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크크, 만인지상이라고요?”
  • 서명숙 편집위원 ()
  • 승인 2004.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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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국무총리
 
한쪽에서는 ‘실세 총리’ 다른 한쪽에서는 ‘총대 총리’로 불리는 이해찬 총리. 노무현 정부 2기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대통령과 총리의 역할 분담을 전제로 한 분권형 국정 운영은 이미 실험 단계를 거쳤고, 앞으로 더 본격화할 전망이다.

사람들은 그의 현재 못지 않게 미래에도 관심을 보인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을 비난한 ‘베를린 발언’은 그에게 엄청난 정치적 시련을 안겨준 동시에 그를 단숨에 잠재적인 대권주자 반열에 편입시키는 주술적 효과를 발휘했다. 뛰어난 의정 활동과 5선의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기와는 무관한 길을 걷던 그에게 ‘이해찬 대통령 만들기 카페’ ‘이사모’ 등이 생겨났으니 이변이라면 이변이다. “나는 대권주자감이 아니다”라고 공언해온 그에게 혹 심경 변화가 일어난 건 아닐까.

궁금한 건 또 있었다. 좌와 우, 보수와 혁신의 치열한 갈등과 대립은 지난해 말 급기야 고문 공방으로까지 치달았다. 1970~1980년대 학생운동권과 재야운동권의 중심에 서 있었던 투사 이해찬에서 일국의 국무총리가 된 그는 이런 상황?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고정 인터뷰 난의 첫 손님으로 모신 것은 결코 총리라는 계급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총리가 된 후 야당을 향해 더 가파르게 각을 세우는 것 같은데요. 싸우다가도 총리가 되면 두루 포용하는 게 순리 아닌가요?

일부러 각을 세우는 건 아니고, 그냥 사실을 이야기하는 거죠.

일국의 총리라면 때로는 립서비스도 필요하지 않나요?


그러면 나라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사실에 기초해서 서로 이야기하고 대화해야 나라가 발전하지, 묻어두면 반드시 썩습니다.

정기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총리를 불러세워 놓고 질문을 안하거나 아예 없는 인물로 치부했는데, 당시 심경이 어땠는지요.

관계없어요. 우리가 정치 한두 해 합니까? 17년짼데 그런 꼴 어디 한두 번 봅니까? 질문 안하니까 편하고 좋더구먼 뭐.

얼마 전 열린우리당 정책자문위 특강에서도 한나라당과 경제 발전은 무관하다면서 또다시 그쪽을 자극했잖습니까?

그것도 사실이잖아요? 한나라당과 경제발전이 무슨 상관 있어요? 경제 발전은 공화당 때 이뤄진 일이고, 공화당을 승계한 건 JP의 신민주공화당이고, 한나라당은 3당 합당하면서 별도로 만들어진 당이잖아요.

노대통령이나 이총리나 나라 전체를 아울러야 할 위치인데 아군과 적군을 너무 분명히 구분하는 게 아닌가요?

우리가 아군과 적군으로 보는 게 아니라니까요. 언론이 그렇게 쓰는 거지. 우리야 그 사람들 터무니없이 핍박하기를 합니까, 야당을 근거없이 탄압하기를 합니까?

비단 여야 갈등만이 아니라 국민들 사이의 분열도 심각합니다.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싸고서 그런 양상이 특히 심각하게 불거졌는데요.

사립학교법 같은 경우는 55~60%가 찬성해요. 국가보안법도 폐지만 한다면 70% 정도로 반대가 많지요. 그러나 ‘폐지 후 보완한다’ 그러면 오히려 55% 정도가 찬성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언론은 마치 정부·여당이 폐지만 하려는 것처럼 보도하잖아요? 사립학교법도 60%가 찬성하고 과거사 규명도 55%가 찬성하고 언론개혁법도 50%가 찬성하지 않습니까. 요즘 언론은 자꾸 사실을 무시하고 주장으로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니까요.

반대가 많다, 찬성이 많다의 문제가 아니라 분열의 정도가 더 문제이지요.

예전 군사독재 때에는 아예 체제를 부정할 정도로 심하지 않았습니까.

말이 나온 김에 과거 운동권 이야기로 넘어가지요. 얼마 전 민노당 권영길 의원 단식 농성장을 찾아 예상을 뒤엎고 선선히 사과를 해 주변을 놀래켰는데요.

권의원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친한 분입니다. 작은 사안에서 시작됐는데 추운 바닥에서 그러고 계시는 게 안쓰눗? 국민이 보기에도 안타까울 것 아닙니까?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과를 한 거지요.

