 감독하려면 기능별 조직으로 일부 전환해야 한다. 또 지금까지 개별 금융기관을 들여다보는 미시 감독에 치중했는데, 거시 감독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정부 정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감독기관의 의견도 정책에 반영해야 사전 예방적 감독과 선제적 대응이 가능해진다.

강성 감독 수장이라며 금융계가 긴장하고 있다.

알고 보면 부드러운 사람인데…. 몇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은행과 비은행(제2금융권) 부문간 균형이 깨졌다. 특히 자본 시장이 너무 위축되어 있다. 내년 4월 실시하는 (2단계) 방카슈랑스(은행 창구에서 보험 상품을 파는 것)에 대해 유보냐 아니냐 이런 얘기가 아니라 한번 짚어보자고 했다. (증권 분야) 집단소송제에 대해서도 내년 시행 일정이 잡혀 있어 되돌릴 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이 제도가 원활히 정착하도록 보완해야 할 점을 챙겨 보아야 한다. 누군가 얘기해 주었으면 하던 문제,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았던 문제를 제기하니까 화제가 되고 강성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중소기업 대출을 회수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이 ‘신관치’ 논란을 불렀다.

중소기업은 산업의 뿌리 아니냐. 경쟁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도태되어야 하지만 기술력이 있고 인적 자산도 괜찮은 중소기업이 단지 자금 때문에 어렵다면 은행이 과감히 지원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수익성이 중요하지만, 은행은 공공성도 좀 있어야 한다. 금융기관 가운데 은행에 공적자금이 가장 많이 투입된 것은 금융 시장의 중추 기구이기 때문이다. 은행의 이런 공공성에 호소한 것이지 팔을 비튼 것이 아니다.

1, 2 금융권 간 균형이 깨진 것은 외환위기 이후 소비자의 안전 자산 선호 탓이기도 하지만, 제2 금융권 구조 조정이 미흡했기 때문 아닌가?

제2 금융권이 위축된 데에는 자기 책임이 가장 크다. 자본 시장에서 개미군단이 거의 사라졌다. 투자자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 자본 시장을 누가 받치고 있나. 외국 자본이다. 이래서는 자본 시장이 발달할 수가 없다. 금융 중개 기능이 원활해질 수도 없다. 이런 불균형 문제를 빨리 고치기 위해 제2 금융권에 뼈를 깎는 구조 조정을 요청했다. 먼저 구조 조정을 하면 정부도 정책적으로 도울 것을 찾겠다.

대기업들은 외국인의 적대적 합병·매수에 대항할 새로운 경영권 방어 장치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럴 용의가 있는가?

합병·매수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두루 있지만, 글로벌 시대에 막아서는 안된다. 기업들이 투명하고 제대로 경영하면 누가 달려들겠나. 현재도 집요하고 조직적으로 적대적 합병·매수를 하려는 세력에 대비해서 ‘5% 룰’(주식 대량보유 보고 제도) 같은 몇 가지 방어 장치를 허용하고 있다. 한국 금융 시장에서 제대로 된 적대적 합병·매수가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다. SK-소버린 건이 불거졌지만, 그 기업 자체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 정부는 시장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지만, 거론되는 차등의결권 제도·독약 조항·황금 낙하산 같은 제도를 섣불리 도입할 수는 없다. 정부가 대주주 기득권이나 보호해선 안된다. 공격과 방어 수단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 가지 삼성 이슈(삼성생명 투자 유가증권 회계처리·에버랜드 금융지주회사법 위반· 삼성카드의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 위반)에 대한 금감위의 후속 조처가 몇 개월째 나오지 않고 있다.

생명보험회사 회계 처리 문제는 태스크포스가 작동하고 있다. 늦어도 내년 초에 개선안을 내놓을 것이니 조금 기다려 달라. 에버랜드 건은 (삼성전자) 주가가 어떻게 되어서(떨어져) 저절로 해소되었다고 그러더라. (에버랜드와 삼성카드 건에 대해) 후속 조처가 나오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위반은 했지만 이를 바로잡을 수는 없는 ‘입법 불비’ 때문이다. 법 개정안에 ‘시정 요구권’이 들어가야 한다고 재경부에 건의했다. 재경부가 검토 중인데 우리 생각이 그대로 반영될 것으로 본다. 다만 강조할 것은 법 정비가 안된 상태에서 저질러진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기업에 불이익이 돌아가게 해서는 안된다. 이런 점이 (법) 보완 과정에서 반영될 것으로 본다.

LG카드 대주주의 불공정거래 의혹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말했는데,

금감원에서 지금 하고 있다. 조사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조사 대상자가 많고(94명), 사고 파는 과정을 모두 추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판 시점에서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다는 증빙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혐의를 찾기가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연말에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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