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펄2-뉴 버전, 3단계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4.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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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이라크 전쟁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벌어졌던 전쟁이어서 실감이 별로 나지 않는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만, 사실은 이라크 전쟁은 한반도 상황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리처드 펄과 데이빗 프럼은 자기네 책 <악의 종말 designtimesp=25601>에서 친절하게 그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사담 후세인의 위협은 워낙에 세계적인 규모의 위협이어서 다른 지역의 위협, 즉 이란이나 북한의 위협을 다루기 위한 미국의 옵션을 제한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1994년 기본 합의가 성립될 시절 클린턴이 왜 북한의 '협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합니다. 이 대목에서 양자는 또 이라크 공격 계획이 이미 오래 전부터 수립되었다는 사실을 실토합니다. '바로 이런 고통스런 경험 탓에, 새롭게 들어설 부시 정부는 북한이나 기타 다른 나라를 힘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면, 사담을 먼저 보내버리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입니다(From this painful experience, the incoming George W. Bush administration drew the coclusion that if it wished ever to be able to deal forcefully with North Korean or anybody else, it had better eliminates Saddan first).
부시 정권은 바라던 바 후세인 제거에 성공했습니다. 아직 설거지가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비로소 북한/이란/시리아/기타 테러국 및 테러 조직들을 손보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리처드 펄과 데이빗 프럼이 책에서 제시한 '3단계 한반도 전쟁론'을 감상하시겠습니다(제가 특별히 '감상'이라고 표현한 것은 행여나 우리 일이라고 너무 흥분하셔서 냉정함을 잃을까 걱정이 되어서입니다).
먼저 펄과 그의 동료는 북한 문제를 다룰 때 미국과 한국의 국익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부터 지적합니다. 아시다시피 북한은 38선을 경계로 남한과 군사적 대치 상태에 있으며, 서울은 북한의 포격 범위에서 가깝기만 합니다. 당연히 남한은 '북한의 공격'을 두려워할 것이고, 이같은 공격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으로 하여금 김정일에 대해 함께 유화책을 쓰기를 바라고, 남한에 되도록 미군이 고루 배치되어 있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공격에 당연히 취약점이 노출됩니다. 펄은 여기서 미국 국익에 대한 위협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데, 그것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아니라, 북한을 그대로 내버려둠으로 인해 북한이 핵무기를 알카에다나 다른 테러 집단에 팔아치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짓을 못하게 막아야 하겠는데, 펄이 보기에 북한은 이미 설득으로 어떻게 해볼 가망이 없다, 이미 클린턴 시대 때 대북 정책을 통해 입증됐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힘으로 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펄은 미국이 구태여 힘까지 동원하지 않으려면 4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떠듭니다. 첫째, 핵무기의 무조건적, 즉각적 포기(여기서 그는 '포기'라는 말 대신 '항복'surrender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둘째, 북한은 미사일 기지를 완전 폐쇄해야 한다. 셋째, 북한은 새로운 엄격한 룰로 작동되는 국제원자력기구의 상시 사찰을 받아들여야 한다. 넷째, 북한은 북한의 핵 과학자를 중립 지대로 보내 거기서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만약 북한이 이를 받지 않는다면? 펄은 이 때 두가지 선택, 즉 북한이 핵을 갖도록 내버려두고 참는 것과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결정적인 조처(decisive action-여기서 '결정적'이라는 것은 '치명타'를 뜻합니다)를 취한 것중 양자택일의 방법밖에 없다며, 비로소 3단계 전쟁 시나리오 얘기를 꺼냅니다.
1단계 결정적인 조처는 북한을 육해공 할 것없이 전방위에서 봉쇄하고, 심지어 남북 교류도 중단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이 때 한국이 반발하면, 그러면 전쟁밖에 없다고 협박하겠다고 넌지시 암시합니다).
