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천국’에 이르는 길
  • 이시형 (한국자연의학 종합연구원 원장) ()
  • 승인 2005.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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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문제는 건강 장수이다. 병을 예방하는 데 명상만한 명약은 없다. ‘왜 명상이냐?’는 물음은 이미 늦다. 이제는 ‘왜 아직 명상을 안하느냐?’고 물어야 한다.
더 쾌적한 삶을 향한 인간의 집념은 끝이 없다. 최근의 웰빙 붐도 그 중의 하나이다. 건강만이 아니고, 더 나은 삶의 질까지 추구하고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건강식과 운동에 거의 강박적이다. 엄청난 돈과 시간과 정력을 기울인다. 덕분에 건강도 좋아졌고 삶이 윤택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도 어딘가 허전하다. 그리고 건강도 생각만큼 잘 되질 않는다. 왜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음 탓이다. 마음이 허전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체적·사회적·정신적 건강에 최근 영적 건강까지 추가한 것도 그래서이다.

이제 우리 나라도 당당히 장수국 대열에 끼였다. 문제는 건강 장수이다. 평균 수명이 겨우 62세로 세계 81위다(세계보건기구 2002년 자료). 그만큼 건강하지 않은 노인이 많다는 뜻이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지금의 노인은 장수 제1 세대여서 장수에 대한 개인적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다. 게다가 나라 살림은 열악하고, 자녀들의 효도를 믿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노인 의료비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더 오래 사는 노인은 늘어가는데 쉰 살 안팎이면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실상이다. 정년은 사회적 건강에 치명타로 작동한다. 뿐만 아니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급격히 늙어가서 끝내 노인병으로 진전한다. 실제로 부자 나라가 많은 유럽의 복지 천국에서도 노인 의료비로 인해 나라 재정이 흔들린다. 노인병은 끝이 없다. 그리고 치료비도 더 든다.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문제 없습니까? 미래에 자신이 있습니까? 돈이 없어도 건강만 하다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 늙을 준비를 잘해야 한다. 장수하되 건강해야 한다. 물론 음식 조심도 하고 규칙적 운동도 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최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건강장수학회의 권고 사항은 세 가지다. 첫째 긍정적 마음, 둘째 규칙적 운동, 셋째 금연과 절주다. 이 가운데 긍정적 마음이 건강 장수에서 7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밝고, 여유 있고, 용서하고, 감사하고, 배려하는 등의 긍정적 마음이 건강을 지켜주는 핵심 요인이라는 것이다. 건강식은 여기에 끼지도 못한다.

문제는 이 각박하고 빠른 세상에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해답은 명상이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하지만 명상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평화는 대단하다. 어쩌면 지구상에서 명상을 가장 필요로 하는 민족이 한국인일 것이다.

우리의 조급증은 병적이다. 급하고 거칠고 격하고 때론 파괴적이다. 우리 사회를 이렇게 격변의 파도에 휘말리게 하는 원흉이 조급증이다. 안전사고, 교통사고, 온갖 사회 부조리, 한탕주의, 타협할 줄 모르는 다혈질 등 한국 사회의 정신 병리는 한마디로 조급증 탓에 생긴 것이다. 오죽하면 외국에서도 한국 관광객을 ‘빨리빨리’라고 부를까.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 안정감이 없다. 언제나 쫓기는 사람 같다. 이런 상태에서 건강하다면 기적이다.암·당뇨병 등 생활습관병은 모두 조급증에서 비롯

동물이 쫓기면 대뇌에서 공격성 호르몬이 분비되어 교감 신경이 흥분한다. 이 때문에 혈압·뇌압이 오르고 숨이 거칠어지고, 맥박이 빨라진다. 팔다리가 떨리고 내장 운동은 정지된다. 작은 일에도 신경질을 낸다. 이쯤 되면 세계에서 제일 높은 한국의 뇌졸중 발병률이 이해되지 않는가. 심장병·당뇨병·암·고혈압 같은, 이른바 생활습관병은 모두 조급증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지금도 습관적으로 바쁘다. 회전문을 한 바퀴 놓쳤다고, 엘리베이터가 늦는다고 땅을 치는 게 우리다.

