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 자세로 내공 키운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5.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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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풍류도, ‘입선’으로 기 단련…밝 사상과 <천부경> 베일 벗긴 고조선 명상수련법
명상이라고 하면 대개는 좌선(坐禪)을 떠올린다. 불교의 참선이나 인도의 요가 그리고 단전호흡 단체들이 좌식 수련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좌선을 금기시하며 입선(立禪)만을 고집하는 곳도 있다.

서울 광화문 경희궁 터. 매주 수요일 오후 6시(일요일은 오후 5시)면 왼쪽의 숲 속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인사동 노상불(路上佛)’로 유명한 원광선사의 지도 아래 풍류도라는 고유 무술을 수련하는 이들이다. 사부에게 예를 올리고 가볍게 몸을 풀고는 곧바로 ‘자세’를 잡는다. 기본은 태공유수(太空有水)라는 자세다. 두 발을 어깨 너비로 벌려 자연스럽게 선 뒤 오른쪽으로 45° 정도 튼다. 오른발은 그대로 두고 몸은 다시 45°를 더 튼다. 이때 왼발은 뒤꿈치를 가볍게 들고 몸을 따른다. 두 팔은 눈 높이에 이를 때까지 쳐들고 두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쥔다. 팔은 가급적 쭉 펴고 양 주먹은 자기 주먹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간격을 유지한다. 양 무릎은 가볍게 구부린다.

전체적으로 엉거주춤하다. 누가 보면 벌쓰고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원광선사는 이를 등산세(登山勢), 또는 ‘삼천갑자동방삭이 고기를 낚기 위해 그물을 던지다가 멈춘 자세’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실제 자세를 잡아보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초보자는 10분, 점차 익숙해지면 30분, 40분, 1시간 등으로 시간을 늘려 잡는다. “태공유수는 기혈의 유통을 원활하게 해주며 굳어진 몸을 풀어주는 최상의 건강법이다”라고 원광선사는 강조한다.

기혈이 흐르는 순서 역시 좌선과는 매우 다르다. 좌선은 주로 하단전에 기운을 모아 전신으로 유통시키는 주천 수련이 일반적이다. 태공유수에서는 기운이 상하중천의 순서로 흐른다고 한다. 먼저 의념을 통해 상단전에 기운이 모이고 그 기운이 하단전으로 내려가 수기(1.6 水)를 형성한다. 이 수기가 중단전(오장육부)으로 올라가 심장의 화기(2.7 火)를 끄고, 다시 머리의 통천혈로 올라가 뇌혈을 풀어준다고 한다. 또한 땅을 밟고 섬으로써 지기가 발바닥의 용천혈을 타고 손바닥의 노궁혈로 흐르고, 단전에서 명문으로, 새끼손가락 끝의 심해(心海)에서 머리 위의 통천으로, 그리고 손목 안쪽의 내관에서 바깥의 외관으로 흐르며 탁기를 뽑아내고 진기를 형성한다.

몸 안의 ‘노선(路線)’을 따라 기운 유통이 활발해짐에 따라 마치 ‘백두산의 낙락장송이 태극의 형상으로 비틀어지듯’ 몸이 이완된다. 기감이 둔한 사람도 3개월이 지나면 변화를 느낀다. 사람에 따라 가지각색이지만 여기에도 법도가 있다. 먼저 두 주먹의 위치가 춘하추동 네 자세로 틀어지고, 다시 동파 역파 등으로 계속 이어진다.

태공유수는 고조선 풍류도의 대표적인 자세이다. 이밖에도 반태신공(半太神功) 동자탑파(童子塔坡) 고족신명(高族神明) 등 72 자세가 있다고 한다. 이처럼 입선을 통해 내공을 키우고, 기운이 쌓이면 권법이나 검·봉 등의 외공으로 그 기운을 풀어내는 것이 전체적인 수련 체계이다.

원광선사가 좌선을 금기시하며 입선을 유독 강조하는 것은 스스로 좌선의 폐해를 많이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랫동안 앉아 있음으로 해서 다리의 기혈이 막히고, 지기를 받지 못하고 천기만 받음으로써 주화입마에 걸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는 것이다. 정통 수련에서 좌선은 무릎 꿇고 앉는 정도가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 원광선사의 주장이다.

“인도는 날씨가 더워 앉아서 몸을 꼬았지만 고조선은 춘하추동 사계가 뚜렷해 서서 몸을 꼬았다”라고 말하는 그는, 인도의 좌선 수행과 고조선의 입선 수련을 석가와 미륵불에 비유해 설명하기도 했다. 즉 인도에서 도를 깨친 석가가 주로 앉아 있는 형상이라면, 우리 전통 신앙을 대표하는 미륵불은 항상 서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풍류 도인들이 항상 서서 수련을 하였다 하여 고구려 시대에는 이를 목인(木人)이라고 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태종이 고구려 안시성 성주인 양만춘이 7~8 시간을 서서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마치 목인을 보는 듯하다고 찬탄했다’는 말이 전해져 오기도 한다.“좌선은 더운 나라 인도의 산물…입선이 한국 고유 수련법”

원광선사는 자신이 전하는 풍류도를 위의 선대로부터 사제 전승으로 내려온 ‘구전도학(口傳道學)’이라고 겸양해 표현한다. 그러나 옛 문헌에서 풍류도에 대한 기록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치원이 난랑비서문에서 ‘國有玄妙之道曰風流 包含三敎(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고 한다. 유불선 삼교를 포함했다)’고 한 말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밖에 광개토대왕비문에 동명왕이 태자에게 ‘도로써 정치를 일으키라(以道興治)’고 했다는 말이 나오고, <삼국사기> 진흥왕편에도 ‘나라를 왕성하게 하려면 먼저 풍월도를 일으켜야 한다(王又念欲興邦國須先風月道)’는 표현이 등장한다.

문제는 원광선사가 사제전승으로 전하는 지금의 풍류도가 바로 그 도인가 하는 점이다. 이 점은 태공유수의 의념 수련과 우리 전통의 밝사상, 그리고 <천부경> 등의 관계를 풀어보면 단서를 잡을 수 있다. 태공유수 역시 의념 수련을 병행한다. 즉 두 주먹 사이에 마음 속으로 태양을 그리고 그 기운을 끌어당긴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이때 오른손은 태양[日]의 기운이요 왼손은 달[月]의 기운이다. 이 둘이 합쳐져 일월(日月)이 되고 밝음[明]이 된다. 이처럼 몸 안에 형성된 밝은 기운을 ‘명천지기(明天之氣)’라고 하며, 이 기운으로 인성의 어둠을 뚫고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神性)을 깨닫게 되는 형이상학의 길로 나아간다. 삼일신고에서 말하는 ‘자성구자 강재이뇌’(自性求子 降在爾腦;신이 이미 머리 속에 내려와 있으니 밖에서 구하지 말라) 또는 동학의 인내천, 19세기 최한기의 ‘천인운화(天人運化)’가 모두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태공유수의 이 수련법은 밝사상을 비롯한 우리 전통 사상의 조종인 환웅(桓雄)의 환(桓 밝을 환)자를 연상시킨다. ‘桓’자는 ‘하늘(-)과 땅(_) 사이에 나무(木)처럼 서서 태양(日)의 기운을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천부경>에 표현된 ‘태양앙명 인중천지일(太陽仰明 人中天地一)’ 역시 이 ‘桓’자를 부연 설명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태공유수를 열쇠로 하였을 때 밝사상과 <천부경>에 숨어 있는 고조선 명상법의 진면목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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