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삼키는가 발암 물질 먹는가
  • 오윤현 기자 (noma@sisapress.com)
  • 승인 2005.03.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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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유발하는 독성 인자 갈수록 증가 추세, 식품 등에 포함된 유해 물질 접촉 줄여야

 

 
지난 2월 초, 미국방사선학회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보건후생부가 발표한 새로운 발암 물질(17개, 표 참조)에 X선과 감마선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방사선학회는 환자가 X선과 감마선 촬영을 기피할 우려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보건후생부의 입장은 명확했다. 실제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X선과 감마선에 자주 노출되면 백혈병·갑상선암·유방암·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2월 중순에는 영국의 식품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4백70개 이상의 식품에서 사용이 금지된 붉은색 색소 ‘수단Ⅰ’이 발견된 것이다. 뒤늦게 영국 식품기준청은 수단Ⅰ이 들어간 컵라면·피자·파이 ·샌드위칟소시지·즉석 스프 등 식품 2천억 원어치를 긴급 회수했다. 수단Ⅰ은 비교적 최근에 밝혀진 발암 물질로, 영국에서는 2003년 7월부터 사용을 금하고 있다.

 3월 초, 이번에는 한국의 햄 소시지 시장이 술렁거렸다. 대부분의 햄 소시지에 든 아질산염이, 햄 소시지를 자주 섭취하는 3~6세 아이들에게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터져 나온 탓이다. 아질산염은 육가공품에 붉은색을 내는 발색제로,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면 혈관 확장·헤모글로빈 기능 저하 증세가 일어난다. 또 동물 실험에서 니트로조아민이라는 발암 물질을 생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미국·영국·한국에서 잇달아 터진 발암 물질 소동은 현대인들이 얼마나 심각하게 발암 물질에 노출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발암 물질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다. 대기·물·흙·식품 등에 널리 퍼져 있는 탓에, 그 위험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경고되어 왔다. 홍원선 교수(서울중앙병원·내과)에 따르면, 인체의 암은 70~80%가 발암 물질에 의해서 발병한다. 특히 식품에 들어 있는 발암 물질이 치명적이다.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암의 3분의 1이 식품과 관계가 있을 정도이다. 

 국제암연구소(WHO 산하 기관)와 미국 국립암협회지가 작성한 암 발병 원인 목록(표 참조)을 보아도 거의 모든 암이 발암 물질에 의해 발병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역시 가장 무시무시한 발암 인자는 식품으로, 전체 암 원인의 30~35%를 차지했다. 흡연도 적지 않았지만(15 ~30%) 식품에는 미치지 못했다. 유전은 그보다 더 적어 5~7%였다.

 국립암센터가 발표한 국내 주요 암의 발병 원인은 좀더 구체적이다. 위암은 역시 식생활(특히 짜거나 탄 음식)이 가장 심각한 원인이었다. 폐암과 간암은 각각 흡연과 간염 바이러스(B형·C형)가 가장 골치 아픈 문제였고, 대장암과 유방암은 고지방 식사가 가장 유력한 인자로 꼽혔다(표 참조). 

 발암 물질은 크게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물질(A)과 동물에게서는 발암이 확인되었지만 인체에서는 덜 확인된 물질(B1)로 나뉜다. 식품에서 발견되는 A 물질은 한둘이 아니다. 소금·헤테로사이클릭아민(이종환식아민)·알코올·지방질·니트로소아민·아플라톡신 등이 특히 널리 알려져 있다.

 니트로소아민은 채소·무·상추·샐러리·시금치 등에 들어 있는 질산염이 입안의 침과 장의 박테리아에 의해 아질산염으로 변한 뒤, 다시 그 물질이 여러 화합물과 반응해 생성되는 물질이다. 이 물질의 종류는 약 3백 가지가 되는데, 동물 실험 결과 90%가 발암 물질로 판명되었다. 그 중에서도 위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아질산염은 어류·육류에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72%가 채소를 통해서 유입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금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위점막 세포의 탈카르복실 효소를 활성화해 위암 발병률을 높인다. 아플라톡신은 고온과 고습에 의해 부패한 콩과 땅콩에서 검출되는데, 아스페르질루스라는 곰팡이의 배설물로 알려져 있다. 이 물질은 매우 독성이 강하며, 간암과 간염 같은 간질환을 유발한다. 또 고온으로 조리해도 잘 없어지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지방은 담즙산(酸) 생성에 영향을 미쳐 대장암 발생률을 높인다. 특히 여성의 몸에서는 호르몬 분비에까지 영향을 미쳐 유방암 발병을 증가시킨다.

