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월포위츠-4탄
  • 박성준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3.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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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3탄에 이어지는 글이 늦어 죄송합니다. 그동안 좀 바빴더랬습니다.
가설하고,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2000년의 글에서 월포위츠가 뜬금 없이 '탈냉전 시대'로 운을 떼었다는 것은 지난 번(3탄 참조)에도 말씀 드렸던 바 입니다. 월포위츠는 이어서 이데올로기가 사라졌다고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라면서, 잠재적인 위협론을 다시 한번 들먹입니다.
잠재적인 위협은 다시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중국과 같은 잠재적인 라이벌이고, 다른 하나는 이라크 북한과 같은 '불량 국가'입니다. 월포위츠에 따르면, 중국과 같은 나라에 미국이 마땅히 해야 할 바는 '절대로 경쟁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량 국가에 대해서는 그럼 뭐냐? 여기서 바로 여러분께서도 잘 아실 '예방 전쟁론'과 '선제 공격론'이 나옵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라크 같은 불량 국가는 애당초부터 '시범 케이스'로 손을 봐야 하는 나라입니다. 사담 후세인이 테러 집단인 알 카에다와 진짜 관계가 있는지, 후세인이 진짜 대량 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증명됐지만, 테러 분자니 대량살상무기 위협이니 하는 것은 구실에 불과합니다. 월포위츠가 보기에 진짜 중요한 것은, 탈냉전기에 미국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전반적으로 다 '군기'를 확실하게 잡는 것입니다. '미국이 패권국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말지어다' '우리는 앞으로도 패권을 놓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지어다'. 이것이 바로 월포위츠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중대한 행동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월포위츠는 2000년의 글에서 '견강부회'도 서슴지 않습니다. 건전한 민주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제 아무리 미국이라도 민주주의와 인권을 압살하는 군부 독재를 미국이 지원한 일을 잘못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월포위츠는 과거 1980년대 레이건 정권이 전두환 군부 집단의 군사 쿠데타를 묵인 방조한 데 대해 '그것이 오히려 한국의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며 두둔합니다. 이 때 미국이 그토록 외쳤댔던 인권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대신 월포위츠는 '현실론'을 내세웁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미국 대외 정책의 중요한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때에 따라서는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규정하고, 최후의 혈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같은 '현실'에서 '인권'을 찾는 것은, 월포위츠는 직접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한마디로 '잠꼬대'같은 얘기라는 것이지요. 참고로, 레이건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제일 처음 국빈으로 맞은 사람이 누군가 하면 바로 전두환씨였습니다. 월포위츠는 이처럼 레이건을 두둔한 뒤, 바로 이같은 레이건의 행동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목숨을 부지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됐다고 주장하지요(전두환을 맞아 들이되, 그에게 한국의 입헌적 질서를 준수하라고 압력을 넣었기 때문이라나 어쨌다나...).
이렇게 말한 월포위츠는 다시 중국 문제를 논구한 뒤, 이번에는 대만을 거들고 나섭니다. 그런데 이 때 신보수파들의 속셈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중국은 대만에 대해 건국 이래 줄곧 '하나의 대만' 원칙을 견지해왔습니다. 월포위츠는 반문합니다. '아니 인구 2천만이나 되는 나라가, 게다가 진정으로 민주화된 나라가 왜 독립할 수 없다는 거지?'. 이번에 월포위츠는 곧 죽어도 '민주주의 원칙'을 내세웁니다. '대만인의 의사에 따라 대만을 독립시키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부합한다.' 저는 이렇게 주장하는 월포위츠를 보면서 머릿 속이 혼란해짐을 느낍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 대한 대응 방식과 1990년대말 대만 문제 대한 대응 방식을 대조해 보면 이율배반이 너무도 뚜렷해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신축성 있는 고무줄인가'를 절실히 깨닫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느끼면서 2000년의 글을 더 읽다보니, 월포위츠 스스로가 이에 대해 답을 주고 있었습니다. 문제의 구절은 이렇습니다. '대외 정책 결정은 우리가(즉 미국이) 국내 정치 과정 때에나 요구되는 식의 '법의
지배'에 종속시킬 수 없다'. 한마디로 민주주의는 미국 안에서 저희들끼리나 하는 것이지, 그걸 가지고 순진하게 바깥에서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법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주먹'이지요. 왜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월포위츠의 지론은 한마디로 바깥 동네에서는 깡패 새끼처럼 주먹 쓰고 돌아다니는 것을 용인할 줄 알아야 미국의 정치인이라 할만하다 이겁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저는 고등학생 때 이른바 서양 민주주의의 시원 쯤 되는 그리스 로마의 고전 민주주의가 사실은 노예제를 바탕으로 해서 꽃 피웠다고 배웠습니다. 월포위츠의 말을 듣자니까 갑자기 고전 민주주의가 생각 나는군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다음 번에는 이라크 전 이후의 월포위츠 얘기를 중심으로 해 월포위츠 얘기를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넘어갈까 합니다.
내일 모레가 한가위입니다. 한가위 연휴 잘 쇠시고 고향 잘 다녀오시기를 바라면서 이쯤에서 갈음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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