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 정책=내수 부양’ 될까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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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재정 확대·세금 감면으로 ‘승부수’…가계 부채·신용불량자가 걸림돌
2005년 한국 경제를 결정하는 변수는 두 가지다. 정부의 종합투자계획(한국판 뉴딜)과 가계 부채. 한국 경제 흐름을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두 변수의 힘겨루기가 한 해 살림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재정확대 정책을 펼쳐 민간 소비와 투자를 유도해 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가계 부채 5백조원과 신용불량자 3백60만명이라는 지표에서 볼 수 있듯이 소비를 위축시키는 변수들이 내수 부양책의 효과를 비관케 한다.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대내외 경기 변수는 두 주요 변수를 축으로 상응하거나 대치하면서 경기 흐름에 변화를 줄 것이다.

뉴딜 정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인가

2004년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수출 성장률이 교역 환경 변화로 인해 둔화하고 있다. 이제 내수 활성화 없이는 경제성장률이 4%를 넘기 힘든 형편이다. 참여정부의 올해 정책 기조가 ‘내수 부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헌재 경제 부총리는 지난 11월 연·기금과 민간 유휴 재원 10조원 안팎을 투자하는 종합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민간 소비와 기업 투자가 정체 내지 위축되고 있어 정부가 적극 나서서 민간 소비와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한국판 뉴딜 정책에 대한 쓴소리가 나온다. 앤디 시에와 샤론 램 모건스탠리 이코노미스트는 ‘한국경제 활성화’라는 보고서에서 ‘10조원(GDP의 1.3%)이 드는 한국판 뉴딜 정책은 경기 둔화를 막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는 한국이 4년 연속 재정 흑자를 기록했고 순수 대외채권국이므로 더 큰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 심리를 짓누르는 변수가 지난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정부 대책을 무력하게 만든 것을 감안하면 이 지적은 공감을 얻고 있다. 지금과 같은 심리적 공황 상태에서 10조원은 ‘언 발에 오줌누는 격’이라는 평가다.

재정경제부는 10조원을 우물물을 폄프질해 올리기 위한 ‘한 바가지 물’이라고 주장한다. 한국판 뉴딜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민간 소비와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필요한 자극을 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과거 경기부양책이 경제 활성화는커녕 재정 적자 폭을 늘리고 물가 상승을 부추겼다는 선례를 부담스러워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재원 확보가 쉽지 않다. 정부 빚이 눈에 띄게 늘고, 국민연금을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은 주무 부처 장관이 반대한다.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다. 재경부는 주어진 조건에서 최대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 재원이 부족하면 금리 인하와 세제 감면을 추가로 단행해 정책 효과를 높이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내수 부양책의 가장 큰 걸림돌은 5백조원까지 불어난 가계 부채다. 지난해 도시근로자 가구의 부채 상환액은 소득의 25%나 된다. 가계 소득 4분의 1을 빚 갚는 데 쓰고 있는 형편에서 소비를 늘리기란 쉽지 않다. 2000~2002년 해마다 35%씩 늘어나던 가계 부채는 2003년부터 2~3% 느는 데 그쳤지만, 가계 부채는 2006년 하반기에나 적정 수준으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가계 부채가 2005년에도 소비를 위축시킬 강력한 변수인 것은 이 때문이다.

가계 부채와 함께 소비를 짓누르는 또 다른 변수는 신용불량자다.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 소득이 늘어날 수 없어 신용불량자 수가 크게 줄어들기 어렵다. 2004년 신용불량자 수는 2003년보다 1.6% 줄어드는 데 그쳐 3백60만 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가 내수 경기를 회복하기 위해 제시한 세부 대책이 일자리 40만개 창출과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이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5%로 잡고 있는데, 정부가 5%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일자리 40만개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다시 말해 일자리 40만개를 만들지 않으면 내수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5% 성장이 불가능해지고, 청년 실업 악화와 실업률 증가로 이어져 사회 불안 요인이 될 소지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카드는 벤처 활성화 대책이다. 벤처 기업 수는 2002년부터 크게 줄어들고 있다. 2001년 말 1만1천4백 개이던 벤처 기업 수는 2002년 8천7백78개, 2003년 7천7백2개, 2004년 7천4백33개로 떨어졌다. 벤처 기업은 평균 44.1명을 고용하고 있다. 일반 중소기업(9.2명)보다 4배 이상 높다. 정부가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크게 늘릴 방안으로 벤처 활성화를 선택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2월24일 획기적인 세금 감면책을 내놓았다.

벤처 기업은 2004년 내내 정부에 정책자금·신용·금융 지원을 늘려 달라고 요구해왔다. 이에 정부는 올해부터 3년 동안 벤처 기업이 금융기관에서 빌리는 자금 10조2천5백억 원을 기술신용보증기금을 통해 보증하겠다고 밝혔다. 또 산업은행과 중소기업은행은 총 4천억원 규모로 벤처 기업 투자 펀드와 ‘벤처 전용 사모펀드(PEF)’를 조성한다. 벤처 대책은 업계 요구보다 더 과감한 조처를 포함하고 있어 어느 정도 구조 조정이 마무리된 벤처 업계에 활력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벤처 대책이 단기 대책이라면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작업은 성장 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중·장기 대책이다. 정부는 2004년 디지털 텔레비전, 미래형 자동차, 지능형 로봇, 차세대 반도체, 디지털 콘텐츠 등 10대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을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차세대 성장산업은 기업이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 형성을 주도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정부는 올해 차세대 성장 산업에 대해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기존 주력 산업인 자동차·석유화학·반도체 산업이 전반적으로 과잉 설비로 고심하고 있어 투자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기존 산업을 대체할 미래 주력 산업이 나오지 않으면 성장 잠재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책 일관성, 선택과 집중 절실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부실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 조정, 창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혁, 개방과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가 필요하다. 정부는 올해 서비스산업을 활성화하고 중소기업 발전을 위한 종합 대책을 세우는 한편 갖가지 규제를 철폐하고 노령화 대책을 실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책 사이에 연계성 없이 종합 선물 세트처럼 나열하는 선에 그쳤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무색하게 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에 ‘올인’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는가 하면 경제 정책 조율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경제정책수석을 부활시켰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경제에 각별하게 신경 쓴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관건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2004년에는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이정우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장이 주요 경제 정책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바람에 경제 주체들이 정부의 정책 기조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워했다. 노대통령은 올해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부처 사이에 벌어지는 이견과 갈등을 정리해 정책의 일관성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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