 
헤테로사이클릭아민은 육류를 구울 때 단백질이 분해되면서 생기는데, 아주 강력한 돌연변이 인자이다. 이 물질은 더러 불에 구운 소고기·어류·토스트·감자·튀김·커피에서도 검출된다. 최중국 교수(충북대 종양연구소장)는 특히 숯처럼 검게 탄 부분에 이 물질이 많이 있다며 “육류를 안전하게 즐기려면 가급적 푹 삶아먹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발암 물질로 알려진 무기비소는 김·다시마·미역 같은 해조류에서 일부 검출된다. 이 물질은 간·피부·순환기계 등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피부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드뮴과 납은 특이하게도 대기·수질·식품 등 모든 매개체를 거쳐 인체에 들어온다. 납은 전지와 전선 피복, 연료 첨가제·페인트·유리 등에도 포함되어 있다.

 두 물질은 주로 신장·생식 기능·신경 등에 악영향을 주는데, 납은 특히 위암과 폐암을 유발한다. 국립독성연구원 이효민 과장(식의약품 위해성과)은 “카드뮴의 경우 호흡기를 통해 노출되면 폐와 기관지에 종양이 생길 가능성이 높으며, 입을 통해 흡입되면 신장·소화기계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간혹 지하철에서 다량 검출된다는 라돈도 강력한 발암 물질이다. 라돈은 생성 과정이 비교적 복잡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토양이나 암석 등에 함유된 우라늄이나 토륨이 붕괴하면 라듐이 되고, 라듐이 붕괴하면 바로 라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석면 슬레이트, 시멘트 콘크리트 등으로 만들어진 실내 공간에서 주로 검출된다. 역학 조사 결과, 이 물질은 폐에 들어가 염색체 돌연변이를 일으켜 폐암을 유발했다.     

 
석면·알코올·담배 연기·소금 등은 널리 알려진 발암 물질이다. 석면은 건축 자재에 함유된 경우가 많아, 특정 직업(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폐암 발병률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금은 위점막 세포의 탈카르복실 효소를 활성화해 위암 발병률을 높인다. 알코올과 담배 연기에 포함된 화학 물질은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강력한 발암 인자이다. 햇빛도 유명한 발암 물질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피부 세포의 유전자들을 손상시켜 흑색종을 일으키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커피이다. 커피에는 수백 가지 돌연변이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한 연구에서는 커피 한 잔에 든 돌연변이 물질이 담배 한 개비에 든 것보다 50배나 많다는 것이 밝혀졌다. 새로 만든 커피에 함유된 메틸글로옥살은 쥐 실험에서 발암 물질로 판명되었다. 일부 커피에서는 강력한 발암 물질로 알려진 벤조피렌이 검출되기도 했다(그러나 홍원선 교수는 커피 속에 암을 예방하는 클로로겐산과 폴리페놀계 물질이 있어, 전체적으로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더 강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발암 물질은 어떻게 암을 유발할까. 최근 들어 분자생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진보하고 있지만, 아직 암 발생 기전은 명확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몇 가지는 추측할 수 있다. 예컨대, 발암 물질은 매우 다양한 화학 구조를 가지고 있고, 그 자체로는 물에 잘 녹지 않는다. 그러나 인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어떻게?  인체의 정상 세포에 존재하는 DNA나 RNA 그리고 단백질에 공유 결합을 형성해, 이들의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켜 암을 유발하는 것이다. 반면, 간접 발암 물질 들은 반응성(영향력)이 약해 직접 암을 유발하지 못한다. 대신 그 물질들은 간세포에 존재하는 특수한 P450 효소계에 의해 대사되어 활성화한 뒤, 그 힘을 이용해 인체에 강한 영향력을 나타내게 된다. 