 
그런데 한나라당에 사과하는 데에는 왜 그렇게 오래 걸렸습니까?


사실대로 조곤조곤 물어봤으면 저도 조곤조곤 대답하고 말죠. 근데 막 견강부회하면서 정치적으로 한 건 하려 드니까…. 정치적으로 한 건 하려 들면 제가 훨씬 프로지, 그 사람들이 프롭니까?

이총리도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때 고문을 당했지요?

그때 고문 안 당한 사람이 있었나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힘이 없어서 실컷 두들겨 맞은 게 뭐 자랑거리라고.

이철우 의원이 연루된 1992년 ‘중부지역당’ 사건을 수사할 때 고문이 있었는가를 놓고 양쪽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정형근 의원은 고문 사실이 밝혀지면 모든 공직을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고요.

정의원이 직접 고문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1980년대, 1990년대에 안기부나 남영동이나 치안본부에서 고문이 없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입니까. (갑자기 목소리 톤이 높아지면서) 제가요, 1980년도에 앉아 있지를 못했습니다. 하도 많이 맞아 허벅지가 퉁퉁 부어서 굽힐 수도 앉을 수도 없어서 누워서 엉덩이로 밀?다니면서 똥을 누고 그랬다구. 바깥으로 고문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졸나게’ 두들겨 맞은 이야기를 법정에서 하는 게 참 처량하더라구. 나중에 여기서 나가서 쫓아내고 몰아내면 되지, 뭐 그런 이야기를 하나 싶어서 고문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어요. 당시 고문은 지금은 상상도 못할 수준이었다구요.

그러다가 국정원 보고를 받는 총리가 되었으니 감회가 깊었겠군요.

총리 되고 나서 국정원장 공관에 가서 국정원장을 한번 만났어요. 교육부장관일 때도 한번 갔었구. 그러면 됐죠, 뭐. 서울시 부시장 할 때 안기부 남산 건물 인수하러 간 적도 있네요.

참, 정무부시장 시절에 나이가 훨씬 많은 고위 간부를 폭행한 전력이 있다고 얼마 전 한 월간지가 보도했는데, 사실인가요?

세상에는 정말 대꾸할 가치가 전혀 없는 그런 말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 사람이 그때 구타를 당했더라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본인은 가만히 있고 기자를 시켜 쓰게 하는 거잖아요.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주도하는 뉴라이트 운동을 어떻게 보시나요?


난 그 사람들 이야긴 자세히 안 읽어봐서 모르겠는데, 뉴라이트는 서양사상사에도 안 나오는 개념이예요. 레프트(좌파)가 현실성이 없으므로 새롭고 개혁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뉴레프트는 있지만. 집권을 위한 수사학이라면 몰라도 사회과학 용어가 되려면 엄밀한 학문적 검토를 거쳐야 하는데, 정치학 이론에도 그런 건 없다구요.

재야 선배인 김근태 장관, 친구인 정동영 장관을 내각에서 지휘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부담감을 느끼지는 않나요?

정치적으로 보면 내가 선배지요.(웃음) 정치에 훨씬 먼저 입문했고 정책을 훨씬 많이 다뤄왔잖아요? 또 선배를 지휘한다는 식의 관점은 봉건적 사고방식이예요. 사안 중심으로 풀어가는 거죠.

‘베를린 발언’ 이후 젊은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졌고, 정치권 주변에서 잠재적인 대권 주자로 급격히 떠오르고 있는데요.

저는 국가에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이지 대중적인 정치인이 아니라니까요. 원래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니고. 인기를 끌기 위해서 뭘 찍어 바르거나 그런 건 안한다니까요.

대중이 정책에 강한 인물을 선호할 수도 있잖습니까?

그렇지는 않을 걸요. 정책이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대중은 역시 찍어 바르는 걸 좋아하거든요. 정책은 까다롭고 골치 아프잖아요. 국민들이 뭐 일일이 새겨서 듣고 판단합니까?

주변에서 강제로 등을 떠민다면요?

당사자가 관심이 없는데요, 뭘.

그렇다면 현재 내각에서 공개적으로 대권 수업을 받고 있는 김근태·정동영 두 사람 중에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보시나요?

질문이 조금…(웃음). 대선은 긴 레이스 아닙니까? 결국은 진실하고 인내심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것 같더라구요. (두 사람 중) 누가 후보가 돼도 결과는 낙관적이라고 봐요. 1997년 대선은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간신히 이긴 것이고, 2002년도 상황은 굉장히 어려웠지만 1997년보다는 좀 나았습니다. 2007년은 시대 흐름으로 보면 2002년보다도 훨씬 좋아지는 상황이거든요. 이길 가능성이 더 높지요.