2단계는 한반도 지상군을 북한의 대포나 단거리 로켓의 사정권 밖으로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여기서 그는, 이미 그런 재배치 작업은 부시와 럼스펠드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이 대목은 매우 유의해서 감상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얼마
전 우리 정부는 주한 미2사단의 평택 이전에 동의했습니다. 이전 비용을 모두 우리가 부담키로 했습니다. 이것은 정확히 표현하면, 우리가 돈까지 챙겨주며 미국의 국익을 위해 전쟁 기지를 만들어주는 꼴이나 다름 없습니다. 잘 보십시오. 앞서 펄은 한국의 국익과 미국의 국익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지 이전의 비용 문제에 대해서는 허울 좋은 '한미 동맹'을 내세웁니다. 아니 세상에 이익을 함께 하지 않는 동맹이 어디 있답니까).
펄은 이 대목에서 주한 미군 재배치의 핵심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원래 미군은 북한의 제2 침공을 억지시키는데 공헌해왔는데, 지금은 오히려 주한 미군의 취약점을 이용하려는 북한의 볼모가 되었다'(U.S troops originally served to deter the North from invading a second time; today they have become hostages, whose vulnerability the North exploits to deter us). 미국은 용산 기지의 최대 명분으로 '서울에 외국군이 주둔한다는 것은 주권국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이라고 상당히 듣기 좋은 얘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입바른 소리에 불과합니다. 2단계는 전쟁 준비 단계이며, 우리는 지금 미국이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3단계는 이제 재배치를 끝내고, 북한을 선제 공격하기 위한 구체적인 세부 계획을 세우는 단계라고 펄은 주장합니다. 용산 기지 이전의 완료 시점이 2007년이던가요, 2008년이던가요, 아니면 2010년이던가요. 아무리 길게 잡아도 2010년 이후,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일 태세를 완비하게 됩니다. 무엇을 위해? 한미 양국의 공동 이익이 아닌, 미국의 국익을 위해.
그럼 전쟁은 피할 길이 없는가? 펄은 다른 방법도 있다고 합니다. 북한과 국경을 마주대고 있는 중국이 움직여, 김정일을 쫓아내고 친중 괴뢰 정권을 세운다면 '이 또한 좋은 방법'(If so, we should accept that outcome)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럴 경우 민주주의에 의한 한반도 통일이 앞당겨 질 수 있답니다. 1단계 봉쇄를 논할 때에는 한국더러 평화적인 교류마저 중단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던 펄은, 이 대목에서는 오히려 우습게도 '한반도 통일론'까지 들먹이고 있습니다.
펄은 네오콘의 대표이기 때문에, 위의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는 미국 네오콘의 공식 입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그의 전쟁 시나리오에서 동맹국 한국의 이익이나 주권, 한국인들의 생명에 대한 배려는 제가 아무리 눈씻고 찾아봤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자, 여기서 다시 이라크 교훈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체니, 럼스펠드, 펄, 월포위츠 등이 사담을 작살내자고 마음 먹은 때는 1990년 이전입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 이들은 그 결심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미국 강경파들은 벌써 1단계를 구축하는 데 부심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잠깐 말씀드렸듯이, 중국 런민르바오는 이 책에 서평을 쓰면서 부시는 재선에 부담가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당장 무슨 큰 일은 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저도 이같은 런민르바오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부시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전쟁 준비 완료 시점은 앞당겨지거나 한층 더 힘있게 진행될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집니다.
펄은 한반도 문제를 말하면서 요소요소에 중국에 흥정을 위한 미끼를 던져놓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와 현 부시 정부가 대만 문제와 한반도 문제를 놓고 중국과 빠터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한층 설득력을(우리 시사저널에서도 남문희 기자가 설 합병호에 전체 윤곽을 상세하게 그렸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더하는 것도, 이같은 문맥과 대조하면 확연해집니다.
다음 회에는 펄의 생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고저 하는 뜻에서 4년 전 과거로 돌아가보겠습니다(과연 그동안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살펴볼 기회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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