이런 상황에서 여유 있는 긍정적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럴수록 여유를 되찾아야 한다. 한국만이 아니다. 온 세계가 지금 명상 붐이다. 심신을 수련하는 방법으로 인도의 요가, 중국의 기공, 한국의 명상이 있다. 실제로 요가·기공이 무서운 속도로 세계인을 파고들고 있는데 명상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한국은 아직 깜깜하다. 오히려 외국 수련법이 기세 좋게 밀려 들어오고 있다. 더욱 ‘웃기는 일’은 미국식 명상이 거꾸로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들어 왜 명상이 필요하고, 왜 명상을 앞장서서 실천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일찍이 토인비는 20세기 큰 변화의 하나로 ‘불교의 서양 전파’를 꼽았는데, 20세기 말에 접어들어 불교뿐 아니라 명상 전통까지 서양에 소개되고 있다.

물론 기독교·유태교에서도 오래 전부터 묵상을 해왔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일이었고, 불교나 힌두교의 참선처럼 불가결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에 명상 붐이 급속히 확산되어, 그 효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논문만 수천 편에 이른다. 미국 대통령위원회에서는 1990년대를 ‘뇌의 시대(decade of brain)’라고 선포할 만큼, 뇌에 대한 인식이 일반화했다, 과학적 근거 없이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 미국인들 사이에 명상 붐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기가 바뀌면서 그간 품어왔던 산업 사회와 경쟁 사회에 대한 회의와 함께 명상이 대중화한 것이다. 명상은 가장 유쾌하게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

더 크게, 더 높이, 더 많이, 더 빨리, 더 좋게…. 이 시대의 무한 경쟁이 인간에게 준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회의가 세기를 마감하면서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를 몰고온 것이다. 물질 문명에서 정신 문명으로, 기계에서 인간으로, 개발에서 자연으로, 빠름에서 느림으로, 동(動)에서 정(靜)으로…. 이런 운동이 명상과 함께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왜 명상이냐?’는 물음은 이미 늦다, 오히려 ‘왜 아직 명상을 안 하느냐?’고 물어야 한다. 이 바쁜 세상에? 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분명히 말하지만, 바쁘기 때문에 명상을 해야 한다. 명상이 가장 유쾌하고 상쾌하게 시간을 절약하는 법이다. 왜냐하면 단 몇 분(分)의 명상으로도 마음을 가뿐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여유로울 때, 작업 능률이 향상된다.

‘명상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이런 의문도 당연히 들 것이다. 하지만 해보지 않고 그런 소리 하면 안된다. 명상을 몇 분 한다고 사람 죽을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내게 그런 재능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명상을 하는 데에는 재능이나 지능, 학력, 경력이 일절 필요 없다. 그리고 우리가 하려는 명상은 스님들이 하는 대단한 경지의 참선하고는 다르다. 단순한 생활 명상이다.

명상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가 내 마음을 컨트롤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제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마음이다. 좋은 기억은 잠시이고, 생각하기 싫은 기억은 계속해서 떠오른다. 아내 생일은 잊어버려도 초등학교 때 교실에서 오줌 싼 이야기는 왜 그렇게 기억되는지. 생각할 적마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주가가 떨어져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 사람을 죽인 것은 주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들은 내 불행을 온통 남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지만, 똑같은 일을 당하고도 쉽게 잊어버리고 용서하고 툭 털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우리 마음은 우리에게 냉혹한 폭군이다. 계속 잔소리하고 꾸짖고 걱정하고 도대체 우리를 편하게 놓아두지를 않는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것도 내 마음이고 살찔까 걱정하는 것도 내 마음이다. 그 마음을 좀 잘 달래보자는 것이 명상이다.

이래도 명상을 하자는 데 이의가 있습니까?

■ 이시형 박사는 누구인가:193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고려병원 원장,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 부장을 거쳐 현재 동남의원(서울 서대문)에서 진료하고 있다. <배짱으로 삽시다> 등 베스트 셀러를 펴냈으며, 3년 전부터 명상에 심취해왔다. 현재 강원도 홍천에 숲속의 병원이라 할 수 있는 명상 센터 ‘세상바깥집’을 짓고 있으며, 올 가을부터 그곳에서 활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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