경제가 워낙 바닥이어서 집권당에 불리한 측면도 있지요.

아니, 경제는 문제가 안돼요. 그때 가면 사이클상 경제는 좋아져요. 남북 관계라든가, 동북아 평화 구조라든가, IT 인프라가 많이 깔린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문화라든가, 다원적 민주사회의 가치관이라든가, 그런 시대적 흐름을 잘 받아들이면서 진실하게 가는 사람이 결국은 될 겁니다.
인상이 너무 차가워 보인다, 가팔라 보인다고들 하는데 억울하지는 않습니까?

실제가 그런데, 억울할 게 뭐 있어요. 사실을 이야기하는 건 얼마든지 좋다니까요.

새해부터 정부가 개혁에서 실용주의 노선으로 방향을 크게 튼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개혁에서 실용으로 튼다구요? 왜들 그렇게 사고가 이분법적인지. 개혁과 실용은 모순되거나 대척점에 있는 게 아니예요. 다산 정약용을 실용주의자로 보기도 하고 개혁주의자로 보기도 하잖아요.

노대통령과 이총리는 개혁주의자와 실용주의자의 면모를 동시에 갖고 있어 가끔 주위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것 같습니다.

실용주의란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나 과정이고, 개혁은 철학 아닙니까? 개혁과 실용은 서로 창이 다른 문제라구요.

친미와 반미를 오락가락하면서 이라크 파병과 연장을 결심한 현정권이야말로 일관성을 결여한 철학이 없는 정권이라는 비판론도 나오는데….

학자들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국가 일은 여러 모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여러 차례 의총을 열어가면서 오랜 고민과 숙의 끝에 힘들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파병으로 6자 회담을 비롯해 도움받는 게 얼마나 많습니까? 개혁 마인드로 접근할 일과 실용 마인드로 풀어갈 일이 따로 있습니다. 외교를 개혁으로만 접근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홍석현 회장을 주미대사로 임명한 것도 그런 차원인가요? 총리가 ‘베를린 발언’ 때 조·중·동 중 유독 중앙일보에 대해서만 호평했던 대목이 다시금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베를린 발언은 같은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가 아니예요. 중앙일보는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남북 관계를 풀어갈 적에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사주 본인이 방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과 동아는 ‘퍼주기’라면서 남북 관계 풀어가는 걸 줄기차게 반대했잖아요? 그걸 말한 자리였지요.

노무현 정부와 삼성 간의 밀월의 결과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 건 전혀 아니고. 한승주 대사가 학교로 돌아가 정년을 맞고 싶다는 입장을 표명한 뒤 어떤 분을 보낼까 굉장히 다각도로 고려했어요. 커리어 출신을 보낼까, 정치적 의미가 있는 사람을 보낼까 종합적인 검토 끝에 커리어 출신이 미국 대사로는 적합치 않다는 결론을 내린 거지요. 홍회장은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인물 아닙니까.

인사 비리 수사를 둘러싼 군 내부의 갈등이 수습되기는커녕 커져가고 있습니다. 청와대의 오락가락 행보가 사태를 악화시킨 게 아닌가요?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바뀌는 전환기라는 걸 많이 느꼈는데요. 예전부터 군 인사는 민간 기업처럼 승진 인원의 2배수 정도를 추천해서 고르는 게 아니라 필요한 정원에 약간 더 얹어서 하는 식으로 해왔다구요. 이번에도 그렇게 한 거지요. 근데 젊은 축으로 구성된 군 검찰의 시각에는 이게 다 불합리한 것처럼 비쳤고, 수사에 착수해 보니까 방식상 좀 합리적이지 못한 점도 발견된 것 같아요. 군 검찰이 그걸 좀 크게 생각한 거지요. 우리 세대만 해도 웬만하면 내부적으로 문제 삼고 말 텐데, 요즘에는 그걸 자꾸 외부로 표출하지 않습니까? 어느 한쪽이 크게 잘못했다기보다는 기준이 좀 엄격해지고 투명해지는 변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마찰이라고 봐야지요. 요즘 선거법으로 유죄 판결을 받는 걸 보세요. 16대 때라면 별 문제도 안될 사안들이 의원 직을 박탈당하는 사유가 되지 않습니까?

어쨌든 이 정권에 우호적인 사람들조차 아마추어리즘에 대해서는 고개를 내젓습니다.