 그같은 과정을 거쳐 암을 유발하는 물질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미국 보건후생부 산하 국립환경보건과학연구소는 ‘확인된 발암 물질’ 50여 가지와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1백88개 물질’의 목록을 갖고 있다. 그 중에는 B형·C형 간염 바이러스도 새롭게 포함되었다. 환경건강 전문가 전상일 박사는 “확인된 발암 물질에 최초로 바이러스가 선정되었다. 그 의미가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의학자들은 B형·C형 간염 바이러스는 간암·간경화 유발 물질로 의심했다. 하지만  정확한 연구 자료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C형 바이러스로 인한 간암 환자가 늘고, 그로 인해 사망자가 늘어나자 확인된 발암 물질에 포함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지금 에이즈보다 C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를 더 위험한 환자로 분류한다. 백신도 없고, 치사율도 더 높기 때문이다”라고 전박사는 덧붙였다.

 미국 보건후생부가 발표한, 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물질 중에는 나프탈렌도 끼어 있다. 이 물질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좀약으로 사용해왔다. 그렇지만 쥐를 대상으로 한 흡입 실험에서 코와 폐에 종양을 일으키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는 의약품으로 인한 암 발생이 증가하고 있다. “매년 약으로 인한 암 발생률이 늘어나고 있다”라고 최중국 교수는 말했다. 식품의약안전청은 지난 3월17일, 일부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 사용을 금하라고 지시했다.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발암 물질은 합성 화합물에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섭취하는 자연 화합물에도 포함되어 있다. 표고버섯과 양송이에서 검출되는 하이드라진, 고사리에서 추출되는 프타킬로사이드, 허브에서 발견되는 사프롤이 모두 발암 의심 물질이다. 이 물질들은 쥐와 동물 실험에서 암을 유발했다. 탄닌도 유명한 발암 물질인데, 커피·차·고사리 등에서 발견된다.

 좀 오래되었지만,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다. 1997년 리처드 홀 박사는 우리의 식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실험했다. 그가 보건 당국이 정한 식품 첨가물 기준치와, 동물 실험과 인간들이 경험을 통해 얻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독성 물질’에 대한 자료를 들고 찾아간 곳은 레스토랑.
 다양한 메뉴를 시킨 뒤, 홀 박사는 그것들의 성분을 하나하나 분석했다. 그리고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성분이 들어간 음식을 하나하나 제거했다. 그 결과 당근·무·양파·올리브·메론·햄·새우·사과·오렌지·커피·우유가 식탁 위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단 하나, 이름이 생소한 샐러드뿐이었다. 이 독특한 음식이 남은 이유는 하나, 그 성분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실험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했다. 모든 인간이 늘 독성 물질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물질만 계속 섭취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남을 것이다. 도대체 무얼 먹고,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적절한 의문이다. 실제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발암 물질과 접촉하지 않고 살기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양이다. 이원진 교수(고려대 의대·암역학)는 “노출량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위험하다”라고 말한다. 발암 물질과의 ‘악연’을 줄이면 줄일수록 더 안전하다는 듯이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그 일은 쉽지 않다.   

  1.  
    우리 나라 암 사망자 수는 2002년 총 사망자 24만6천5백15명 가운데 6만2천8백87명이었다. 6만여명은 사망 원인 가운데 당당히 1위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또 인구 10만명당 약 1백31명이 암으로 사망했다는 뜻이다. 암이 더 불길한 것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증가 추세이기 때문이다. 1992년 암으로 사망한 숫자는 인구 10만명당 1백10.7명이었다. 그러나 10년 뒤인 2002년에 숫자는 1백30.7명으로 늘어났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암은 폐암이다. 2002년 전체 사망자 6만2천8백87명 가운데, 1만2천587명(26.2%)이 폐암으로 세상을 떴다. 다음이 위암(1만1천7백71명), 간암(1만1천1백15명), 대장암(5천1백13명)이었다. 남녀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는데, 남성들은 폐암·간암·위암 순으로 사망자가 많았던 반면 여성들은 위암·폐암·간암 순으로 사망자 수가 많았다.
     다른 나라에서도 암 앞에 무릎 꿇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매년 6백20만명에 달한다. 새로 암에 걸리는 사람은 약 1천10만 명. 세계보건기구는 지금 추세로 가면 2020년에 매년 1천만명 이상이 암으로 사망하고, 암 발생 건수는 1천5백70만명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암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세계보건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의학 관점에서 암 발생 인구 가운데 3분의 1은 식습관 개선과 금연· 간염 백신 접종·운동 등으로 암 예방이 가능하다. 3분의 1은 조기 진단만 되면 완치가 가능하고 나머지 3분의 1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암을 완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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