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메일 거품 빼야 디지털 강국”
  • 곽동수 (한국싸이버대학 교수) ()
  • 승인 2004.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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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e메일, ‘화려함’에 치우쳐 용량만 크고 실속 없어
미국의 USA투데이는 12월7일자 보도를 통해서 ‘몇몇 미국 기업이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하라는 의미에서 e메일 사용을 줄이는 캠페인을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사에 따르면, 베리타스 소프트웨어의 마케팅 매니저 마이클 파커는 하루 평균 3백여 통의 e메일을 주고받는데, 회사에서 금요일 하루 동안 e메일을 쓰지 못하게 해서 한동안 무척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규칙을 어기면 벌금은 1달러. 상징적인 금액이었지만 경영진의 방침은 완강했다. 처음 이 제도를 접했을 때 파커는 업무 현실을 외면하는 조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달간 따라 해본 결과 고객과 직접 대화하는 즐거움을 되찾고, 최근에는 ‘e메일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다. 일정 부분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다니기에 이르렀다.

e메일 줄이기에 모든 사람이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지멘스의 한 관계자는 “사람들은 생산성을 높이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라며 e메일이 커뮤니케이션에 빼앗기는 시간을 줄여준다며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미국 기업은 e메일이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e메일 찬반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의 독특한 기업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전자 결재 시스템이나 인트라넷 같은 사내 게시판을 주로 이용하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중앙집중적인 결재 라인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담당자와 상관이 e메일을 통해 업무 지시를 내리고 보고한다.

얼마 전 통합 출범한 한국씨티은행은 한국과 미국 간의 사뭇 다른 e메일 활용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서를 작성한 후 인트라넷으로 처리하던 한미은행과, 필요하면 언제든지 업무 e메일을 띄우는 씨티은행의 업무 방식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근무 중에만 업무를 보던 옛 한미은행 직원들은 새벽이나 한밤중을 가리지 않고 오는 업무 메일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 뿌리를 둔 기업 대부분은 이처럼 e메일을 업무의 커뮤니케이션 핵심 도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인과 개인끼리 주고받는 e메일이라고 하더라도 원본은 회사의 서버에 보관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익스체인지 서버(Exchange Server)는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출시한 메일 서버 프로그램으로, 메일은 물론 그룹 일정 관리, 토론 데이터 베이스, 문서 공유 기능을 내장하고 있다. 또한 메시지 추적기까지 기본으로 내장하고 있어서, 원하면 언제든지 메시지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다.

이렇게 e메일이 기업 전산 환경의 중심에 놓이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미국에서 창업을 하는 경우, 맨 먼저 준비해야 할 세 가지는 회사 로고가 적힌 편지 봉투와 편지지, 명함이라고 한다. 또한 ‘Dear 쭛쭛쭛’로 시작해서 사인으로 끝나는 영문 편지 쓰기는 정형화한 것으로, 아날로그 전통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로는 e메일은 빠르고 효과적이며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요란한 그래픽으로 눈길 끌기 경쟁

이에 비해 한국의 e메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다. 맨 먼저 눈에 띄는 점은 포털 사이트의 e메일 사용 빈도가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다음의 한메일넷으로 대표되는 포털 e메일 서비스는 웹브라우저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어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스팸 걸러내기 기능까지 보강하고, 첨부 파일과 저장 용량을 대폭 늘린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밋밋한 문자만 가득한 메일이 아니라,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음악으로 장식된 ‘플래시 사이버 카드’나 ‘멀티미디어 e메일’이 많이 사용된다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픽이 첨부된 HTML이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포털 메일의 특성상 끝부분에 아바타가 첨부되거나, 광고 그림이 자동으로 붙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기업들의 홍보 e메일도 한몫을 하고 있는데, 정성스럽게 문구를 뽑고 고객에게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노력은 게을리한 채, 그저 화려한 그래픽으로 눈길을 끌어보자는 식의 메일도 많다. 이는 한국만의 독특한 e메일 사용 문화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e메일의 장점을 상당 부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e메일 문화 준비해야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의 e메일은 아직 활용도가 그리 높지 않아, 거품을 걷어낼 부분이 많다. 몇 년 뒤 다가올 유비쿼터스 시대를 상상해 보자. 유비쿼터스는 장비와 네트워크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유비쿼터스 시대가 되면 e메일을 컴퓨터뿐 아니라 PDA나 휴대전화, 디지털 TV 등 다양한 도구로 확인할 수 있다. 텍스트 중심의 e메일은 용량이 적고 어떤 환경에서건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핵심 프로그램으로 활용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e메일 문화가 그대로 유지되면 용량을 많이 차지하는 화려한 메일은 모바일에서 속도 문제를 일으킬 것이고, ‘윈도+익스플로러’ 환경에서만 제대로 보이게 만든 메일은 호환성 면에서 상당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결국 시스템은 갖추어지겠지만 사용자들은 e메일을 보기 위해 여전히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는 불편을 겪게 될 것이다. 이는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e메일 예의’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

그러나 이같은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기본적인 e메일 예의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메일 제목은 어떤 내용인지 명확히 알 수 있게 적어야 하는데, 여전히 상당수 메일이 ‘안녕하세요’를 적거나, 아예 아무것도 적지 않고 보낸다. 스팸이 많은 요즘에는 제목 때문에 유사 스팸으로 분류되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따라서 메일 제목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메일 하단에는 자신의 연락처와 이름을 기록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의외로 제목과 서명을 소홀히 한 채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메일함 관리에 익숙지 않은 사용자들은 메일 수백 통을 방치하기도 하는데, 메일함을 만들어 보관하고 유실되지 않게 가끔 백업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시스템 면에서는 메일 발송과 도착 사이에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점을 들 수 있다. 같은 메일 시스템 내에서는 1초면 도착하는 메일이 다른 메일로 보내면 몇 시간 걸리거나 혹은 반송되는 배달 사고도 발생하는 결함은 하루빨리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다.

e메일로 빠트리는 부분 없이 꼼꼼히 일해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같은 작업은 비인간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기업들이 e메일 줄이기를 외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도 요즘 한국의 e메일 문화는 서로 벽을 쌓고, 예쁘게 꾸미는 데만 연연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는 e메일을 과소 평가하고 있으며,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 사용자는 올바른 사용 습관을 들이고, e메일 업체는 화려함 대신 부족한 내실을 채우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사용자와 서비스 업체가 모두 거품을 빼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디지털 강국은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사용자가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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