제가 봐도 미숙한 대목이 없지 않아요.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신문 보도 때문에 국민들에게 잘못 전달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가령 공교육이 다 무너지고 운동장이 금방 꺼질 것처럼 보도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교육평가에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피사나 팀스의 조사에서 우리 아이들이 항목마다 2등, 3등, 심지어 문제해결 능력에서는 1등으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객관성을 잃은 보도를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조기 유학을 떠나고 기러기 아빠가 되었습니까? 외국 가서 얼마나 고생하고 실패를 많이 했습니까?

이정우 위원장과 이헌재 부총리간 충돌이나 이부총리와 김근태 장관의 갈등처럼 정부 내에서도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인 건 사실이잖습니까?

이정우 위원장이 말을 잘했데요. 청와대는 등대이고 선장은 부총리라고. 등대지기가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거지 그걸 왜 못해요. 그런 걸 두고 청와대하고 부총리가 막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도하고. 연·기금 문제만 해도 그래요. 국민연금의 안정성을 지켜야 하는 주무장관 입장에서야 당연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고…. 내부에서는 얼마든지 토론해볼 수 있는 거예요. 다만 김장관이 그걸 부처 홈피에 올렸다는 게 절차상에 문제가 좀 있었던 정도지, 그걸 갖고 정부가 금방이라도 붕괴될 것처럼 대서특필하니…. 예전에도 부지기수로 있었던 일인데 다른 큰일이 없으니까 기삿거리가 되는 거예요. 차라리 옛날처럼 장관·차관들이 권력형 비리로 막 잡혀가야 해.

보수 언론에서는 독재정권 때보다 더 하다는 이야기도 나오는 판입니다.

(기가 막히다는 듯 웃으며) 죽을 지경이겠지요. 부수도 늘지 않고 광고도 안 들어오고…. 우리가 탄압하는 게 아니잖아요. 시장으로부터 여러 어려움을 겪는 것이지. 광고를 왜 자꾸 인터넷판에 뺏깁니까? 무가지에 뺏깁니까? 자신들이 왜 인기가 없고 광고 시장이 자꾸 딴 데로 옮겨가는가를 잘 생각해 봐야지요.

하여간 새해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경제이고, 가장 큰 기대 또한 경기 회복입니다. 2005년 하반기부터 경제 호전 기미가 서서히 느껴질 거라고 언급했는데, 특별한 부양책은 안 쓴다면서요?

2004년 하반기부터 처지기 시작하면서 계속 하강 국면으로 가고 있습니다. 2005년 1/4분기도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아요. 2/4분기가 좀 나을지 비슷할지? 3/4분기에 들어서면 조금은 나아질 겁니다. 여러 선행 지표들로 비추어 보아 그렇습니다. 근거 없는 장담이 아니고.

‘그는 인사만 잘해도 금배지를 단다’는 한국 정치권에서 참으로 특이한 존재다. 무리 지어 다니기를 즐기지 않고, 청탁이나 부탁이 안 통하는 인물로 소문 난 사람이다. 인사 치레로 빈 말 한번 건네는 법이 없다. 정치를 접을 뻔했던 평민당 탈당 파동에서 보듯 ‘아니면 말고’ 식으로 배짱껏 정치를 하고 살았다. 대중 정치인이 아니라면서도 크고 작은 선거 기획은 도맡았고, 비정치적인 처신으로 일관하면서도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총리 직에까지 올랐다. 입신양명의 비결을 물었더니 도리어 질문하는 이의 세속적 관점을 비웃는다.

“크크크. 너무 세속적인 질문인데. 영화? 만인지상? 이 시대의 정책을 조율해 가는 데 우리가 살아온 경험, 경력이 필요했던 게 아니겠어요? 총리라는 게 예전처럼 어마어마한 감투가 아니잖아요? 제가 큰소리 좀 쳤다가 얼마나 당했습니까?(웃음) 예전처럼 치부를 할 수 있습니까? 그냥 하는 일일 뿐이지.”

그는 국민들께 고마움을 느끼는 한 가지는 총리 공관의 정원이 너무도 품위 있고 아름다운 점이라고 덧붙였다. 단풍 들면 든 대로, 낙엽 지면 진 대로 아름다워서 이런 즐거움을 누리는 것에 값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려고 생각한단다.

돌이켜보면 그는 재기발랄한 초선 의원일 때나, 원내총무나 정책위원장으로 일할 때나, 교육부장관일 때나 한결같았다. 겸손해서라기보다는 계급장과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만큼 ‘쿨’하기 때문인 듯싶다. 대중정치인이 못 된다고 스스로 규정하는 것도 ‘쿨한 성격’ 때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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